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달, 4월을 보내며
잔인한 달, 4월을 보내며
  • 권기복 칼럼위원
  • 승인 2014.05.02 16:22
  • 호수 7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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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T.S. Eliot)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그의 유명한 시집, ‘황무지(荒無地). The Waste Land. 1922’에서 피력한 바 있다. 또한 지난 1세기 동안 온 세계의 비평가들이 그 말의 진미를 밝히기 위해 수많은 의견들이 분분하였다.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면서 엘리엇은 시인이 아니라 예언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그의 뇌리에 10년 전에 발생한 타이타닉호의 침몰(1912.4.14.)이 잠재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세월호 참사’는 4월 30일 현재, 212명의 사망과 90명의 실종으로 금세기 초유의 대참사로 기록될 것이다. 이번 참사의 원인과 경과 모두, 온 국민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돈벌이에 급급하여 배의 적재량을 무시하고 개보수 한 선주, 조급증과 안전 불감증에 빠져 과다한 적재 화물을 대충 싣고 우리나라에서 조류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해역으로 항해를 강행한 선장과 선원들, 사고 발생에 대해 우왕좌왕한 정부 기관들. 온 국민은 슬픔과 절망 속에서도 숨을 죽이며 하루하루를 생존자가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의 밧줄을 잡고 기다렸다.


실종자까지 합친 302명의 목숨은 100% 천재가 아닌 인재에 의해 희생된 것이다. 이것이 온 국민을 안타까워하게 하고, 분노케 하는 이유이다.
특히 선장과 선박직 선원들의 비열한 양심은 대한민국의 기성세대들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갖게 함으로써 필자도 학생 지도에 부끄러움이 앞설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의 잘못된 정치관행과 못난 기성세대들 때문에 고귀한 생명을 빼앗긴 단원고 학생들을 비롯한 302명의 영령과 실종자 분들에게 머리 숙여 사죄할 뿐이다.


이제 5월이 시작되었다.
‘세월호 참사’의 슬픔은 가슴에서 머리로 옮겨놔야 한다. 지난 보름간 온 국민의 눈과 귀를 집중시키고, 슬픔의 나날의 보내던 일을 접어야 한다. 대신, 신속한 구조작업과 함께 희생자와 그 가족들을 위해 일사불란한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참사로 인해 국민의 눈물을 자아내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전 국토와 전국의 시설물에 대한 안전 점검 및 안전망 구축, 이를 보장하는 법질서 확립이 절실하다.


대한민국은 어느 나라 못지않은 법체계를 갖추고서도 ‘법이 없다.’는 비판을 자주 받는다. 그 이유는 법이 때로는 고무줄 같고, 때로는 이동식 단속카메라 같기 때문이다.
법은 온 국민이 항상 지킴으로써 법으로부터 생명과 재산, 인권을 보호받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법은 ‘눈감아주기’, ‘찍어내기’, ‘미운 × 감사용으로 쓰기’, ‘덮어주기’, ‘법조계의 이익 안전망 구축을 위한 도구화하기’ 등 법조계의 권위를 내세우는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 모든 법은 대통령부터 배내옷을 입은 갓난아기까지 똑같이 적용되고, 똑같이 보호받는 일을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
또한 학교의 단체 활동에 대하여 온 국민이 심사숙고해 볼 시기인 것 같다.

지난여름, ○○고등학교 학생들의 태안 백사장 야영장에서 발생한 사건, 올 2월 17일에 발생한 경주 마리나리조트 마우나오션리조트 강당 경주 매몰 사건, 세월호 침몰 사건까지 불과 1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에 온 국민은 학생 단체활동의 참담한 광경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수학여행은 특히 중·고등학생에게 가장 추억에 남는 행사이고, 수련활동은 애국심과 단결심을 함양케 하는 대표적인 행사이며, OT(orientation)나 MT(membership training)는 대학생들의 대표적인 행사이다. 그런데, 이 부문들에서 우리들은 중차대한 참사를 지켜봐야만 했다.


수학여행은 우리나라가 후진국에 속할 때, 학생들의 견문을 넓혀주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이번과 같은 대참사가 재발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이제 가정으로 돌리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봄과 가을에 1주일이나 열흘 정도 계절 방학을 주고, 가족 여행을 권장해 볼 필요도 있다. 대신, 가정형편이 어려워 가족여행을 가지 못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에서 소규모로 수학여행을 추진하면 어떨까? 수련활동은 각종 청소년 단체나 동아리 활동으로 돌릴 수 있다. 대학생들의 OT나 MT도 과별 또는 계열별로 소규모화 시키고, 철저한 안전교육을 전제로 하면 어떨까?


5월에는 슬픔은 접어두고, 온 국민이 제자리로 돌아오도록 하였으면 한다. 지금 상태로 더 지속된다면 전 국민의 정신질환은 물론 국민경제의 파탄을 맞이할 수 있다. 경제는 우리 몸의 핏줄과 같아서 어느 한 부분이 막힌 채 많은 시간이 흐르면 온 몸이 상하게 된다.
현재 당장 한국의 관광산업과 이와 관련된 산업들이 도산 위기에 처해 있다. 이들이 무너지면, 다른 산업 부문들도 도미노 현상처럼 무너질 수 있다. 이제 온 국민이 가슴 속 슬픔과 울분은 머리에 새겨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비하되, 계절의 여왕인 5월에는 일과 여가를 충분하게 누리도록 하자.
(시인/홍주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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