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나라사랑에 관한 오래된 교훈
■ 모시장터/ 나라사랑에 관한 오래된 교훈
  • 정해용 칼럼위원
  • 승인 2015.08.24 15:08
  • 호수 77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정해용 칼럼위원
맹자가 살던 시대는 중국의 여러 제후국들이 전쟁으로 시작해서 전쟁으로 날이 새던 전국시대(戰國時代)였다. 맹자는 옳은 정치로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 군주를 찾기 위해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다. 노나라에 들렀을 때 군주 목공은 맹자를 붙들고 푸념했다.

“우리 군사들이 추나라를 공격했는데 패하고 돌아왔습니다. 추나라는 한 주먹감도 안 되는 작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우리 군대의 장수들이 33명이나 죽었고, 징집되어간 백성들은 그걸 보면서도 모두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쳐왔습니다. 창피하고 분해 죽겠습니다. 도망쳐온 병사들을 다 처형하자니 죽여야 할 숫자가 너무 많고, 그대로 살려두자니 윗사람을 돕지 않은 죄를 방관하는 격이 될 것입니다. 어찌 해야 할까요.”

과연 고민할 만했다. 그러나 맹자는 별로 고민하는 기색 없이 말을 시작했다.
“이해가 됩니다만, 한 가지 말씀드리죠. 제가 알기로 얼마 전 노나라에는 심한 흉년으로 기근이 들었습니다. 왕의 백성들 가운데 노약자들은 굶어죽어 도랑과 시궁창에 뒹굴고 건장한 사람들은 수천 명도 넘게 사방으로 흩어져 떠나갔습니다. 그때 임금님의 창고에는 곡식이 가득했고, 재물창고도 가득 차 있었지요. 그런데 신하들 가운데 아무도 임금에게 그 사실을 고하고 백성들을 구제하도록 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윗사람들이 태만하여 백성들을 죽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쟁에서 윗사람들이 죽어갈 때 백성들이 함께 죽지 않은 것은 그저 받은 대로 돌려준 것일 뿐입니다. 그들을 나무라지 마십시오.” (맹자 양혜왕 하편)

좋은 정치란 항시 백성의 어려움을 걱정하고 백성의 삶을 먼저 도우려고 노력하는 정치다. 그런 정치가 백성에게 도달하면,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백성들이 발벗고 나서서 윗사람들을 구하고 나라를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을 리 없다. 그런데, 평소에 백성들의 것을 빼앗아 사치스런 정치를 하고 자기들 뱃속만 불리는 위정자들이 나라에 위기가 닥쳤을 때마다 백성들에게만 헌신을 요구하고 목숨을 요구한다면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목숨을 바치려 하겠는가. 어려운 정치학의 논리가 아니다. 정책의 원리는 이처럼 단순한 상식에 근거하는 것이다.

맹자의 먼 스승뻘인 공자가 노나라의 사구(대법관)일 때 있었던 일이다. 어느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맞고소한 사건이 있었다. 공자는 아버지와 아들을 모두 구금하도록 했다. 그리고는 이 사건의 심리를 마냥 미뤄두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감방에 갇힌 지 석 달이 지나자 마침내 아버지가 먼저 지쳤던지, 아들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고 풀어줄 것을 청했다. 그러자 아들도 아버지에 대한 고소를 취하했다. 보고를 받은 공자는 두 사람의 요청을 받아들여 사건을 종결짓고 두 사람을 석방시켰다.

이 사건은 조정에서 화제가 되었다. 조정의 실권자인 계강자가 듣고 실망을 나타냈다.
“사구가 처리한 일을 보니 심히 혼란스럽소. 공자는 예전에 내게 국가는 자식의 효(孝)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양보하지 않고 맞고소한 불효막심한 일이 일어났는데도, 그 불효를 다스리지 않고 아버지와 아들을 똑같이 벌주다가 똑같이 석방했다는 말인가. 그러면 공자는 내게 거짓말을 했던 것인가.”

제자들이 와서 그 말을 전하자 공자는 깊이 탄식하면서 말했다.
“오호, 윗사람이 먼저 도를 잃어서 생긴 일인데, 아랫사람만 처형한다면 그 것이 과연 도리일까? 그것은 도리가 아니다(上失其道 而殺其下 非理也).”
그리고 이 일을 정치에 빗대어 덧붙여 말했다.
“윗사람이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 생긴 잘못은 그 죄를 백성에게 물어선 안 된다. 윗사람이 제대로 통솔하지도 못해서 생긴 잘못을 아랫사람에게만 묻는다면 이는 도둑질이요, 시도 때도 없이(세금이나 공과금 명목으로) 뜯어가는 것은 횡포며, 책임소재를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결과만 요구하는 것은 백성을 학대하는 것이다. 정치에는 도둑질, 횡포, 학대 - 이 세 가지가 없어야 하고, 그런 다음에야 법의 처벌이 정당해지는 것이다.”

광복절을 전후로 서울 시가지를 비롯하여 전국 곳곳이 태극기 물결로 뒤덮이고, 방송들은 ‘애국심’을 고취하는 정치적 프로그램들로 시끄러웠다. 애국이란 주제를 인위적으로 떠들어댈 수는 있어도 애국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국민 스스로의 몫이다. 정부 차원의 애국 캠페인이 국민의 마음 깊이로 자연스럽게 와 닿지 못하다면 정부 일방의 쇼나 이벤트로 그칠 수도 있다. 곳곳에 대형 태극기를 붙이고, 영화 한 편 볼 때마다 먼저 애국가를 따라 부르게 한다 해서 진정한 애국심이 일어나겠는가. 2002년 축구 월드컵 때는 정부가 애국이란 말을 입 벙긋도 안했는데 국민들 스스로 태극기를 들고 길거리로 몰려나갔다. 그런 자발적인 마음이 비로소 국력이 되어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 당당한 민주국가 대접을 받았던 것이다. 국격, 국가경쟁력이며 공직청렴도며 국민행복지수가 다시 선진국 최하위로 굴러 떨어진 지금, 국가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인위적인 캠페인이 아니라, 바로 국민의 ‘마음’을 감동시켜 진정한 애국심이 일어나게 하는 노력일 것이다.  <시인 peacepress@daum.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