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다블람의 눈물
아마다블람의 눈물
  • 이정아 칼럼위원
  • 승인 2014.03.31 12:29
  • 호수 7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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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히말라야로 트레킹을 다녀왔다. 루크라에서 남체를 거쳐 고쿄피크까지 가는 길고도 험한 길이었다. 등산 경험이 별로 없는 내가 선뜻 그 여행에 참여하게 된 건 촐라체 때문이었다. 소설 촐라체를 인상 깊게 읽었던 터라 여행 안내지에 있는 ‘촐라체를 보며 걷는다’는 문장에 쏙 빠져든 거다. 하지만 현장에 도착해서야 알 수 있었다. 촐라체를 보기 위해선 4000미터가 넘는 곳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을 .
멋진 풍경이 아닌, 앞 사람의 신발 끝만을 보며 몽고개를 힘겹게 오르던 내게 누군가 먼 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마다블람이예요.”


아마다블람의 첫느낌은 따뜻함이었다. 날카로운 얼음 낭떠러지를 갖고 있는 산을 보며 따듯함을 느끼다니......묘한 일이었지만 아마다블람은 두 팔을 내밀고 부드럽게 안아주려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실제로 ‘어머니의 진주 목걸이’라는 뜻을 가졌다고 했다. 힘들게 걷다가 고개를 들면 아마다블람이 날 보고 있었다. 괜찮다고, 그냥 가라고, 두 팔 벌려 위로해줬다. 고쿄 마을 가는 길에 그토록 보고 싶던 촐라체를 봤지만 이미 난 아마다블람에게 마음을 뺏긴 후였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묵은 신문들을 뒤적이다 반가운 사진을 발견했다. 바로 아마다블람이었다. 그런데 사진 제목이 ‘아마다블람 품의 노동자’였다. 아마다블람 아래서 노동자들이 집을 짓기 위해 돌을 깨고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었다. 기자는 사진 아래 ‘자연이 만든 절경 속 사람이 만든 현실’이라는 말을 써놨다. 그제서야 위험한 길에서 만난 노동자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자기 몸의 몇 배나 되는 합판을 여러 장 등에 매고 힘들게 산을 오르고 있었다. 산 여기저기 건축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자재를 산 아래에서부터 몸으로 나르고 있었던 거다. 주로 그들이 짓고 있는 건 여행자들을 위한 롯지(숙소)와 상점이었다. 여행객들이 그들에게 돈의 맛을 알려줬고 그들은 기꺼이 그 맛을 위해 더 힘든 노동에 내몰려있었다.


신문 속 아마다블람 사진 옆엔 세 모녀가 자살한 기사가 있었다. 복지 사각지대에서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세 모녀의 안타까운 죽음을 계기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다시 사진을 보니 아마다블람은 이제 피에타 상으로 보인다. 죽은 예수를 품에 안은 어머니 마리아의 고통에 찬 얼굴로 보인다. 젊은 얼굴을 한 어머니 마리아와 삶의 나이를 먹은 아들 예수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 나를 따듯하게 이끌어줬다고 믿었던 아마다블람은 어쩌면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눈물이 얼어 진주목걸이가 된 것인지도.
현지에서 나를 도왔던 포터 학바는 나이 40에 일곱 자녀를 두었다고 했다. 그는 위험한 곳에서 내 손을 잡아줬고 무거운 짐을 들어줬다. 늘 내 곁에 있던 그가 고쿄리로 가는 눈보라 속에서는 유독 혼자 먼저 달려갔다.


나중에 서운해서 물으니 고글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온통 흰 세상에서 고글 없이 걷는 건 설맹의 위험이 있다. 그는 눈 속을 빨리 달려 큰 바위 아래로 숨어들곤 했던거다. 학바는 이번 포터 일을 하면 가족이 한 달 동안 살 수 있는 생활비를 번다고 좋아했다. 루크라에서 헤어지던 날, 난 그에게 선물로 연필과 손수건을 주었다. 올 해 학교에 입학한다는 막내에게 주라면서. 학바는 무척 좋아했다. 루크라에서 4일을 걸어야 집에 갈 수 있다는 학바는 우리 비행기가 뜨는 걸 보고 바로 집으로 달리기 시작했을 거다. 내가 집으로 돌아와 쉬는 순간에도 학바는 여전히 집을 향해 걷고 있었겠지.


나는 그에게 돈과 선물을 줬다. 그런데 왜 자꾸 아마다블람이 날 보고 울고 있었다는 느낌이 드는 걸까? 난 정말 네팔의 학바에게 무얼 주고 온 걸까? 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말이 자꾸 떠오르는 걸까? 내가 두고 온 게 아마다블람의 눈물이 만든 진주가 아니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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