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의 마을 이야기/(3)시초면 풍정리
■서천의 마을 이야기/(3)시초면 풍정리
  • 허정균 기자
  • 승인 2016.01.25 11:30
  • 호수 79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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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고쟁이에 배 닿던 유서깊은 마을
풍정리 산성 천제단 발굴에 주민들 기대 커

▲ 시초면 풍정리 마을 위성사진
시초면 풍정리(豊亭里)는 조선시대에 서천군 시왕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풍동과 행동을 합해 풍정리라 했으며 시초면으로 편입됐다.
풍정리는 신굴과, 행정(또는 향정), 유산의 3개 자연마을로 구성돼 있다. 14가구의 귀촌 세대가 정착해 모두 68세대가 살고 있다. 서천에서는 자연마을 중에서 가장 많은 귀촌인들이 살고 있다.

▲ 후암리로 넘어가는 당산재 삼거리. 이곳은 배가 드나들어 뱃고쟁이라 불렀다. 마을 사람들에게 규휼미를 낸 백씨의 공덕비가 있다.
후암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당산재라 하며 문산 면소재지에서 나와 당산재를 넘어가다 보면 북쪽으로 소쿠리 속처럼 산자락에 감싸여 있는 마을이 행정마을이다. 큰 은행나무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당산재에는 산제당이 있었으며 칠월 칠석에 산신제를 지냈고 전염병이 돌거나 비가 오지 않을 때에 제사를 지냈다.
행정마을 남쪽에 5가호가 있는데 이 마을은 들축나무로 불린다. 들축나무란 상록관목으로 사철나무의 일종이다. 나무 이름이 그대로 지명이 된 특이한 곳이다. 옛날에 이곳에 서당이 있어서 지금도 서당굴이라 부른다.

▲ 당산재에서 바라본 안뜸
마을회관이 있는 으뜸 마을이 신굴이다. 신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인데 이 마을이 풍동이다. 마을 중앙에 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큰 샘이 있다. 이를 마을 사람들은 벙어리샘이라 부르고 있다.
신굴마을 안쪽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곳이 안뜸이다. 마을에는 흥씨 부자가 살았다 해서 흥부터라 부르는 곳이 있다. 예전 마을회관이 있었던 곳인데 지금도 기왓장이 출토되고 있다.

▲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 벙어리샘. 신굴마을 안에 있다.
풍동 동쪽에 있는 마을이 유산리(柳山) 마을이다. 수양버들나무가 많았는데 일제 때에는 면사무소가 있었다 한다. 도로 건너편 두루재산 기슭에 6가호가 있는데 이곳은 건너유산라 부른다.
후암리로 넘어가는 당산재 고갯길이 시작되는 삼거리가 뱃고쟁이이다. 이곳까지 배가 드나들었다 한다. ‘남양’이라 부른 풍정리 마을 앞 들판은 먼 옛날에는 바다였음을 지명이 살아남아 말해주고 있다.

기원전 5000~6000년 경의 빗살무늬토기는 주로 강 하구나 바닷가에서 출토되는데 기원전 1000년 전의 무문토기는 보통 낮은 구릉지에서 출토된다. 고고학에서는 무문토기가 출토된 곳도 당시에는 바닷가나 강가였다고 한다. 이후 차츰 해수면이 낮아졌다.

풍정리 뱃고쟁이에 언제까지 배가 드나들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조선시대까지 갯골의 형태로 남아있다가 오늘의 길산천과 도마천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 때까지 삼산리 질메다리까지 배가 드나들었다

서천~공주간 고속도로는 마산-시초-기산-화양면의 산줄기를 종으로 관통하며 2003년부터 시작됐다. 이 때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유적들이 발굴되었는데 화양면 추동리에서는 백제시대 무덤과 청동기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무덤, 집자리, 건물터 등 다양한 성격의 유규가 발견되었다. 그 가운데 백제시대 돌방무덤 6기가 유산마을 산기슭으로 옮겨져 복원되었다.

무덤 안에서는 백제 토기 및 금동제 귀걸이와 은제 팔찌 및 여러 가지 귀중한 유물이 출토됐다. 이로 보아 무덤의 주인공들은 웅진(공주)과 사비(부여)에 도읍했던 백제 중앙 세력과 관계가 있었던 유력집단으로 추정된다는 것이 학계의 분석이다.

▲ 풍정리에서 바라본 천제단.
풍정리 마을 앞 두루재산(문성산)에서 천제단이 발견되었다. 이곳은 풍정리와 봉선리의 경계가 되는 지점으로 한 때 예비군 훈련장이었으며 대보름 때에는 풍정리 사람들과 봉선리 사람들이 만나 불싸움을 하던 곳이었다고 풍정리 최규봉 마을이장이 말했다.

향토사학자 유승광 박사는 “봉선리 유적과 천제단에서 발굴된 유물에는 마구와 관련된 것이 일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풍정리 산성은 수군이 주둔하며 해안을 방어하던 곳으로 백제의 수도를 지키는 지키는 중요한 요충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 마을회관에서 만난 주민들. 아랫줄 왼쪽부터 구대야 최규용 최규봉 최철호씨. 위줄 왼쪽부터 백영기 강도순 강태순 최기섭씨
마을 회관에서 만난 주민들은 이러한 유물 발굴과 유적공원 조성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마을 주변에 대형 공장식 축사가 들어서는 것을 적극 반대하고 있다. 공기와 수질 오염으로 주민들 건강과 삶이 질이 떨어지고 더구나 천제단을 중심으로 관광지가 될 터인데 가축 분뇨 냄새를 피울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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