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민들의 손이 되고 싶어요”
“어민들의 손이 되고 싶어요”
  • 최현옥
  • 승인 2003.05.02 00:00
  • 호수 1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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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빠지고 갯벌이 드러나면 아낙네들이 바다바람을 가르고 생의 터전에서 조개를 캔다. 검은 개흙을 달칵달칵 뒤집어 조개를 가려내는 노련한 손끝, 갯벌과 싸움을 벌이고 있는 그들의 손에는 ‘이경식표’ 갈퀴가 들려있다. 불과 20여 년 전 만해도 호미로만 조개를 캐던 어민들에게 어패류 채취용 갈퀴 발견은 대단한 것이었다. 장인정신으로 15년 동안 자신만의 갈퀴를 제작해온 이경식(67·종천면 장구리)씨를 찾았다.
‘탕! 탕! 탕!’
그의 집은 하루종일 쇠를 치는 망치소리로 가득하다. 이씨에게 갈퀴 제작은 이력이 나서 쉬운 일이지만 전 과정이 수공으로 진행돼 힘이 많이 든다. 일흔이 다 되가는 그,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이렇게 하찮은 것을 다 취재하러 왔어요. 그냥 가세죠”
기자의 방문에 손사래를 치며 취재를 거부하는 이씨. 그렇다 어찌 보면 너무나 하찮은 것이다. 이씨는 남이 만들었던 갈퀴를 흉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흉내에만 그치지 않고 사용의 편리함을 위해 실정에 맞게 변형,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장인정신으로 서천지역에서 유일하게 수 작업으로 갈퀴를 만들고 있다. 그의 묵묵한 노고와 추억이 배어있는 갈퀴, 어민들의 손에서 진정한 빛을 발하고 있다.
태생이 종천면 장구리인 이씨에게 조개 잡이는 어린 시절 장난감이었으며 생계수단 이었다. 그의 나이 40살이 되던 해 조개를 잡는 갈퀴를 접하게 됐고 갈퀴는 너무 획기적인 물건이었다. 기존에 사용하던 호미보다 갯벌을 뒤집을 때 힘이 덜 들었고 조개가 상하지 않았으며 채취 양도 많았다. 그러나 그에게는 불편한 부분이 많았다. 개선하고 싶은 의지에 군산과 부안에 위치한 어업용 갈퀴를 판매하는 곳을 견학했다. 평소 이씨는 목재를 이용해 농기구를 손으로 만들었을 정도로 눈썰미가 좋다. 견학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그, 연구를 시작했다.
갈퀴의 발을 어느 정도 각도를 줘 구부려야 더욱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을지 지속적으로 연구하며 갯벌에 나가 효과를 실험했다.
‘발 3개의 간격을 기존 것보다 넓히고 긁는 부분을 크게 구부리면 될 것 같다’는 그의 추측은 적중, 3개월만에 ‘이경식표’ 갈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는 그의 작품을 실험하기 위해 주민들에게 무료로 나눠주었고 주민들의 반응은 대 만족. 그는 자신이 만든 갈퀴를 어민들이 편리해하고 잘 사용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의 갈퀴는 품질을 인정받으며 전국에서 문의전화가 쇄도, 현재는 주문이 밀려있는 상태로 연 평균 천개정도 팔려나가고 있다.
이씨는 하루 40여 개 정도 갈퀴를 만드는데 과거 1개 만드는데 한시간이 소비됐으나 지금은 10분 정도소요된다. 그러나 그의 손놀림은 정확하고 꼼꼼하다.
“손으로 진행되는 작업이라 팔에 힘이 많이 들었지만 주민들이 좋아하고 자신이 기존의 것을 더욱 발전시킨 것이라 기쁨은 두 배였다”는 이씨.
나이가 들면서 가족들이 만류, 작업에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는 생계수단을 떠나 누군가에게 자신이 만든 물건을 인정받는다는 것이 좋다. 또 자신이 만든 갈퀴로 어민들이 자식들을 뒷바라지한다는 것이 기쁘다.
이씨는 현재 집안 한 편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있으며 지금도 자신이 만든 도구 개선을 위해 갯벌에 나가 실험을 한다. 연말에는 판매 수입금 일부를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한다.
아름답게 휘어진 갈퀴의 발을 보고 있으려면 예술품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든다. 작지만 이 세상에 꼭 필요한 물건처럼 그는 소시민으로 서천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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