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장터]청구회 추억
[모시장터]청구회 추억
  • 김환영 칼럼위원
  • 승인 2016.02.01 14:06
  • 호수 79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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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먼 훗날 나는 서오릉으로 봄철의 외로운 산책을 하고 싶다. 맑은 진달래 한 송이 가슴에 붙이고 천천히 걸어오고 싶다.”

신영복 선생이 이른바 ‘통혁당 사건’으로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서 사형수로 복역할 때, 항소이유서를 쓰기 위해 빌려놓은 볼펜으로 차가운 마룻바닥에 엎드려 또박또박 써내려간 ‘청구회 추억’이란 글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청구회 추억’(42쪽~70쪽)은 지금은 절판된 ‘엽서’(너른마당,1993)라는 책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즈음 나는 경기도 원당에 살고 있었습니다. 작업실로 빌려 쓰던 마을회관에서 자전거를 타고 언덕 두어 개를 넘으면 서삼릉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또 얼마를 더 가면 서오릉으로 이어지는 한적한 길이 나옵니다. 나는 은사시나무들이 길 양편으로 줄을 선 서삼릉 들머리의 가파른 내리막을 좋아했고, 행인들이 적조한데다가 키 큰 버짐나무가 늘어서 있던 서오릉으로 이어지는 오래된 길이 좋았습니다. 그 길은 천천히 페달을 저어 자전거로 다니기에 맞춤한 길이었습니다.

‘청구회 추억’에는 1966년 진달래와 개나리가 한창이었을 4월의 비포장 서오릉길이 나옵니다. 나는 자전거를 몰아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봄나들이를 나온 여섯 명의 가난한 청구회 아이들을 만나는 장면에서 마치 어린 내가 맞닥뜨리고 있는 것처럼 가슴이 설레었고(실제로 그 아이들은 또래거나 몇 살 위였습니다), 헤어질 때 아이들이 한 아름 꺾어 선물한 진달래를 꼭 내가 받았던 것만 같았습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절박한 상황에서 쓴 그 글은, 그러나 선생의 처지를 상상할 수조차 없도록 자체로 향기롭고 완전했습니다. 어쩌면 그 글이 내게 이토록 생생하게 남아있는 까닭이,  글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잡힐 듯한 면면과 선생의 인품을 그대로 빼닮은 글의 내용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청구회 아이들과 나를 동등한 하나로 여긴 게 틀림없고, 그 ‘똑똑치 않은’ 입성의 아이들에게 더 없이 인격적이었던 청년 신영복을 통해 하나의 사표를 보았던 것이 분명했습니다.

몇 해 전 그 이야기가 ‘청구회 추억’이란 제목을 달고 단행본으로 묶여 나왔을 때, ‘청구회 추억’이란 글을 처음 만났던 때가 생각났습니다. 그 이야기를 가지고 아름다운 그림책 한 권 만들고 싶어 혼자 궁리하던 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청구회 추억’의 후기 “끝나지 않은 이야기, ‘청구회 추억’의 추억”에 밝혀놓은 선생의 글에 따르면, 자신이 아이들을 만나게 된 데에는 고등학교 때 미술교사였던 김영덕 선생의 화실에서 본 ‘전장의 아이들’의 기억이 밑바탕에 있었다고 술회하고 있습니다. 20년 20일이라는 시간을 복역하고 세상 밖으로 나온 선생은 김영덕 선생의 화실에 가서 다시 한 번 그 그림을 봅니다.

“나는 출소 후 선생님의 벽제 화실에서 다시 그 그림을 만났다. 오랜 세월의 격리 때문이었을까. 놀랍게도 서오릉 길에서 만난 어린이들이 바로 그 그림 속의 어린이들이란 것을 깨달았다. 진실의 해후 같은 감동이었다.”

김영덕 선생의 ‘전장의 아이들’그림이 청년 신영복의 뇌관을 쳤을 테지만, 시점으로 보면 그것은 뇌관이 몸체를 갖기 이전입니다. 시간이 흘러 대학 강사와 육사 교관이 된 뒤에야 오래 전의 기억을 현실 속에서 실현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전장의 아이들’을 그린 김영덕 선생은 서양화가로 많이 알려진 분입니다. 일반인들에게는 일간지와 어린이책 삽화로 기억되고는 합니다만, 일제 강점기와 해방기, 윤석중과 강소천 등 의 어린이책에 그림을 많이 그렸고 ‘관촌수필’의 소설가 이문구의 동시집 ‘개구쟁이 산복이’에 그림을 그린 이가 김영덕 선생입니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추억으로 이루어져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모든 추억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를 만나는 곳은 언제나 현재의 길목이기 때문이며, 과거의 현재에 대한 위력은 현재가 재구성하는 과거의 의미에 의하여 제한되기 때문이다.”

사형 언도를 받고 항소이유서를 쓰려던 자리에서 청구회 아이들을 새삼 떠올리게 된 배경이 무엇일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혈육을 제외하면 당신의 마지막 인연이었을지도 모르는 그 아이들이야말로 이 땅의 유일한 희망이라 여기셨던 건 아닐까, 곰곰이 내 자리를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지요.
더러워진 세상에 맑은 물줄기를 내고 이제 바다로 드신 신영복 선생님, 부디 영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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