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 / ‘핸젤과 그레텔’의 아버지
■ 기고 / ‘핸젤과 그레텔’의 아버지
  • 문영(수필가)
  • 승인 2016.03.28 15:04
  • 호수 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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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헨젤과 그레텔’은 독일의 그림형제가 쓴 동화이고, 그 내용도 잘 알려져 있다. 
 숲 속에 나뭇꾼 내외와 아이들이 살고 있었는데, 오랜 가뭄으로 먹을 것을 구할 수 없게 되자 계모는 아이들을 숲 속에 버리자고 한다. 나무꾼은 그럴 수 없다고 반대하지만 아내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었고, 아이들이 돌아오자 다시 숲 속에 버리게 된다. 숲속을 헤매던 아이들은 마녀에게 잡히고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 기지를 발휘하여 마녀를 화덕 속에 밀어 넣고 보물을 찾아 집으로 돌아온다. 후회의 나날을 보내던 아버지는 돌아온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이다.

 새어머니가 자녀를 구박하거나 버리는 동화가 제법 많다. 백설 공주, 신데렐라가 그러하고 우리나라 구전 설화인 콩쥐 팥쥐와 장화홍련전이 그러하다. 동화에서는 착한 주인공을 더 돋보이게 하려고 악역을 맡은 계모를 더 악하게 묘사하였으리라. 그러나 요즈음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기사를 보면 동화 속의 계모보다 더 잔혹하게 아동을 학대하거나 살해한 사건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부모가 재혼하면 새엄마나, 새아빠가 생기게 마련이다. 새엄마나 새아빠가 모두 나쁜 것은 아니며, 어렵게 다시 이룬 가정에 대하여 편견을 심어주는 것은 좋지 않기 때문에 이런 동화를 아이들에게 읽히거나 들려줄 때는 적절한 지도를 필수로 한다. 그리고 요즈음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아동학대 및 살해사건 역시 계모, 계부에 의한 사건보다 친부모에 의한 사건이 더 많다고 하니 교육적인 우려도 맞다.

 뉴스 속의 아버지들을 비롯하여 헨젤의 아버지 그리고 백설공주와 신데렐라의 아버지, 또 콩쥐와 장화, 홍련의 아버지는 자기 자식이 학대받거나 버려지는 것을 왜 막지 못했을까? 아니 오히려 무관심하거나 동조했을까? 그리고 요즈음 방송에 나오는 사건에 연루된 부모들은 왜 그렇게 잔인한가?  

 참 살기 힘든 세상이다. 젊은이들은 직업을 구하는 일에서부터 절망하고 외로우며 방황하게 된다. 개성이 강한데 반하여 참을성이 부족하여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는 젊은이도 허다하다. 준비없이 부모가 된 젊은이들은 아이들을 어떻게 돌봐야할지 알지 못하며, 쉽게 헤어지고 쉽게 재혼하여 새 가정을 이루기도 한다. 예전의 가족제도에서는 철없는 부모 대신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실질적인 부모가 되어 아이들을 보살폈지만 요즈음은 아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줄 사람이 없는 가정이 적지 않다. 

 부모는 자식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바르게 성장하도록 도와야 할 의무를 가진 사람이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식은 마지막까지 꿈과 희망을 버릴 수 없는 이유이다. 우리의 부모들이 그렇게 살아왔고 부모의 희생으로 우리가 이만큼 살고 있다. 인류가 발달된 문명을 누리며 살고 있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일 것이다. 결혼하여 자녀를 두는 사람은 물론 재혼하여 새로 부모가 되는 사람들도 부모임에 틀림없다. 출산이나 재혼을 결정하기 전에 엄마, 아빠라는 말에는 무한한 의무가 주어진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이다. 그래도 세상은 아이들이 있어서 그나마 살만하고 꿈꿔볼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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