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장터] 옛이야기 ‘주먹이’의 몇 가지 모습
[모시장터] 옛이야기 ‘주먹이’의 몇 가지 모습
  • 김환영 칼럼위원
  • 승인 2016.04.04 17:02
  • 호수 8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요즘 옛이야기를 공부하러 다닌다. 동트기 전에 일어나 첫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 다시 경의선을 갈아탄다. 잠도 부족하고 먼 거리지만, 옛이야기 공부는 오랜 숙제였다. 덕분에 오랜만에 공부 재미에 푹 빠져 산다.

 입말로 전해 오는 한국 구전설화들을 집대성한 《한국구전설화》(임석재 엮음. 전12권)를 찾아보면 ‘주먹이’ 또는 ‘주머구’가 두 편 보인다. 한반도 전역에서 구전되는 게 아니니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렇긴 해도 주먹이는 아이들이 즐겨할 만한 모험담이고 주인공 캐릭터가 매력적이라 그림책으로도 많이 나와 있다.

 나는 이 이야기가 어떤 방식으로 전해지고 있는지 궁금해 근래에 다시 쓰여진 <주먹이>와 독일의 그림형제가 다시 쓴 <엄지 동자의 모험>을 비교해 보았다. 나란히 놓고 보니, 각각의 이야기가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쓰였는지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우선 원전인 <한국구전설화>에 나오는 주먹이를 짧게 인용해 본다.
 
넷날에 한 녕감 노친네레 살구 있드랬넌데 아들이 없세서 늘 부테님한테 아들 하나 낳게 해달라구 빌었다. 그랬더니 하루는 부테님이 집 뒤에 구덩이를 세 길 파문 원하는 것이 나온다구 했다. 집에 돌아와 구덩이를 팠더니 달갤만한 알이 하나 나왔다. 방에 개지구 와서 깨 보느꺼니 그 안에서 주먹만한 아레 하나 나왔다. 기뻐서 잘 키우는데 암만 키워두 크딜 않구 근냥 늘 고만했다. 그래서 이름을 주머구라 지었다. 하루는 아바지레 주머구를 주머니에 닣구 낙시질하레 갔다. 그리구 심심히문 주머니 안에 있넌 아하구 말을 하군 했다. 넢에서 낙시질하는 사람이 보군 아모 가이두 없넌데 말을 하구 있으느꺼니 데 사람 미첫능가 하구 이상히 생각했다. 주머구는 주머니 안에 있어 각갑하느꺼니 내놔 달라구 했다. 그래서 아바지는 주머구를 꺼내서 쓰구 있던 감투를 벗구 그 안에다 너어 두었다. 주머구는 강 속에서 노는 고기를 보구 자기두 물속에 들어가 놀구파서 물속으루 뛔들어갔다. 그랬더니 큰 고기가 이거 먹을 거다 하구 주머구를 통채루 집어삼겠다. 그 고기는 아바지 옆에 있는 사람에 낙시에 걸레서 잽헤웠넌데 고기 뱃속에서 사람에 말소리가 나느꺼니 이상히 생각하고 고기 배를 째봤다, 그러니까 주머구가 나와서 뛔서 멀리 가 삐렸다. 주머구는 여기더기 돌아다니다가 소가 풀 묻어먹넌 데꺼지 왔다. 풀섶 사이에 서서 소를 보구 있었드랬는데 고만 소가 풀을 뜯어먹넌데 풀에 휩쓸레서 소 뱃속으루 들어가게 됐다. 주머구에 집이서는 주머구가 돌이오딜 안아서 걱정이 돼서 일루루 델루루 찾아다녔는데두 없어서 집이 돌아와서 걱정하구 있었다, 그리구 저녁밥을 먹구 있는데 밖에서 아바지 아바지 하구 부르는 소리가 나서 방 문을 열구 내다보느꺼니 주머구가 소띠를 왼몸에 무테 개지구 와 있었다. 어드르캐서 소띠를 왼몸에 무테 개지구 있네 하느꺼니 소 꼴에 함게 휩쓸레서 소 뱃속에 들어갔다가 소가 띠를 누어서 밖에 나오게 돼서 돌아왔다구 말했다. (l934년 8월 평안북도 의주군 광성면 풍하동에서 장병환 구술)
 
대략 이러한 내용인데, 근래에 새로 쓰여진 주먹이는 달랐다. 주먹이는 존재감이 약해 목소리가 작고, 스스로 현실을 뚫고나갈 기지가 전무해 보인다. 무슨 일만 닥치면 번번이 아버지를 찾으며 그 가느다란 목소리로 “아버지, 아버지!”를 외칠 뿐이다. 또한 원전과 달리 무심하기 짝이 없는 아버지는, 그러나 마치 주먹이를 평생 무풍지대 속에서 살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능력자처럼 보인다. 하여 마지막 장면에서 아버지는 말한다. “주먹아, 이제 다시는 혼자서 멀리 가지 말아라.” 주먹이는 대답한다. “네, 아버지.” 이 덜 떨어진 변질된 주먹이는 비슷한 맥락으로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결국 우리 옛이야기 속의 주먹이는 본디 모습과 달리 매사 부모에게 의존하는 ‘주먹이 수난사’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나 독일의 그림형제 본 ‘엄지동자’는 크게 달랐다. 엄지동자는 모든 일을 자신의 힘으로 헤쳐 나간다. 장사꾼에게 팔려가서도 꾀를 내어 도망치고 도둑들에게는 기지를 발휘해 골탕을 먹인다. 소의 위 속에 들어갔다가 늑대에게 되먹혀도, 늑대를 꼬드겨 자기 집까지 이끈  다음에야 비로소 외친다. “아버지, 저 여기 있어요! 늑대의 뱃속에 있다고요!” 그렇게 며칠 만에 돌아온 엄지동자에게 아버지는 말한다. “아이고, 얘야, 대체 어딜 그렇게 돌아다녔니?” 엄지동자는 당당히 말한다. “쥐구멍이랑 달팽이 집 그리고 소와 늑대의 배 속이요. 하지만 이제 아버지 어머니 곁에 머물 거예요.”
 
옛이야기는 풍부한 해석의 여지를 품고 있어 시대와 상황마다 다르게 다가온다. 하지만 주먹이를 읽고 자란 아이들이 엄지동자를 읽고 자란 아이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 한국의 주먹이들은 스스로 판단해 저마다의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을까? 나는 생각해 본다. 다시 쓴 우리 옛이야기들이 혹여 우리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끔찍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를.
 
그래서 내게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옛이야기 그림책을 몇 권이라도 만들어 보고 싶은 것이다. 생명은 온데간데없이 이윤만이 중요한 이 나라에서, 아이들이 스스로를 지키는데 힘이 될 만한 그림책을 만들어 보고 싶은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