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의 고급화 추구한다
모시의 고급화 추구한다
  • 최현옥
  • 승인 2003.05.02 00:00
  • 호수 1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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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백모시, 자연의 색을 담는 염색, 권씨는 모시를 통해 자연을 배운다.
‘세모시 옥색치마 금박물린 저 댕기가∼’
우리의 가곡에도 등장할 정도로 모시의 단아함과 청아한 멋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생산과정의 어려움과 화학섬유에 밀리면서 모시는 노인들의 소일거리로 전락, 명맥 잇기에도 급급한 실정이다. 모시의 명맥이 끊기는 것을 걱정하며 한숨으로 일관하는 지금 실천주의자 권병복(56·한산면 죽촌리)씨는 우리고유의 민예품 모시의 질을 높이고 현대감각과 소비자 기호에 맞는 모시 생산으로 소비를 창출,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한산면 석촌리 권씨의 마당에는 설렘이 펄럭이고 있었다. 염색을 위해 탈색한 백 모시는 무엇이든 그릴 수 있는 캔버스로 한산의 햇빛과 바람에 자신을 정화하고 있다. 과거 설빔을 짓기 위해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인 어머니처럼 백모시의 구김을 펴며 사랑을 쏟는 그의 손은 투박하지만 너무 섬세하다.
“정말 눈부시지 않아요? 이렇게 표백이 잘된 모시를 보고있으면 마음마저 깨끗해지는 듯 합니다”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백모시를 바라보는 그의 눈은 흐뭇하다. 어머니에게 모시 중간 도매업을 가업으로 이어받은 지 벌써 20여 년, 표백과 염색만을 위해 바친 세월만도 손가락으로 한참 가늠을 해야 할 정도다.
긴 세월동안 모시 고급화를 추진한 성과로 그는 지역에서 표백과 천연·화학 염색 기술을 인정받고 있으며 외지에서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 최근에는 수의, 승복까지 취급하며 외국 수출 판로를 모색 중이다.
모시는 마치 어린 아이 같아서 관리여부에 따라 그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는 권씨. 그의 일과는 5일에 한번 열리는 한산 모시 장에서부터 시작한다. 새벽 5시 이슬을 촉촉하게 먹은 모시굿을 구입해 주문에 따라 지역의 주민들에게 직조를 위탁한다. 그는 소비자의 기호에 따라 생모시를 판매하거나 천연·인공 염색과정을 거쳐 상품의 고급화와 다양화를 모색한다. 물론 수입되고 있는 중국 모시는 질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차별화 전략으로 농가 소득을 높이고 싶은 권씨는 주부들에게 간편하게 모시옷을 손질하는 방법을 알려주며 신뢰와 신용이 바탕이 된 품질로 승부하고 있다.
“흰 바탕 위에 자연의 숨은 색을 찾아 담아내는 것 같아 염색을 접할 때마다 설렌다”는 권씨, 처음 표백과 염색을 배우며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지금은 오랜 연구를 통해 자신만의 노하우가 축적됐지만 약품처리 과정에서 자칫하면 모시 본연의 성질을 잃게 만들어 품질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 염색도 마찬가지로 소비자가 요구하는 색을 그대로 구연하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모시가 식물의 껍질인 관계로 타 염색보다 색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작은 차이에도 색의 변화가 빠르다. 그리고 오랜 시간 세탁하면서 그 색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서적과 전국에서 개최되는 염색관련 교육을 받았으며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으며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지금도 염색과 표백에 관한 결과를 기록하며 연구하는 권씨는 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염색 재료구비에서부터 꼼꼼하기로 정평이 난 권씨는 쪽이나 홍화는 자신이 직접 재배를 하고 밤 껍질, 쑥, 치자 등은 제철에 구비를 한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염색재료는 황토로 건강에 좋을 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구하기도 쉬워 종종 애용한다.
“많은 노동력을 요구하는 업종이기에 젊은 사람들이 꺼리고 있어 걱정이다”는 권씨는 자신의 아들에게 자신이 연구한 기술을 전수하며 모시 명맥 잇기의 책임감을 토로한다.
백제시대부터 건지산 기슭에서 저마가 재배되었고 신라 경문왕때 저포를 해외로 수출, 임금님에게 진상까지 했다는 한산 세모시. 백모시가 수용성과 포용력을 가지고 다채로운 멋으로 피어나 듯 모시의 고급화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싶은 그는 한산모시의 앞날을 밝히기 위해 성냥을 꺼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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