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자식 취직 시키자고 부모 임금 깎는 게 노동개혁인가?
■ 모시장터/자식 취직 시키자고 부모 임금 깎는 게 노동개혁인가?
  • 편집국 기자
  • 승인 2015.08.31 11:41
  • 호수 77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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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내가 하는 일 중에 ‘시민노동법률학교’라는 게 있다. 대다수 시민들이 노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법으로 보장된 노동자들의 권리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분들이 많지 않아 노동법을 가르치는 강좌다. 임금, 근로시간, 징계, 해고 등 법이 정한 최소한의 근로기준만 알아도 임금을 떼이거나 부당한 해고를 당하는 일을 막아낼 수 있을 터인데, 어디에서도 노동법을 알려주지 않아 억울한 일을 당하는 시민들이 많기 때문에 시작한 일이다.

주로 일주일에 한 번씩 4주 동안 진행되는 강좌인데, 교육에 빠짐없이 나오신 50대 후반의 여성분이 있었다. 피곤함을 무릅쓰고 열심히 강의를 들었던 그 분이 교육이 다 끝난 후 그런 말씀을 하셨다. “노동법을 들어보니, 우리 회사보다 법이 훨씬 더 좋네요.” 그 분의 말씀은, 그 분이 다니는 회사가 법이 정한 최소한의 기준마저도 지키지 않고 있다는 얘기였다. 

또 한 번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젊은 청년이 강좌에 왔다. 어느 날, 주휴수당을 설명하는 노무사의 강의를 듣다가, ‘그게 정말로 법에 있는 거냐?’고 되물었다. 주휴수당이란 일주일동안 15시간 이상, 정해진 노동시간을 근무하면 반드시 하루치의 일당을 주도록 하는 임금인데, 그 청년은 그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주휴수당이라는 걸 받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 게 법으로 정해져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고 했다.      

예상은 했지만 그런 사례들은 많았다. 근로계약서에 정한 시간보다도 1시간 일찍 작업준비를 시키면서 일한 걸로 쳐주지 않는다거나, 한 달 일한 시간과 임금을 따져보니 최저임금을 위반했다거나... 둥이다. 강의를 맡아준 노무사는 강의가 끝난 후에도 늘상 노동상담까지 해야만 했다. 많은 분들이 막연히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강의를 들으면서 명확하게 알게 되어 기쁘다기보다는 씁쓸해했다. 법을 알았다고는 해도 당장 내일 회사에 가서 어쩌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조도 없는 회사에서 노동자 개인이 회사를 상대로 권리를 주장하고 법을 지키라고 말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닌 현실 때문이다. 그게 나는 몹시 안타깝고 슬펐다.

따지고 보면 노동으로 살아가는 대다수의 시민들에게 노동법을 가르치지 않는 우리 사회는 참으로 이상한 사회다. 초중고등학교 12년을 다녀도, 대학 4년을 다녀도 정규수업에서 노동법을 가르치는 곳은 한 군데도 없다. 물려받은 재산 없이 당장 학교를 졸업하면 노동자로 살아가야 할 사람들에게, 나라에서 정한 ‘노동법’을 나라에서는 왜 가르치지 않는 걸까?

나는 우리나라가 지나치게 사업주 편으로 기울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노동법은 만들었으되 노동자들이 그 법을 알고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불온한 일로 취급되었다. 노동법은 있지만 사업주들이 노동법을 지키지 않아도 큰 벌은 받지 않는다. 기업의 부정과 부패, 탈법과 불법은 눈감아 주면서 노동자들의 권리는 보호하지 않는 정부, 법을 집행해야 할 정부가 법 따로 현실 따로 방조한 결과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친기업 반노동’ 사회가 되었다. 노동자 편을 들어달라는 게 아니라 최소한 노동자와 사업주가 힘의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공정성을 견지했어야 할 정부가 기업편만 들어 왔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박근혜 정부는 노동시장을 개혁한다면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후퇴시키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에 있다. 바로 ‘노동시장구조개혁’인데, 그 중 가장 핵심적인 게 임금피크제이다. 결국 평생 일해 온 부모세대의 임금을 깎아 비정규직 청년고용을 늘리겠다는 방안이 어째서 ‘세대 상생’이며 ‘노동시장개혁’인지 나는 정말 모르겠다. 노동시간을 단축해서 일자리를 나누는 방식으로 청년실업을 해결하자는 노동자들의 오랜 주장을 무시하면서 임금피크제를 강제하고, 성과가 낮은 노동자들을 쉽게 해고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고, 통상임금을 축소하고 노동시간을 연장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는 게 어떻게 노동개혁일 수 있으며 4대 사회개혁의 핵심일 수 있는가. 나는 더더욱 기울어지는 우리 사회의 불균형과 이런 폭력적인 조치를 확신에 차서 몰아붙이는 이 정부의 신념이 무섭기만 하다.   

자신의 노동으로 정직하게 먹고 사는 시민들의 삶은 더 팍팍해질 것이다. 법이 개정되면 더 적은 임금으로 더 긴 시간 일해야만 한다. 자식 세대의 취직을 위해 임금을 깎아야만 하는 부모세대나, 그런 부모를 보면서 취직해야 하는 자식 세대나, 이 조삼모사의 ‘웃픈’ 현실은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 기울어진 사회가 유지되기를 바라는 기업과 정부를 제외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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