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정치의 잔재 정당 기호제도
독재정치의 잔재 정당 기호제도
  • 박병상 칼럼위원
  • 승인 2014.06.16 16:18
  • 호수 7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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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도 개인적으로 예전과 별 차이 없는 결과였다. 모두 7장의 투표지를 받고 모두 소신을 반영해 기표했지만 선택한 후보 또는 정당이 이번에도 거의 당선되지 않았던 거다. 다른 유권자들은 어떤 기준으로 후보를 선택하는 걸까. 반대의사가 들키기만 해도 잡혀가 초주검이 되던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악몽을 잊지 못하는 유권자에게 기호는 무섭다. 투표를 함부로 거부하지 못했던 유권자들은 기호를 보고 자신의 표를 던지는 행위를 반복했다.

거리에 떨어진 명함과 고작 2주일 걸린 벽보는 물론이고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집으로 보낸 자료들은 유권자에게 인물의 됨됨이나 정당의 특색을 충분히 알리지 못했다. 돈이 있는 정당이나 무소속 후보는 화려한 용지에 미사여구로 근거가 희박한 자신의 업적을 과시했다. 의원 후보든 단체장후보든, 가능하지 않거나 가능해서도 안 되는 개발공약을 남발하는 경향도 여전했다. 주민들의 의견을 대변하는 대의원의 후보라는 걸 망각하는 공약이 난무했고, 자료와 벽보를 거들떠보지 않는 많은 유권자들은 투표장을 가지 않았다. 참여의 보람을 누려본 경험이 없는 유권자의 무기력이다.

출마한 의지를 가식 없이 밝히고 당선 이후의 행동을 명확하게 제시한 후보와 정당이 없는 건 아니다. 의무 사항으로 전과기록까지 제시했지만 기호에 익숙한 유권자들은 눈여겨보지 않았다. 선택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선거에 돈을 쓸 여력이 없는 작은 정당은 자신을 소개할 기회조차 만들지 못했다. 그런 상태에서 투표장에 간 유권자들은 난감하다. 평소 지방정치에 관심을 갖고 정당과 인물을 눈여겨보았다 해도 확신을 갖고 7장을 기표한 유권자는 드물 게 틀림없다.

가벼운 치매에 든 모친에게 ‘몇 번 찍으라’며 특정 기호의 지지를 당부했다는 이는 투표 후 허탈해했다. 자식이 이야기한 숫자만큼 칸칸마다 정성스레 찍느라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지방정치에 나름 관심을 가진 처지에서 이런 후보는 처음 본다. 책임정치를 표방하는 정당이 어쩌면 유권자를 이처럼 우롱할 수 있나. 지역의 대의제 민주주의를 생각하는 유권자가 볼 때, 함량미달의 후보를 함부로 공천하지 못하게 하려면 ‘지지후보 없음’ 칸이 필요해보인다. ‘지지후보 없음’ 칸이 1위를 한 지역은 당선자가 없어 재투표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면 정당은 함량미달 후보의 공천을 피할 게 아닌가. 물론 자질이 아니라 오로지 선거자금이 부족해 자신을 알리지 못하는 작은 정당이나 무소속 후보는 억울할 수 있다. 유권자의 선택을 투명하게 배려할 수 있는 조치도 필요해보인다.

한 중앙일간지는 선거 다음날 아침, 이번 지방선거의 승자를 ‘전교조’로 대문짝만하게 선포했는데, 그 신호에 화답한 걸까. 교육감 선거 결과를 마땅치 않게 바라보는 거대정당과 교원단체는 교육감 선거 자체를 부정하는 법안을 제안하고 나섰다. 자신들이 지지하는 이가 대거 당선되었어도 그런 황당한 제안을 했을까? 후보의 대부분이 전교조 출신이기에 당선될 걸까? 선거 직전까지 압도적으로 많았던 부동층은 기표에 앞서 편견을 버릴 수 있었다. 기호가 없는 후보들을 꼼꼼히 살피고 자신의 권리를 행사했을 것이다.

교육이 그렇지만 지방의 정치도 중앙과 거리가 필요하다. 지역의 현안과 내일을 위한 대안은 분명히 중앙과 같지 않다. 권력을 유지하고 싶은 중앙 정치가 지역을 지배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기에 지방선거를 실시한다면 후보의 기호도 중앙과 다를 필요가 있다. 다수당을 여당으로 독점하던 국사정권의 악몽을 기억하는 유권자의 관성적 투표를 원하는 게 아니라면, 다수 국회의원을 거느리는 순서로 정해지는 기호 체제는 없애거나 바뀔 필요가 있다. 이번 교육감 선거는 그 취지가 대체로 반영된 결과를 보여주었다.

문맹자가 많을 때 기호가 후보를 투표지에서 구별하는 데 도움을 주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름과 정당을 확인하고 얼마든지 기표할 수 있다. 인쇄기술이 예전과 다른 만큼 벽보의 사진을 투표지에 넣는 방법도 있다. 인물 됨됨이보다 다수당의 지위를 선점하려는 기호는 시대착오일 뿐 아니라 크든 작든 유권자의 소신을 방해하는 요인이다. 유권자의 정당한 선택을 지지한다면 기호 제도의 합리적인 개선이나 철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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