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넝쿨행복 만들어요”
“넝쿨행복 만들어요”
  • 최현옥
  • 승인 2003.07.04 00:00
  • 호수 1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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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벌 동쪽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 콩 익는 마을, 비인 남당리 사람들

 

시인 정지용이 읊었던 ‘향수’의 배경이 바로 이곳이 아닐까 싶은 비인면 남당리. 보령과 경계를 이루며 춘창대 나들목에서 불과 1km 떨어진 이곳은 마을 입구에서부터 모과나무가 반기며 오리 떼가 실개천에서 노니는 전형적인 농촌이다. 남쪽의 신선지라는 뜻을 가진 남당리는 계단식 논과 옹기종기 이마를 맞댄 70여채의 가옥이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이 콩으로 밥하면 얼마나 맛난지 몰라. 포골포골 한 것이 냉동실에 얼렸다 겨울에 떡 해서 이웃간에 나눠 먹으면 좋아”
시골의 넉넉한 인심이 묻어나는 주민 이선영(71)씨. 허리 굽은 그녀는 넝쿨 강낭콩 꼬투리를 보이며 자랑이 한창이다. 7월 남당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넝쿨 강낭콩으로 마을 곳곳에 나무를 타고 고깔모양으로 서있는 콩은 예술품 그 자체이다. 언제부터 심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마을이 노령화됨에 따라 재배·수확 방법이 간단한 것을 찾다보니 주민 대부분이 텃밭에 넝쿨 강낭콩을 자연스럽게 심게 됐다.
“전에는 이런 상자에 담는 게 다 뭐여. 그냥 푸대에다 담아놓으면 수집상이 들어와 사갔지. 요즘 명품화들 따지는데 이렇게 동네사람들이 합심혀서 만드는 거여. 콩도 이제 출세하는 거지 뭐”
콩을 담은 상자를 보이며 출하 준비를 하는 박영자(68)씨. 자신이 생산한 콩이 서천이라는 브랜드로 전국의 식탁을 누빌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지난 29일 그 동안 자식 키우듯 재배한 콩을 서울 가락동시장에 출하하기 위해 마을회관에 모인 주민들의 표정은 이처럼 다양하기만 하다.<사진 위>
남당리가 콩 공동생산·판매를 계획하게 된 것은 서천농업기술센터 특화작목담당 도용구씨의 권유에 의해서다. 남당리 콩은 토질의 영향을 받아 상품 질이 좋았지만 판로개척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지난달 14일 주민 50여가구는 ‘서천덩굴강낭콩’ 작목반을 구성해 자체 브랜드를 개발하는 등 고소득 작물로 주력하고 있다.
최근 남당리는 자식들 외지로 떠나보내고 노부부가 마을을 지키며 고요했던 형태를 벗고 또 다른 변화의 바람을 맞이하고 있다. 서천군 경제사회발전5개년 계획에 의하면 자연형태가 잘 보존된 마을 여건을 활용해 계절별로 농촌을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든다는 것.
“가장 큰 변화는 주민들이 마을 발전을 위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지. 토론문화도 아직 어색하지만 잘 정착해 가는 것 같어”
작목반 회장 추동선(64)씨는 콩 공동출하는 시작에 불과하다며 앞으로 마을 발전 비전을 제시한다.
지난 3월 ‘넝쿨행복 남당마을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마을 주민들은 자체 추진위원회를 구성,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매월 1회 이상 토론과 아이디어 창출을 해내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체험마을을 조성하고 있는 강원도 화천으로 견학을 다녀왔다.
남당리는 앞으로 4∼5월에는 취나물·두릅의 산나물 채취, 6∼8월은 넝쿨 강낭콩·옥수수, 11월 감·밤 등 계절별로 생산되는 농산물을 체험으로 할 수 있도록 하며 손두부·남당소류지 낚시·짚공예 등 먹거리와 볼거리, 만들거리가 풍부한 마을로 탈바꿈 될 계획이다.
또 7월에는 넝쿨 강낭콩 체험시범 행사를 개최해 도시 가족단위 여행객들이 남당리에 방문, 민박하며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등 이외에 여러 가지 투자가 이뤄질 방침이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는 주민들이 서로의 가정에 숟가락이 몇개있는지 알 정도로 한 가족처럼 지내는 것 때문인 것 같다”는 유재무(63)씨는 남당리에서 태어나 평생 이곳을 지키며 살아온 것이 자랑스럽다.
“그가 이장을 하면서 마을에는 변화가 많이 생겼지요. 그처럼 헌신적인 사람도 없을 거예요”
추병길(68)씨는 마을의 발전 뒤에는 묵묵히 일하며 주민화합을 도모, 의식개혁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이장 추화엽(57·사진 좌)씨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헌신은 곳곳에서 나타나는데 영농 관련 교육을 받는 곳이면 남당리 주민 참여도가 가장 높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며 병원을 찾는 노인이나 장이 서는 날 주민들을 차로 수송하고 있다. 또 매달 10일 노인들과 모여 식사를 나누고 가끔 노인회관에 간식거리를 제공하는 등 일명 ‘효자이장’으로 통하고 있다.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해주고 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추이장은 오히려 주민들에게 도움을 받고 있다며 겸허한 자세를 보인다.
“7년동안 이장을 맡아오며 잘한 것보다 못한 것이 더 많아 어르신들에게 죄송할 따름이며 앞으로 지역에 발전에 기여하고 스스로 발전하는 남당리를 만들고 싶다”는 그는 점점 쇠약해지는 농촌에 횃불을 밝히고 싶다.
새로 개척하러 들어와 스스로 이룩하는 새로운 명소를 만든다는 뜻의 남당리. 넝쿨 행복을 만들어 가는 남당리 사람들은 논개의 일편단심처럼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금강의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지역사랑을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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