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교과서, 민족의 미래가 걸린 문제
역사 교과서, 민족의 미래가 걸린 문제
  • 정해용 칼럼위원/시인
  • 승인 2015.10.24 13:49
  • 호수 78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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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와 접한 서태평양 한 가운데 마리아나 제도를 이루고 있는 괌과 사이판은 미국령의 섬들이다. 가장 큰 괌 섬의 크기가 우리나라의 거제도에 비교될 정도다. 큰 섬은 아니지만 산과 해변 사이에 적당한 농지도 있어서, 누가 굳이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일정 정도의 인구가 자급하며 살 수는 있는 정도다. 이 섬에 살던 원주민 차모로족은 건강하고 순박하고 부지런했다.

지금부터 약 4천 년 전에 정착한 것으로 추정되는 차모로 원주민들은 4~5백년 전 포르투갈의 탐험가 마젤란 함대가 이곳을 발견하기 전까지 수천 년을 그들만의 힘으로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1521년 마젤란에 의해 서방세계에 그 존재가 알려진 뒤 스페인 무적함대가 들어와 섬을 유린했고 1백년 뒤부터 공식적인 식민지가 되었다. 20세기에 이 섬은 미국의 손에 들어갔다. 대륙간 이동을 배에 의존하던 시대에 이 섬의 위치는 중요했다. 태평양 건너 아시아로 오는 배들이 들러갈 수 있는 중간 보급기지로 훌륭했기 때문이다.

1941년 태평양전쟁 시기에 일본은 괌과 사이판을 차지했다. 그로부터 만 4년이 안 되어 미국 함대는 막대한 함포사격으로 괌에 주둔한 일본군을 무력화시킨 뒤 섬을 되찾았다. 이 섬은 미국의 전술상 매우 중요했다. 폭격기들이 이 섬에서 발진하여 일본 땅을 공격하고 되돌아오기에 딱 좋은 거리였기 때문이다. 1945년 8월 6일과 9일,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각각 1기의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B-29 폭격기도 바로 사이판의 티니안 섬에서 출발했다.

이처럼 열강들이 군사 요충지로서, 또 항해 요충지로서 마리아나 제도의 섬들을 지배하고 빼앗고 다시 되찾는 일을 벌이는 동안, 본래의 섬 주인인 차모로인들이 그 결정에 어떤 형태로든 관여했다는 얘기는 없다. 마치 문명인들이 야생동물들의 영토를 제 마음대로 점령하고 사고팔고 나눠 갖듯이, 원주민 차로모인들의 운명도 열강끼리의 승부나 거래에 따라 오고갔다.

아, 그 과정에 원주민이란 존재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이 땅을 차지한 강대국 점령자들에게 현지에서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노동력으로 취급되었다. 일제가 군사목적으로 차지한 뒤에는 일종의 포로가 되어 강제노동, 강제이주, 무단 감금과 처형, 고문, 강제 수용의 대상이었고, 나아가 성노예 역할까지 강요받았다.

생각해 보면 20세기 초반 한반도를 식민 지배한 일본제국의 위정자들도 조선인의 권리를 마치 이처럼 여겼다. 인간의 모습을 갖추고 살아있기는 하지만 인격적으로 존중할 가치는 별로 느낄 수 없는 존재, 일제 강점기 한국인들의 위치가 그러했다. 필요하면 끌어다가 공장이나 땅굴 파는 작업에 배치하고, 필요하면 끌어다가 전쟁터 총알받이로, 여성들은 접대부나 정액받이로 이용하고 용도가 다하면 잔혹하게 내다버리거나 죽여버렸다. 실험동물 다루듯 산 사람을 끌어다가 인체실험과 해부까지 서슴치 않은 731부대의 만행에 이르면, 극악무도한 범죄성은 말로 성토하기 어려울 정도다.

마리아나의 원주민들은 워낙 작은 면적에 적은 인구에 힘이 없어 마냥 당했다 치더라도, 수천만 인구에 수천년 문명전통을 가진 조선이 왜인들에게 그런 꼴을 당했던 역사는(외세의 만행을 넘어서)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태평양 동쪽에 있는 하와이는 1500년 무렵 유럽 탐험가들이 드나들 때 추정인구 3백만의 왕국이었다. 그들은 소규모의 유럽 원정부대를 해변에서 물리칠 정도의 조직력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유럽 상인들이 드나들면서 들어온 전염병과 총기 등으로 인해 원주민들은 급속히 몰락하며 죽어갔다. 19세기에 그들은 헌법과 행정부 사법부 의회까지 갖춘 왕국이 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조종을 받는 공화주의자 14명의 쿠데타로 왕정이 파괴되면서 하와이는 자존의 능력을 잃었다. 쿠데타 세력은 최초의 공화국을 꾸린 즉시 나라를 미국에 바쳤다. 첫 대통령에 뽑힌 자가 미국의 지시를 받는 총독이 되었다. 1900년 미국의 영토로 편입될 때 겨우 15만 남짓 남은 하와이 주민들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미국 시민이 되었다. 자기 정체성을 잃고 미국 시민이 된 본래의 폴리네시아 민족은 자신들의 땅에서 소수자가 되고 말았다.

1959년 하와이가 정식으로 미국의 50번째 주(州)로 승격되었을 때, 놀라운 일이지만 이곳 한국에서도 이 나라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하자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었다. 일본에 붙든 미국에 붙든 상관없다며 자기 동족까지 팔아넘기는 자들은 친일이다 친미다 하는 비난조차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일제 식민 지배로 인해 조선이 근대화되고 조선 왕정시대보다 편안해지지 않았느냐’ 라는 것이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이다. 동족들이 용병으로 끌려가고 가족과 찢어져 강제노동에 동원되고 매맞고 고문당하며 딸들은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갔던 엄연한 역사조차 외면하고 감추고 심지어 두둔하면서 일본에서 부활하는 제국주의 논리에 동조한다.

최근 시끄러운 중·고교 ‘국사교과서’의 단일화, 국정화 배후에는 이러한 기회주의 논리를 가진 식민시대 찬양론자들이 숨어있다. 국정교과서를 주도적으로 외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의도는 명백하다. 민족의 자존감을 팽개치고 강대국에 빌붙어 살아도 좋다는 기회주의 논리를 가진 교과서를 만들어 자신들의 과거와 현재의식을 합리화하려는 것이다. 이런 교과서로 청소년들을 가르칠 때 과연 이 나라의 미래는 있을 것인가. 역사교과서의 문제가 심각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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