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장터]나의 처녀작, 사향(思鄕)
[모시장터]나의 처녀작, 사향(思鄕)
  • 신웅순 칼럼위원
  • 승인 2015.03.09 17:53
  • 호수 7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의 처녀작, 사향(思鄕)

석야 신 웅 순

      바람은
      평행선에서 노을을 밀고
      피안에서 그 보다도 먼 끝 역에서
      어둠을 몰고 온다

      그 길에 내가
      낙도처럼 섰다

      달은 가슴 뒤안에 떠서
      먼 꿈으로 가나

      가도 가도 끝없는 파초밭
      그 시린 손끝에서 연생하여
      스스러이 수천의 밤을 밝힌다

      평야는 죽은 듯이 잠들고
      나무 가지 가지 날리며
      그 가지 사이사이로 어둠 날리며
      시냇가로
      밝은 밤을 찾아드는
      내 쉰 목소리

      오늘도
      내 노래는
      피안으로 파문지는 평행선 상에 내려
      그보다도 먼 끝역에서
      기적소리로 나는 고향을 달린다
                           - 필자의 시 ‘사향’전문

  이 시는 1971년 12월 25일(토) 공주교대학보에 실렸던 처녀작이다.
  내 나이 21살, 44년 전 교대를 다녔을 때의 일이다.
  나는 집 두서너 채 밖에 없는 공주 금학골에서 살았다. 싼 하숙비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시를 쓰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시는 커녕 친구들과, 때론 혼자 소주, 막걸리만 마신 것 같다.
  산은 적막했고 소쩍새 소리는 그 적막을 찢었다. 온 천지가 깨지는 것 같았다. 산골 물소리는 어둠을 찢었다. 온 천지가 쪼개지는 것 같았다. 달 밝은 밤이면 고요한 금학골은 달빛 때문에, 어둠 때문에 그렇게도 자기들끼리 시끄러웠다. 거기서 쓴 것은 이 시 한 편과 ‘어머니’라는 시밖에 없다. 끄적댔던 나머지 것들은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하고 책 갈피 속에서 소리 없이 죽었다. 참으로 재주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시를 그만 두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다시 시에 손을 댔다. 그 실낱 같은 숨이 끊어지지 않고 여태껏 이어져온 것은 참으로 용하다. 시는 얼마나 내게 위안이 되어주었던가. 못쓰는 시이지만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운명이라고 하는가보다.
  “여보. 이 시 어때?”
  “21살 때 썼던 작품이야.”
  “잘 썼지?”
  칭찬해달라는 강요였다. 언제나 아내는 내 편이었다. 나는 어떤 대답이 나올지를 알고 있다.
  “응.”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으니 이렇게 해서라도 나는 힘을 얻곤했다.
  어제만 같다. 세월을 지나온 사람만이 세월이 빠르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경험은 거짓이 없고 진실만이 있다.
  아직도 나는 눈물이 마르지 않았나 보다. 지금쯤 마를 법도 할 텐데 그렁그렁 눈물이 고이는 걸 보면 참으로 신기하다.
  갈수록 눈이 어두워지고 그 눈물빛 때문에 세상은 갈수록 멀어지는 것 같다. 갈수록 시는 신비로워지고, 갈수록 세상은 보이지 않는다. 그 때문에 먼 길에 또 다른 내가 낙도처럼 서있는 것 같다. 내가 나를 찾아가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인 것인가.
  며칠 전 아내가 훈장을 탔다. 38년 동안 교직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 작은 체구의 아내가 참으로 위대해보였다.
 
      눈물나게
      아름답습니다

      당신이
      그런 사람입니다 
               - 필자의 ‘당신’ 전문
   
  그렇다. 고향 같은 아내, 아내 같은 고향이다. 고향과 아내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곳이다.
  ‘고향’도 처녀작이요 ‘아내’도 처녀작이다.
  봄비가 내린다. 봄비는 따뜻한 곳을 좋아하는가 보다.

▲ 신웅순 칼럼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