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생계 막막한 장항생태산업단지 철거 주민들
■특집/생계 막막한 장항생태산업단지 철거 주민들
  • 허정균 기자
  • 승인 2015.04.27 15:54
  • 호수 7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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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에 집·전답 빼앗기고 살아갈 방도가 없다”
“지금 남아 있는 사람이라도 한 데 모여 살 수 있게 해달라”

지난 2007년 5월 정부는 갯벌을 매립해 조성하겠다는 군장국가산업단지 장항지구의 사업을 중지하기로 결정하고 내륙에 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는 안을 서천군 대안사업으로 제시했다. 서천군이 이를 받아들여 2009년 1월 산업단지 지정 및 개발계획 승인 고시가 났으며 2012년 10월부터 토지 보상에 착수해 보상이 거의 끝나 지난 3월부터 건물 철거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현재 7가구는 정부의 보상을 거부하며 철거가 진행되고 있는 마을에서 살고 있다. 지난 21일과 22일 <뉴스서천> 취재팀이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생존권이 무참히 짓밞히고 있는 이들을 만나보았다.

▲ 철거중인 옥남2리(날머리) 마을

내집 살면서 20만원 임대료

서태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한 지맥이 낮은 구릉을 이루며 흘러내려오다 새가 날아오르는 듯한 형국을 이뤄 ‘날머리’라고도 불리는 옥남2리는 낮은 산을 뒤에 두르고 50여호가 옹기종기 모여 살던 마을이었다. 마을 앞 기름진 들판은 말 그대로 문전옥답이었다.

처음 1차에서 이 마을은 산업단지에서 제외되었다. 마을 땅 85%는 수용되었지만 마을 만은 제외되어 다들 다행으로 여겼다. 그러나 2008년 계획이 변경되면서 마을이 송두리째 포함됐다. 이후 주민들은 “땅은 내줄 수 있지만 마을만은 제외해 달라”며 군수를 찾아가 읍소도 해보고 시위도 해보았지만 이들의 요구는 외면당했다.

▲ 날머리 마을 주민들

텃밭 마을 앞 농수로에서는 개구리 울음 소리는 여전했지만 평화롭게 살아가던 마을은 폭격을 맞은 듯 했다. 무너져내린 가옥 옆 텃밭 한 귀퉁이에 장다리꽃이 가을을 기약하고 있는 모습이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철거되지 않은 성한 집이 있어 찾아가 보았다. 집 주인 조화순 할머니는 전동차를 타고 밭에 다녀오는 중이었다. 이미 경작을 금하고 있지만 전동차 바구니 안에는 호미가 있었다.

“이렇게라도 일을 해야지 그러지 않으면 마음이 산란해서 있을 수가 없어”
올해 80의 연세에 허리가 굽어 걷기조차 불편한 몸이지만 한창 씨를 뿌려야 할 계절을 시름으로만 보낼 수 없는 것이다. 조 할머니는 동갑인 남편과 같이 살고 있는데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지는 바람에 공탁 기일을 놓쳐 소송비용 400만원을 내야 한다는 통보가 왔다.

“소송은 지들이 해놓고 그 비용은 왜 우리가 내야 합니까?” 조 할머니는 도저히 납득을 할 수 없다. 집도 정부에서 수용한 상태에서 한 달에 20만원씩 임대료조로 내야 한다.

▲ 날머리 마을 주민들

“인공 때 공산당도 이러지 않았다”

같은 처지에 있는 이웃 주민 5명이 모여들었다. 이들의 주장은 이 보상 받아서 나가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이 받은 보상은 대지는 평당 20만원 안팎, 논밭은 평당 9~10만원, 주택은 보통 4천만원 안팎이다.
농토가 많은 사람은 수억씩 보상을 받아 서천이나 장항에 나가 집을 사고도 여생을 보낼 여윳돈이 남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주택 마련도 어렵다. 전세라도 마련한다지만 생활비를 마련할 길이 없다. 나가 살고 있는 자식들도 객지에서 어렵기는 마찬가지인데 더 짐을 안겨 줄 수도 없다.

백계주(83) 할머니는 “나이 먹었어도 논밭 일구며 가용돈 얼마든지 쓰고 살았는데 이돈 받아가지고 나가 살 수 없다. 땅만 고스란히 빼앗겼다. 인공 때 공산당도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다”며 분을 삭였다.

“이렇게 살길이 막막한데 누구 하나 와서 들여다보는 사람도 없어요. 군청에 가서 따졌더니 나소열 군수 하는 말이 ‘아주머니들 무서워서 못간다’는 거라. 이게 군수가 할 말인가요?”
이후론는 군수가 악수하자고 해도 안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2차 때 마을이 포함된 것을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마을 앞 들판에 선 고압선 철탑 두 개를 가리키며 “저 철탑을 제외시키느라 이 마을을 포함시켰을 것”이라는 말도 했다.
이들은 “나가서는 도저히 살 방도가 없으니 지금이라도 남은 가구들 이 마을에 모여 살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이들은 대통령, 국무총리에게도 탄원서를 보낸 상태이다.

▲ 옥북리 김순월씨 주택

직업도 잃고…70노인 어디서 일하나

40여호가 살아가던 옥북리 마을은 1가구가 남아 있다. 김순월(72)씨 부부이다. 단독주택에 밭 1000여평, 남의 논 조금 부치며 살아가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김씨 부부가 받게 되는 보상금은 4500만원이다.
“이 보상금으로는 전세 살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못나가고 있습니다. 텔레비전 보면 다 도독놈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우리같은 서민들 못살게 합니다”

▲ 김순월씨 주택 내부 모습

작은 단독주택이지만 방 내부를 보니 널찍한 거실에 방이 3개 목욕탕, 식당, 다용도실이 딸린 구조였다.
“40평짜리 아파트도 이만 못합니다. 그런데 4500만원 주고 나가라니 이건 국가가 아니라 강도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직업도 잃고 날품팔이 밖에 더되겠어요. 더구나 우리같은 노인들 누가 받아주겠어요?”

▲ 교회만 남은 옥남1리 마을

옥남1리의 15세대는 철거가 끝나고 교회만 남았다. 낮은 구릉 위에 있는 이 교회는 정지작업을 하기 직전까지 있기로 토지주택공사측과 합의를 봤다. 교회 건물은 8000만원에 합의를 보았다. 주민들은 장항읍으로, 또는 서천읍으로 뿔뿔히 흩어졌다. 그러나 신도들 대부분은 산업단지에 포함되지 않은 길 건너 마을이어서 목회활동에는 큰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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