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업 잇고 싶어요”
“가업 잇고 싶어요”
  • 최현옥
  • 승인 2003.06.27 00:00
  • 호수 17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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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문화가 숨쉬는 방앗간 그곳엔 젊음의 패기가 넘실∼.
“탈 탈 탈 탈”
양철지붕아래 탁한 공기를 뿜어내는 어두운 방앗간. 곡식을 빻으며 힘차게 돌아가는 시끄러운 기계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쌀가마니를 나는 젊은 청년이 있다. 방앗간의 전형적인 옛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이곳은 빠르게 돌아가는 기계가 무색할 정도로 시간이 멈춰버린 듯 하다.
“농경사회의 공동체 문화가 그대로 숨쉬고 있는 방앗간의 명맥을 잇고 싶습니다”
방앗간을 나와 이마의 땀방울을 훔쳐내는 노정래(27·서면 신합리)씨. 그는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하며 살아간다. 인터넷의 ‘인’자도 모를 정도로 순박한 노씨는 친구들이 고향을 등지고 서울을 향할 때 고향에 대한 애착심 하나로 지역에 남았다.
노씨는 10여 년째 부모님을 도와 방앗간을 운영, 가업을 잇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쌀 개방과 한·칠레 무역협정 등은 장막으로 다가온다.
특히 정부가 벼 수확이후 벼를 건조시키는 데 필요한 농촌의 일손을 덜어준다는 차원에서 대형 건조보관시설과 최신의 도정기계를 갖춘 미곡종합처리장을 설치하고 일반 농가에서 가정용 정미기를 구매하면서 방앗간의 불황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그러나 과거 농경문화권에서 방아는 중요한 생활기구였고 역사가 숨쉬고 있는 방앗간에 희망을 불어넣겠다는 그의 의지는 누구도 꺽지 못한다.
노씨가 13살 되던 해 어머니 최문자씨는 방앗간을 인수했고 농사일을 돕던 그는 자연스럽게 일을 시작했다. 방앗간 일을 처음 시작하던 그 당시에는 농지정리가 돼지 않아 농로가 구불구불해 가을철 볏가마니를 나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떤 경우에는 기계가 논에 빠져 날을 세는 경우도 허다했다. 또 처음 기계작동 방법을 배울 때 모터를 고장내기도 했으며 지금은 없어졌지만 방아 기계의 벨트에 머리가 걸려 다칠 뻔했던 사례도 있었다.
“연중 쌀과 함께 씨름하며 쌀의 소중함을 더욱 느끼게 됐다”는 노씨는 군 제대 후부터 본격적으로 방아 일을 돕기 시작했는데 그가 일을 시작하며 방앗간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어린 시절부터 기계조립을 좋아했던 노씨는 장항공업고등학교 기계과에 지원, 그 당시 배운 기술을 이용해 방아 기계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갔고 작은 고장은 스스로 고친다.
또 쌀을 손쉽게 나를 수 있는 지게차 등 새로운 기기를 도입하고 창고를 짓는 등 규모를 늘리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에 판로를 열어 저공해로 재배한 벼를 즉석에서 정미해 소비자의 입맛에 맞도록 분도를 조절, 직거래하면서 서면 간척지 쌀을 외지에 알리고 있다.
부사방조제 간척지에서 생산되는 쌀은 외지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데 그는 미질이 좋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일에 대한 보람을 느낀다.
노씨는 “농가에서 소량의 도정주문이 있는 경우를 비롯해 외지에서 주문이 있을 경우 한꺼번에 도정하기 때문에 일의 양과 수입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주문이 조금씩 늘고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방앗간에서 일하며 시끄러운 소리마저 이제는 음악소리로 생각하게 됐다며 미소를 짓는 노씨는 “고령화 돼는 농촌에서 주민들을 도우며 지역 지킴이의 보증수표로 남고싶다”고 전한다.
아침 7시 손때 묻은 기계의 터빈을 돌리며 농촌의 미래를 밝히는 노씨는 농촌의 부흥을 일으키는 촉매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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