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모시 명맥 잇고 싶어…
한산모시 명맥 잇고 싶어…
  • 최현옥
  • 승인 2003.04.25 00:00
  • 호수 1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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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탐구와 모험을 즐기는 송씨는 아직도 꿈많은 소년
▲ 모시자동생산기계 연구중인 송우섭씨
‘딸깍 시르릉∼ 딸깍 시르릉∼’
베틀에 올라앉아 쇠꼬리채를 발로 잡아당겨 날실을 벌리고 그 사이로 씨실 꾸러미가 담긴 북을 수천 번 넣었다 뺐다 하는 동작을 반복해야 촘촘하고 까슬까슬한 모시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모시를 짜는 모습은 한 폭의 동양화처럼 아름답지만 실제로 엄청난 노동이 요구된다. 모시 째기, 삼기, 날기, 매기작업 등 오직 수작업으로 수천 수만 번의 손길이 닿아야 겨우 모시 한 필을 만들어 내는 모습에서 옛 여인들의 말못할 한과 비애마저 느껴진다. 소년의 눈에도 그런 어머니와 누나의 모습은 안타까워 보였고 모시자동생산기계 개발을 목표한지 80살이 다된 나이에 그는 결실을 보고 있다.
“명맥이 끊겨 가는 한산모시를 자동생산을 통해 활성화시키고 싶습니다”
모시 자동생산기계 개발에 30여 년을 바쳤다는 송우섭(82·화양면 와초리)씨 마당은 부품 사용을 위해 주워다 놓은 폐품들이 즐비, 재활용센터를 연상시킨다. 또 송씨의 안내를 받아 들어선 집안에는 과학 공작실을 연상시킬 정도로 방안 가득 공구와 빛을 보지 못하고 뽀얀 먼지를 뒤집어 쓴 모시자동생산 기계들이 즐비하다.
“어린 시절 가족들이 수작업으로 모시생산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에 긴 시간동안 모시자동생산을 연구해왔다”는 송씨는 젊은 시절 건축 일을 했다. 항상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어렸을 때부터 품어온 한을 풀기 위해 그는 60이 돼서야 고향을 찾은 것이다. 그가 개발한 모시자동생산 기계는 모시를 째고, 삼고 날기 작업에 쓰이던 기구들을 모터를 이용, 자동화시킨 것이다. 예를 들어 꾸리의 경우 모터를 이용, 한번에 10개∼20개 정도를 동시에 만들어 낼 수 있다.
특히 그의 개발 작품 중 핵심인 모시짜는 기계는 얼 듯 보기에 투박해 보이지만 지렛대 원리를 이용한 것으로 기존에 베틀에 앉아 쇠꼬리채를 발로 잡아당기며 생산하던 것을 바디만 움직여 날실을 벌리고 자동으로 북이 왔다 갔다 해 모시가 짜지게 만든 것이다. 완전 자동은 아니지만 기존에 온몸을 이용해야 생산했던 것에 비하면 한번의 손놀림으로 생산되는 모시는 획기적이라 할 수 있다.
“중요핵심 부분은 이미 학창 시절 개발해 놨었다”는 송씨는 “북을 자동으로 반복운동 시키는 것 개발에만 꼬박 1년 반이 걸렸다”며 긴 세월을 풀어놓는다.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새로운 것을 생산하면서 과거 건축일을 했던 것이 도움이 됐지만 하루하루 연구를 했고 잠을 자다가도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일어나는 것은 부지기수였다. 그는 현재 더욱 견고하고 완전한 모시자동생산 기계 개발을 위해 기존에 끈으로 만들었던 부분을 철제로 바꾸는 작업에 혼신을 기울이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공작을 좋아했고 농기계를 목조로 만들었으며 부모님이 가마니를 손으로 짜는 모습에 자동화 기기를 개발했었다는 송씨. 그의 집안에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발명된 작품들이 많다. 그의 방 한 곳을 지키고 있는 일명 한국형 피아노는 30년 전 개발한 것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가정에는 서양 악기인 피아노가 있지만 국악 악기는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는 송씨는 건반 8개로 4개의 풍물을 동시에 연주하는 한국형 피아노를 개발했다.
이 역시 지렛대 원리를 이용해 아래 부분 왼쪽에는 북, 오른쪽에는 꽹과리와 징이 있으며 위에는 장구가 높여진다. 장구는 그 소리의 다양화를 위해 채편에 열채 3개 달았으며 북편 에는 궁구리채 2개를 달았다. 건반 8개만 누르면 농악놀이를 혼자서도 할 수 있다.
중심에 놓이는 장구 역시 범상치 않다. 송씨가 개발한 장구는 휴대가 편리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몸통을 종이죽으로 만들어 두 편과 조롱목 부분이 3등분으로 분리되며 채편을 가죽이 아닌 서양북에서 사용하는 비닐을 사용했다. 물론 소리에 있어서는 손색이 없다.
“우리의 문화유산은 소중한 것이며 보존하고 보급시켜야 한다” 송씨는 응원에 쓰이는 북의 경우 대부분 서양의 것을 사용한다며 자신이 개발한 장구를 응원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대형으로 만들었다. 높이 90Cm에 지름 96Cm인 장구, 송씨는 아직 응원에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세상에서 이런 장구는 나밖에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라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너무 오랜 기간 연구하면서 자신은 이렇게 늙었지만 자신이 개발한 것이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으면 좋겠고 타인에게 무료로 보급하고 싶다”는 송씨는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꾼다. 그는 서울에 거주할 때뿐만 아니라 지역에 내려와서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도움을 주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생이 다할 때까지 모시자동생산 기계 개발과 모시 연구를 위해 힘쓸 것을 다짐하는 송씨. 백발이 성성한 그는 순수와 꿈이 넘치는 소년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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