공정하지 않으면 법치(法治)가 아니다
공정하지 않으면 법치(法治)가 아니다
  • 정해용 칼럼위원
  • 승인 2014.01.20 11:13
  • 호수 69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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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앙숙은 아테네와 스파르타였다.
두 나라는 20세기 지구촌을 양분했던 미국과 소련처럼 그리스 세계를 대표하는 두 개의 중심축이면서, 사회 체제는 대조적이었다.


아테네는 시민권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동등한 권리로 참여하는 시민회의의 토론과 투표를 통해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고 재판을 진행하는 등, 현대 민주주의 사회와 유사한 제도를 갖춘 반면 스파르타는 강력하고 전체주의적인 수단들을 채택하고 있었다. 스파르타는 한 치의 관용도 없는 법치를 표방하고 실행했다. 오직 법과 원칙에 따라 강력하게 밀고 나가는 일을 ‘스파르타 방식’으로 부르게 된 것도 여기서 유래했다.


두 나라는 서로 경쟁하고 협상하면서 고대 그리스 고전시대를 이끌었는데, 서로 주도권을 다투기 위해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기원전 431년부터 28년간이나 지속된 이 전쟁을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라 부르는데’ 아테네는 매번 스파르타에게 얻어터졌다. 크게 다섯 번의 주요전투가 있었는데, 아테네가 이긴 전투는 단 한 번이었다고 한다. 강성국가인 스파르타가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아테네보다 강했던 것이다. 어떻게 해서 공포의 전체주의 국가가 민주주의 국가를 이길 수 있었을까.


고대 그리스 역사를 기술한 플루타르크 영웅전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스파르타는 근검절약을 사회 윤리로 삼았는데, 시간과 물자를 절약하기 위하여 개개인의 취사를 금했다. 정해진 장소에서 공동 식사를 하되 반드시 15명씩 팀을 이뤄 하나의 테이블에서 먹어야 했고, 정해진 시간에만 먹을 수 있었다. 예외가 허용되는 것은 제사를 지내거나 사냥을 하느라 시간을 맞추지 못한 경우에 한했다.


어느 날 아기스라는 왕이 아테네와 전쟁을 치르고 돌아왔다. 가뜩이나 지친 몸으로 성에 도착한 시각은 안타깝게도 저녁 식사시간을 넘긴 뒤였다. 왕은 몹시 배가 고팠으므로 먹을 것을 부탁했으나 요리사와 식당 담당자들은 규정상의 식사시간이 아니므로 줄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예외 규정에 전쟁에 참여한 경우는 포함돼있지 않았던 모양이다. 병사들과 함께 굶주린 채 잠이 든 왕은 다음날 아침까지도 화가 풀리지 않아 자신이 집전해야 하는 제사에 나가지 않았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법을 감독하는 관리들이 왕이 자신의 법적 의무를 다하지 않은 잘못을 물어 과태료 처분을 내렸다.
법은 왕 위에 있었고, 관리들은 자신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왕에게도 서슴없이 정해진 법을 집행했던 것이다. 스파르타가 민주주의의 원조로 불리는 아테네를 번번이 이기고 그리스의 맹주로 군림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법의 엄정함에 있었다.

아테네는 시민민주주의를 표방하여 인문학의 꽃을 피운 나라였지만, 바로 그 민주적인 시민 법정에서 시민권자 다수의 투표에 의해 소크라테스는 사형판결을 받았다. 소크라테스의 죄는 ‘젊은이들을 선동하고 신을 모독한다’는 것이었는데, 사실인즉 귀족과 관리, 학자들과 성직자들에게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들의 부도덕과 은밀한 범죄행위를 따져 물은 것이 그가 제거된 실제 이유였다.


민주적 절차로 포장되었을 뿐 실은 당대 최고의 양심적 지식인 살해사건이다. 부패한 민주주의 국가 아테네가 법치가 공정하고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스파르타에게 번번이 패배한 건 당연한 결과였다.
‘법치’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엄정한 법집행’, 요즘 뉴스에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과연 공정하지 않으면 법치가 아니다. 그런 나라가 무사할 수는 없다.

엄정한 법치를 주장하여 ‘법가(法家)’라고 불리는 중국의 위인 한비자(韓非子)는 나라가 망하는 이유 열 가지를 가르쳐주었다. 그 가운데 ▲(통치자가) 법을 소홀히 하고 음모와 계략에만 힘쓰며 외세만 의지하는 경우 ▲군주가 누각이나 연못을 좋아하여 대형 토목공사를 일으켜 국고를 탕진하는 경우 ▲다른 나라와의 동맹만 믿고 이웃한 적을 가볍게 생각하여 행동하는 경우 ▲나라의 창고는 텅 비어 빛 더미에 있는데 권세자의 창고는 가득차고 백성들은 가난한데 상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서로 이득을 얻어 권력을 멋대로 하는 경우들이 포함되어 있다. 요즘 들리는 법치가 과연 공정한 법치를 의미하는 것인지, 가만히 생각해 본다.
                                                                        <시인, 칼럼니스트/peace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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