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장터] 3월에 생각하는 갯벌
[모시장터] 3월에 생각하는 갯벌
  • 박병상 칼럼위원
  • 승인 2015.03.30 09:57
  • 호수 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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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상 칼럼위원
자연물에 상을 주는 게 아니라 드리는 환경운동을 하는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은 2000년 3월 새만금 갯벌의 백합에 ‘풀꽃상’을 드렸다. “갯지렁이가 꼬물대고, 망둥어가 설쳐대고, 농게가 어기적거리고, 수백만 마리 찔룩이와 저어새가 끼룩거리는 생명의 땅”인 갯벌이 위기에 처했을 때, 새만금 갯벌에서 의연히 자리를 지키던 백합은 무척 컸다. 조개 중의 조개답게 어른 주먹 만했지만 요즘 시장에 나오는 백합은 초등학생 주먹보다 훨씬 작다.

‘그레’라고 말하는 도구를 등 뒤에서 잡고 갯벌을 끌고 몇 발 걸으면 탁하고 걸리는 감촉이 전달된다. 그때 그레를 끌던 아낙은 호미로 그 위치를 파 커다란 백합을 캘 수 있었는데 지금 갯마을에 백합을 잡는 아낙은 없다. 아니 갯벌 자체가 사라졌다. 이제 백합은 석유를 들이키는 기계로 갯벌을 흡입해 백합을 쓸어간다고 한다. 그러니 시장에 나오는 백합은 작다. 그레를 끌던 아낙의 맨손어업이 사라진 뒤의 싹쓸이 어업의 상처는 깊다. 기계가 휩쓸던 갯벌에 백합은 한동안 자취를 감출 것이다. 그나마 백합이 나오는 갯벌도 협소해졌다.

커다란 백합을 상합이라며 캐어내던 새만금 일원 갯마을의 아낙은 대개 중년보다 할머니가 많았다.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갯벌을 잃은 아낙들은 어디로 갔을까? 가까운 농촌에서 또 다른 노인과 어울리며 땅을 일굴까? 갯마을로 시집온 색시 때부터 갯일을 한 아낙들은 억척스러웠지만 자식에게 갯일을 물려주려하지 않았다. 시집와서 뵌 시할머니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갯벌은 공유수면이기에 누구든 언제든 받아주었지만 자식에게 갯일을 시키려하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사라지는 새만금 갯벌 앞에서 굵은 눈물 흘리는 젊은이는 거의 없었다.

바닷물이 썰고 나가면 익숙한 갯벌로 나가 서너 시간 그레를 끌면 한 식구 먹고 살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 비가 오나 눈이 내리나 바람이 부나 갯벌은 한결 같았다. 가난해도 힘이 불어들어도 갯벌은 언제나 받아주었다.

주꾸미의 계절이 돌아왔다. 단골 주막에 등장한 백합탕에 주꾸미를 넣어 데치면 막걸리 한 사발은 순식간 사라진다. 새만금 간척사업의 부당성을 알리는 성직자들이 삼보일배로 해창갯벌에서 출발했을 시간, 새만금 예정지의 앞바다로 주꾸미가 올라왔다. 벌써 12년 전의 일이다. 알을 가득 채운 주꾸미를 데쳐먹으며 갯벌의 무궁한 가치를 실감했던 사람들은 이맘때 수입 주꾸미로 마음을 달래야 한다. 가녀리게 남은 갯벌에 주꾸미가 사라진 건 아니지만 찾는 이의 수요를 감당하지 못한다.

한빛원자력발전소로 이름을 바꾼 영광군의 핵발전소 1호기는 1986년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내년이면 제 수명을 다하는데, 고리와 월성의 예를 보아 연장할 게 뻔하다. 영광 핵발전소가 후쿠시마의 예처럼 폭발한다면? 우리 서해안의 갯벌은 돌이킬 수 없게 오염될 것이다. 태평양처럼 빨리 희석되지 않는 황해는 수심이 낮지만 수많은 생물을 품는 갯벌을 가진다. 해안에 수많은 패총을 가진 우리는 바다만 잃는 게 아니다. 어쩌면 생명도 부지하기 어려울지 모르는데, 중국은 자국 동해안에 수십 기의 핵발전소를 지으려 한다. 중국은 핵발전소를 감시하는 시민단체도 없을 텐데.

주꾸미가 알을 낳으면 실뱀장어가 강을 찾아 하구로 몰려드는데, 서해안 갯벌을 향한 강은 강어귀 둑으로 가로막혔다. 갯벌은 거듭 매립되고 매립된 갯벌에 조성된 공단은 폐수를 흘려보낸다. 상처받은 갯벌이 봄을 만끽하지 못하는 3월, 바다와 연결고리를 잃은 육지는 봄꽃이 만개할 것이다. 뭇 생명이 싹트는 봄이 왔으니 봄을 느껴야 하는데, 왠지 불안하다. 내년 이후에는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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