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장터] 행복해지는 사고의 전환
[모시장터] 행복해지는 사고의 전환
  • 정해용 칼럼위원
  • 승인 2015.03.23 10:55
  • 호수 7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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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해용 칼럼위원

귀하다는 것은 그것이 흔치 않거나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기 때문에 생기는 가치다. 아무리 값비싼 물건이라도 그것이 매우 흔해지거나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순식간에 값싼 물건으로 변하고 만다. 중세에 유럽에선 귀족들이나 피우던 담배가 지금은 천덕꾸러기가 됐고, 1백년 전 영국이 인도나 중국과 전쟁을 벌인 원인이었을 만큼 귀한 물건이던 홍차는 이제 마시는 사람이나 마시는 단순 기호품 이상이 아니다. 한국에서 30-40년 사이 바나나의 가치가 변한 것만 보더라도 ‘가치의 변화’라는 걸 이해하기엔 충분하다.  

물건들만 그런 게 아니다. 인간의 가치를 포함하여, 사람들이 귀하고 천하게 여기는 비교가치가 대개 비슷하다. 
비교가치는 경쟁을 부르고, 경쟁은 필연적으로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불러일으킨다. 경쟁은 또 지배욕이나 피해의식, 저항의 본능을 자극하며 그로 인해 긴장과 공포, 투쟁심리가 일어난다.
노자(老子)의 <도덕경>에 있는 말을 보면, 반드시 불가피한 것만은 아닌 것도 같다.
‘재능 있는 자를 높이지 않으면 백성들 사이에 다툼이 생기지 않고, 흔치 않은 재물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도둑질 하는 사람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不尙賢 使民不爭 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도덕경 3장)

요컨대, 학교에서 학업 성적이 높은 사람에게 상을 주거나 성적이 낮은 사람을 벌주지 않는다면 학생들이 성적에 목매달아 서로 시기 질투하며 경쟁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밤을 새느라 몸을 혹사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남의 답안지를 훔쳐보느라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될 것이고, 시험지 빼돌리기나 성적조작 같은 부정행위에 양심을 파는 사람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금은보석이라 해서 특별히 높은 가격으로 사고팔지 않는다면 그것을 훔치거나 빼돌리는 사람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한마디로 사람들이 도둑이나 강도질을 할 이유가 원천적으로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노자는 이어서 말했다. ‘무릇 욕심이 생길만한 것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사람들의 마음이 어지러워질 이유가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는 ‘어떻게 열심히 하는 사람과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을 비교하지 않을 수 있지?’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적어도 수백 년간 우리는 성적의 우열을 가리고 품행의 우열을 가려 그 결과대로 상과 벌이 결정되는 교육을 받았고, 또 그렇게 자식들을 길러왔다. 많은 학교들은 아직도 학생들 사이에 경쟁을 유도하는 방법으로 더 우수한 학생, 더 모범적인 인간을 길러내려 노력하고 있다.
노자의 ‘칭찬하지 않는 방법’과 전통적인 ‘칭찬과 징계를 통한 경쟁교육 방식’ 중 어느 게 더 좋은지에 대해서는 좀 더 본격적인 비교가 필요할 것이다. 좀 더 현실적인 비교를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교육방식, 우리 사고체계의 결과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더 지혜로워졌으며 얼마나 더 행복해졌느냐를 돌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한국은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와서 보고 감탄했을 만큼 ‘경쟁중심 교육’에 열심인 나라가 아닌가.

국민행복지수 세계 최하위, 청소년 자살율과 노인 자살율 최상위, 빈부격차 OECD 국가 중 최하위. 객관적 지표들로 보면 한국 사회는 행복해지는 데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변명하고 싶을 것이다. ‘그래도 교육을 많이 받아 똑똑하긴 하지.’
과연 그럴까. 수년 사이에 발표된 국민 ‘문해율(文解率)’이란 지표를 보자. 이를테면 전자제품의 매뉴얼이나 약국에서 사는 약상자 속의 설명서를 읽고 그 내용을 얼마나 잘 이해할 수 있는가 하는, 실생활에서 필요한 독해 능력을 따지는 지표다.

놀랍지만 초급대학 이상 대학진학률이 90%대에 달하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의 고급 문해율은 30%를 넘지 못한다. 공산품의 매뉴얼을 읽어도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는 사람이 적다는 의미다. 가방끈만 길었지 아는 건 적다. 매일 신문을 읽으면서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디 투표해야 우리 사회가 더 좋아질 지를 제대로 읽어내질 못하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다.

반면 북유럽 국가들은 대학 진학률이 대체로 60%대에 머물지만 고급 문해율은 70%를 넘는다. 최상위 선진국이면서 국민행복지수 또한 세계 최상위권이다. 대체 그들은 어떤 정신으로 살고 있는 것일까.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의 교육철학을 설명하는 ‘얀테의 법(Law of Jante, Janteloven)'이라는 게 있다. 그들은 이렇게 가르친다고 한다.

‘네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네가 우리만큼 잘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네가 우리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네가 우리보다 낫다고 착각하지 마라. 네가 우리보다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마라. 네가 우리보다 더 가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마라. 네가 모든 것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우리를(남을) 비웃지 마라. 누군가 너를 신경 쓰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네가 무엇이든 우리를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설마 우리가 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어려서부터 ‘너는 집안의 기둥이다, 우리 아들 최고다, 너를 사랑한다, 남에게 뒤처지지 말아라’와 같은 ‘입발림과 책임감’ 교육에 길들여진 한국인들에겐 적잖이 당황스럽게 들릴지 모른다. 우리의 경쟁과 차별 의식을 냉철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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