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최종적이지도 불가역적이지도 않다
역사는 최종적이지도 불가역적이지도 않다
  • 양선숙 칼럼위원
  • 승인 2016.02.09 13:16
  • 호수 7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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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군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 출범에 부쳐

군산 동국사는 국내 현존하는 유일한 일본식 사찰이다. 그곳에는 일본 불교 최대 종파인 조동종이 한국 국민에게 보내는 참사문이 있다. 일본이 제국주의 화신으로 식민지 지배 야욕에 앞장설 때 종교가 포교의 명분으로 가담하거나 영합하여 아시아인의 인권을 침해한 것에 대한 참회와 사죄를 적은 비문이다.

또 하나 의미 있는 조형물이 있는데 참사문 앞에 설치된 높이 158센티미터의 청동재질의 평화의 소녀상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일흔 일곱 개의 타일로 대한해협을 상징하는 사각연못을 만들고 그 위로 일본 쪽을 바라보는 소녀상은 군산시민과 일부 일본인들이 기금 마련에 동참하여 만들어졌다.

추위가 주춤한 오후에 소녀를 만나러 동국사에 다녀왔다. 평일인데도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사찰만 둘러볼 뿐 마당 한 켠에 자리한 참사문이나 소녀상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 듯 했다. 소녀가 쓸쓸해 보이는 건 아직 녹지 않은 눈과 입춘이라고는 하지만 손끝이 시린 찬바람 때문만은 아니었다. 누군가 둘러준 빨간 목도리가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 평화의 소녀상은 2011년 11월 14일에 대한민국 주재 일본대사관 건너편에 세워졌다. 1992년부터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 위안부 피해자들이 모여 일본 정부의 사과와 진상 규명 및 법적인 배상,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항의집회를 이어왔다. 수요집회 천 번째를 맞이하여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위해 세워졌다.

지금은 전국 각지에 40여개의 일본군 위안부 기념물이 설치되었고, 일본, 미국, 캐나다 등지에 위안부 기림비를 설치하여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기억하며 위로하고 있다. 민간단체가 주축이 되어 24년간 이어온 항의집회로 인해 세계가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알게 되었고 미국, 네덜란드, 캐나다, 유럽회의, 유엔 인권이사회에서도 일본의 공식 사과와 책임을 촉구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피해자 할머니들만의 아픔이 아니다. 국익을 위해 당신들의 아픔쯤은 슬픈 과거로 묻어두라고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인권유린이고 민족의 아픔이다. 정부가 적극 나서서 민족의 자존심을 걸고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과와 법적인 배상을 받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광복 70주년의 해가 지기 나흘 전에 일본 정부와 인정할 수 없는 내용으로 일본군 위안부 협상을 타결해 버렸다. 위안부 피해자의 의견 수렴 없이, 일본의 진정한 사과 없이, 법적 배상금이 아닌 기금 10억 엔을 받는 조건의 협상안을 보며 정부의 외교정책에 실망을 금치 못한다. 기금 10억 엔보다 배상금 10원이 값지다는 것을 국민이 알고 있는데 정부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물리학에 임계량의 법칙이 있다. 임계량은 핵분열 물질이 연쇄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최소한 질량을 뜻하는데, 최소한의 질량이 되기 전에는 아무런 반응이 일어나지 않지만 일정한 임계량에 도달하면 핵분열 같은 커다란 연쇄반응이 일어난다.

공분한 국민들이 평화의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여러 모양으로 나섰다. 서천군에서도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공통과제로 인식하여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가 출범했다. 나비의 날갯짓이 바람을 일으키듯, 이곳저곳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민의 작은 날갯짓이 하나하나 모여 임계에 이르면 정부가 할 수 없었던 불가역적인 일도 처음 상태로 되돌릴 수 있게 되리라 믿는다.

역사는 계속 써내려가야 한다. 그래서 역사는 최종적이지 않다는 것을 국민들이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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