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장터]우리 딸이 시집을 간다
[모시장터]우리 딸이 시집을 간다
  • 신웅순 칼럼위원
  • 승인 2014.10.21 15:46
  • 호수 7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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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웅순 칼럼위원
어렸을 적 그렇게도 친구를 좋아했던 우리 딸. 친구와 무엇이 좋아 뻘뻘거리며 돌아다녔는지, 책가방은 휘익 던져 두고 무엇이 좋아 이리저리 뛰어다녔는지. 그렇게 산과 들로 놀기를 좋아했던 딸이 멋진 남자를 만나 시집을 간다.

  과거의 나와 오늘의 내가 같이 탄, 이상한 세월의 버스. 미래의 나는 또 어디에 있을까. 손자, 손녀의 손을 잡고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까. 세월은 이리도 빠르다.

   무슨 일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으나 아이의 버릇을 고쳐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둘째 딸에게 심하게 손을 댄 적이 있었다. 바닥에 세상을 묻고 훌쩍훌쩍 우는 것이었다. 왜 우느냐고 막 호통을 쳤다. 어깨만 들썩거렸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지만 참았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는데 후회가 되었다. 버릇이 고쳐졌는지는 모른다. 왜 맞아야 하는가를 아이에게 설명하지 못했다. 아이에게 상처만 준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얼마 후 나는 ‘딸년’이라는 헌시 한 편을 남겼다.

버릇 없어 때렸더니/지구 한 귀퉁이에서 훌쩍훌쩍 서럽게도 운다//남몰래 서럽게 울 날이 많을 텐데/정말 때리지 말 걸 그랬다

  에세이는 십여년 전에, 시는 20여년 전에 쓴 것으로 기억된다. 유난히 놀기를 좋아하고 유난히 사람을 잘 따랐던 내 딸이 시집을 간다니 실감이 안난다.
  새들도 짐승들도 새 둥지와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는데 하물며 사람이랴. 이 엄숙한 이별 앞에서 거스를 사람은 세상 천지 어디에도 없다.

  이별은 어딘가를 다녀가야 한다. 이별이 적막 어디쯤에 있고 외로움 어디쯤에 있는지 모른다. 불빛으로 달빛으로 가야 하는지, 소나기로 가야 하는지 눈발로 가야 하는지 모른다. 이별은 그저 그냥 어디쯤이면 되고 어디쯤일 것이다. 이것이 인생이다.

  딸아이가 시집을 간다는데 참으로 기쁜데 가슴 한 켠에선 부슬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가을 바람이 우우우우 분다. 가슴 한 켠이 소리 없이 젖고 가슴 한 켠이 소리 없이 마른다. 이런 이별이 몇 번을 젖고 말라야 샛길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젖은 햇빛으로도 젖은 달빛으로도 마르지 않는 이별. 산녘의 소쩍새 울음 소리, 바닷가의 해조음 소리가 오늘밤은 더 가까이서 더 멀리서 들려온다. 나와 내 아내가 데이트 했던 그 곳에서 소쩍 소쩍, 자그락 자그락 번갈아가며 낮게 낮게 들려온다.

  품 안의 새끼라 하지 않았던가. 새 둥지는 그들이 살아가야 할, 그들이 찾아가야 할 인생이다. 우리는 희미하고 아득한 그들의 뒷모습을 멀리 바라만 보면 된다. 

  딸은 잘 살 것이다. 열심히 잘 살 것이다.
  어깨가 쳐진 아내의 뒷모습을 본다. 옛날과 같지 않은 아내가 요즈음엔 안쓰러워보인다. 나이를 먹으면서 주름살도 머릿결도 더욱 예뻐지는 내 아내. 딸이 시집을 가면 아마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아내가 될 것이다.

  유난히 엄마, 아빠를 좋아하고 정이 많은 내 딸. 참으로 대견하고 참으로 자랑스럽다. 우리 가까이는 살되 가까이 살지 말며, 우리 멀리는 살되 멀리는 살지 말자.

  산 너머 불빛처럼 늘 그리워하며, 못 부친 엽서 한 장처럼 늘 보고 싶어 하며 살자. 그 곳이 우리의 이별과 만남의 자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별할 때는 그리워서 기도하고, 만나서는 감사하다고 기도하면서 말이다.
  기도는 이럴 때 쓰라고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 아닐까.

  가을이 깊어간다. 조금 있으면 온 산과 들에 단풍이 들 것이다. 올해는 내 가슴에 단풍이 진하게 오래오래 물들 것이다. 그래야 축복의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 날 우리 딸을 시집 보낼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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