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엄마 <2>
늙은 엄마 <2>
  • 뉴스서천
  • 승인 2002.02.28 00:00
  • 호수 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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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려 방앗간을 지나면 지은지 얼마 안된 새인이네 집이 나온다.
“잘가. 그리고 오늘 고마웠어 .” 인사하고 지나쳐가려는데
“민지야, 우리 독서신문 같이 할까? 얼른 집에 가서 가져와. 혼자 하면 재미없잖아.”
하며 새인이가 내 어깨를 잡는다.
“그럴까? 알았어. 가방 놓고 올게.”
차 한 대가 겨우 드나들 수 있는 골목길을 한참 올라가니 엄마 목소리가 들려온다.
“자장 자장 우리 준영이, 잘도 잔다. 자장 자장 “
엄마는 준영이를 업고 마당을 서성거리고 계시다가 내 발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신다.
“지금 오냐? 배고프지? 방에 고구마 쪄놨으니까 그거 먹고 숙제혀라.”
미안하기도 하고 괜히 심술이 나기도 해서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가니 책상 위에 고구마 세 개가 올려져 있다. 누렇게 색이 변한 작은 플라스틱 접시에 담긴 고구마는 찐지 얼마 안됐는지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마당을 향해 “엄마, 독서신문은?” 하고 소리쳤다.
“거기, 부엌에.”
‘부엌?’ 나는 깜짝 놀라 부엌을 향해 달려갔다.
아니나다를까 주황빛 김치 국물을 빗물처럼 흘려보낸 자국을 남긴 독서신문이 냉장고 옆에 놓여 있었다.
“엄마? 이게 뭐야? 응? 그냥 내 책상에 놔두지 않고? 난 몰라!”
“으응? 왜? 뭐 묻었어?”
“지난번 포스터도 이렇게 해놓더니, 또야?”
나는 독서신문을 들고 집 밖으로 나와버렸다.
다른 건 몰라도 이번 독서신문만큼은 열심히 해서 선생님께 칭찬 받고 싶었는데, 그래서 며칠 동안 만화도 안 보고 열심히 했는데…….
찔끔 흘러나온 눈물을 떨어내고 새인이네 집 초인종을 눌렀다.
“민지니? 들어와. 문 열렸어.”
기다린 듯 새인이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안녕하세요?” 집안으로 들어서며 눈으로 새인이 엄마부터 찾았다.
“민지 왔구나. 어서 숙제해라.“언제 들어도 좋은 목소리가 부엌에서 흘러나왔다.
“와, 너 벌써 이만큼 했어?” 어느새 둘둘 말린 종이를 펼치며 새인이가 소리쳤다.
“뭐, 아직 다 안했어.”
“이렇게 다 해놓고 딴 소리는, 아무튼 넌 이런 생각이 어디서 나오니? 난 아무리 생각해도 이 넓은공간을 채울 수 없어 고민인데, 뭐야, 벌써 다 하고 색칠하고 있잖아.”
“그러길래 엄마가 민지처럼 책읽어야 한다고 했잖아. 민지는 집에 가보면 늘 책 읽고 있어서 아줌마가얼마나 부러운지 몰라.”
어느새 방안으로 들어오신 아줌마의 손엔 김이 나는 고구마가들려 있었다.
“이거 먹고 해라. 그리고 새인이는 민지한테 좀 배워. 그런 신문 만들 때마다 엄마 괴롭히지 말고.”
“치, 엄마는 매일 민지만 칭찬하구…….”
갈색 빛이 나는 둥근 그릇에 담긴 고구마는 먹기 좋게 잘라져 있었다.
“야, 어서 먹자.” 새인이가 집어준 고구마 껍질을 까며 잠깐동안 내 책상에 놓여있을, 지금쯤은 차갑게 식어있을 고구마를 생각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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