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재 매월헌
나의 서재 매월헌
  • 신웅순 칼럼위원
  • 승인 2016.04.18 16:56
  • 호수 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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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년이면 정년이다. 일선에서 물러나야할 나이가 되었다. 엊그제 같은데 무사히 여기까지 왔다. 세월은 이렇게 빠르다. 예까지 온 것만도 눈물겹다.

  매월헌은 나의 서재명이다. 제자의 어머니 2층 집을 빌렸다. 마당에는 고매화가 있다. 내가 이 집을 선택한 것도 바로 고매화 때문이다. 나는 대나무와 매화를 좋아한다. 대나무는 비어서 좋고 곧아서 좋다. 매화는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아 좋고 그 향기 천리를 가서 좋다. 내가 그러하지 못하니 대나무와 매화를 더욱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매화가 있으면 달이 뜬다. 매월에 집 헌자를 붙여 매월헌이라 명명했다. 매화가 있고 달이 머물다 가는 그런 집이다. 한국시조예술연구회, 한국한글서예술연구회 편액도 같이 걸었다.
  매월헌엔 방 2, 거실, 주방 등 4실이 있다. 거기에 각각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큰 방은 學而(학이), 거실은 書而(서이), 작은 방엔 茶而(다이)이다. 논어의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學而時習之, 不亦說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의 앞 두 글자를 땄다. 학이는 학문의 방이요 서이는 서예하는 방이요 다이는 차를 마시는 방이다.
  이렇게 해서 매월헌은 완성되었다. 오늘은 시계를 걸었다.
  김춘수의 시 꽃의 일부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그렇다. 지번만 있는 땅에 이름을 붙였다. 그랬더니 금새 땅은 피가 돌았다. 비로소 서재는 내게로 와 따뜻한 의미가 되었다.
  산천이 변한다 해도 산천을 노래한 시가 없다면, 그림과 음악이 없다면 그 곳은 영원한 의미와 아름다움을 가질 수 없다.
  내 서재는 내 학문과 창작의 산실이 될 것이다. 

  며칠을 공부했다. 아침에는 새소리가 비치고, 오후엔 햇살이 들어오고, 저녁엔 고요가 깃든다. 어느새 나는 무욕의 이들과 함께 친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추사의 ‘소창다명사아구좌 小窓多明使我久坐’라는 문구가 있다. 작은 창이 밝아 나를 오랫동안 머물게 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새소리와 고요도 덤으로 있으니 종일 머물러 책을 보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 한밤중 달이 들어와 훔쳐갈 수 있는 내게 그런 멋진 시구가 있다면 더욱 좋겠다.

  서재에는 텔레비젼도 없고 덮고 잘 이불도, 베고 잘 죽침도 없다. 사방 책뿐이다.
  내 눈은 몇 십년을 이 책들과 함께 벗을 할 수 있을까.
  어제는 아내와 함께 여기서 저녁을 지어 먹었다. 추사는 71살 때에 ‘대팽고회’라는 글귀를 남겼다.
 
      大烹豆腐瓜薑菜 高會夫妻兒女孫
 
      최고의 반찬은 두부·오이·생강(원서엔 가지)·나물이고,
      가장 좋은 모임은 부부와 아들딸·손자가 함께하는 것
 
  얼마 전 서재를 두 딸이 다녀갔다. 나는 ‘대팽고회’를 실천한 셈이 되었다. 산해진미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소박한 밥상이면 되고 부부, 아들 딸, 손자가 함께 하면 되는 것이다.
  매월헌은 나만의 서재가 아니다. 주말엔 예술가들과 함께 하는 서재이다. 만나면 차를 마시며 세상 돌아가는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오늘은 햇살이 유난히도 따사롭다. 엊그제 비가 오더니 이젠 봄도 진정세로 접어들었나 보다. 산벚꽃은 이 산 저 산에서 까치발을 딛고 세상 구경을 하고 있다. 연둣빛 잎새가 생기더니 여유도 생겼는가 보다. 복숭아꽃, 살구꽃 고향 친구들도 한복을 차려입고 신작로를 나섰다. 꼬까옷 진달래꽃도 뒤를 따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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