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장터]나는 지금 하프타임입니다
[모시장터]나는 지금 하프타임입니다
  • 양선숙 칼럼위원
  • 승인 2015.07.06 15:18
  • 호수 7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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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의 여파로 나라가 심난한 이 때에 나는 한가로이 꿈(hope) 이야기나 하려고 한다.
십대 때 내 꿈은 여군이었다. 국방색 제복이 멋있어 보이기도 했지만, 나 스스로를 남자 같다고 생각했기에 남성스런 직업을 선호하던 중 어린 내게 가득했던 애국심이 나라를 위해서 일하기엔 군인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여군 부사관에 지원하여 그 꿈을 이룰까 생각했었다.

요즘 텔레비전 중 군대생활을 다룬 프로그램이 있다. 대한민국 건아들의 늠름한 모습을 보며 아버지들은 자신의 군 시절을 추억하고, 어머니들은 군에 보낸 아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훔치며, 여성들은 말로만 듣던 내무반을 들여다볼 수 있기에 남녀노소에게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다.

인간의 한계를 경험하는 끝없는 훈련과 공동체 생활에서 오는 힘겨움을 화면으로 보면서 어릴 적 내가 생각한 군대는 로망에 불과했구나 싶다. 군대 다녀온 분들은 저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며 힘들었던 군대 경험담을 들려주곤 하는데 여군이 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작정 싹튼 애국심을 꽃피웠던 내 어릴 적 꿈 여군은 생각만 해도 기분 좋아진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꿈을 꾸었다. 어렵고 바쁜 환경이었지만 해보고 싶고, 소위 사명이라는 해야 하는 일이 내게 있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의지도 가득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나를 알아갈수록 부족한 내 모습이 보이고 자신감도 떨어졌다. 인생의 초라한 시절을 보낼 때도 가슴을 뜨겁게 하던 꿈이 있었기에 당당히 이겨냈는데, 인생의 맛을 알만한 시기에 꿈을 잃어버렸다.

성년이 된 후 때때로 달랐지만 무엇을 이루기 위해 공부하고 일하며 열심히 살았다. 아이들 키우느라 바쁘게 동분서주하면서도 꿈을 놓지 않았고 힘들지 않았다. 그러다 찾아온 한가로움이 낯설었다. 이렇게 시간을 소비해도 괜찮은가 싶기도 하고 남는 시간을 어디에 쓸까 고민스럽기도 했다.

축구 경기에는 하프타임(half time)이 있다. 전반전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며 전략을 수정하거나 확인하며 후반전의 필승을 다짐하는 시간으로 감독이나 선수에게 매우 중요한 시간이다. 나는 지금 인생의 하프타임을 갖고 있다. 혹자는 인생 전반부가 성공을 위해 달리는 시간이라면, 인생 후반부는 재능을 펼치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서둘지 않고 지친 마음 한 숨 쉬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깊이 생각해 볼 때이다. 오늘 새벽에도 교회당에 앉아 가족들 이름 하나하나 새겨가며 소원을 빌고, 나는 이런 삶을 살고 싶다고 도움을 구하고 왔다. 그 동안은 무엇을 이루고자 기도했다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싶다고 기도한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안주(安住)와 한가로움으로 인해 열심히 달려갈 때는 보지 못했던 나를 들여다보는 유익을 얻는다.

“아무 것도 안하고 싶다. 이미 아무 것도 안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 것도 안하고 싶다”는 시에프의 카피 문구가 지쳐있는 현대인을 대변하는 듯하다. 아무 것도 안하는 것은 나태함이지만, 이 시간을 재충전의 기회로 삼아 자신을 돌아보고 계획한다면 강렬하게 일하고 싶을 때가 올 것이다. 그 때 나는 멋진 후반전을 시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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