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쌀용 쌀’ 수입·농업정책, 설 곳 없는 농민들
‘밥쌀용 쌀’ 수입·농업정책, 설 곳 없는 농민들
  • 김장환 기자
  • 승인 2016.01.04 16:42
  • 호수 79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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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값’ 20년 제자리, 땀 흘린 만큼 ‘쌀값’ 받고 싶다!
김병국 농민의 깊게 패인 주름

▲ 김병국씨
올해는 적당한 강우량과 일조량으로 서천 들녘은 황금색 물결이 넘실거렸다.
통계청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재배 면적은 2% 감소했지만 10a 당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올해 생산량은 425만8000톤으로 지난해 424만1000톤 대비 0.4% 늘어났다고 한다.

가난하고 먹을 것이 없던 시절에는 풍년을 맞으면 모든 농민들의 마음도 풍년이었지만 쌀 수입 개방 이후로 풍년은 농민들에게 달갑지만은 않은 소식이 돼 버렸다.

지난 2015년은 들녘의 풍년과 달리 농민들에게 큰 상처만 남긴 해이기도 하다. 지난 2005년 정부가 ‘공공비축수매제도’를 시행하면서 쌀값이 10년 동안 제자리걸음을 하더니 지난 7월에는 농민들과의 약속을 뒤로 하고 밥쌀용 쌀 3만 톤을 풀면서 온 농민들의 공분을 사게 만들었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인 서천 또한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서천읍 두왕리에서 열심히 땀 흘리고 살아가는 김병국(57)씨도 이들 중 한명이다.

현대중공업을 다니다 불안한 수입으로 서른을 갓 넘은 나이에 서천으로 돌아와 농업에 종사하게 된지 25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변한 것은 얼굴에 패인 주름과 조금 늘은 농사채가 전부다. 그 당시만 해도 직접 모를 심고 낫으로 벼를 베며 힘든 농사를 지었지만 농민들의 마음은 그때가 더 풍요로웠다고 회상하고 있다.

김병국씨는 “25년 전에는 며칠 품을 팔아야 쌀 한말을 받았고 쌀 열댓 가마에 논을 살 수 있을 만큼 귀한 대접을 받았지만 지금은 쌀 한 가마 팔면 한 가족 회식비나 한자리 술값밖에 되지 않는다”며 “20년 전 쌀값이 지금의 쌀값이니 누가 농촌에서 농사를 짓겠냐?”고 말했다.

실제로 연도별 쌀값을 확인해 보니 지난 1996년 쌀값이 13만6000원, 지난 2000년에는 16만5000에 팔렸지만 올해 쌀값은 14만원으로 20년 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셈이다. 다른 품목과 비교하면 농촌의 현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 1980년 국립대 1년 평균 등록금은 34만4000원, 2015년에는 418만여 원으로 12배가 올랐고 자장면 값도 350원에서 4500원으로 13배 가까이 올랐다.

김씨는 150마지기를 기계로 농사를 지어 중농 규모이지만 소농들은 그저 품삯이나 건지는 정도다. 농사를 제대로 짓는데 초기 비용을 치자면 트랙터 1억원을 비롯해 콤바인 8000만원, 이앙기 4000만원, 건조기에 농약살포기 경운기, 관리기, 창고 이외에도 부수적인 농자재를 더하면 3억원이 훌쩍 넘는다.

소작농이나 귀농인, 젊은 농부들에게 비싼 농기계는 그림에 떡이나 마찬가지인 셈인 것이다. 김병국씨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쌀값은 그대로지만 농기계, 농약, 비료 등의 농자재는 3배에서 5배까지 올랐다”며 “25년 전만 해도 논 스무 마지기면 자녀들을 교육시키고 어렵지 않게 살았지만 지금은 150마지기를 짓는데 살기는 그때보다 더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밥쌀용 쌀까지 수입하는 정부의 농업정책에 쓴 소리도 잊지 않았다. 김씨는 “현재 남아도는 쌀이 나라미란 이름으로 수년째 쌓여있는데 밥쌀용 쌀까지 수입하면서 그 옆에 수입쌀을 쌓아두는 것이 정부의 농업정책”이라며 “정부는 이제라도 귀농인들이나 젊은이들이 꿈을 이루고 행복하게 가정을 꾸릴 수 있는 농촌을 만드는 데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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