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장터/중년의 사춘기, 갱년기
■모시장터/중년의 사춘기, 갱년기
  • 양선숙 칼럼위원
  • 승인 2016.06.22 18:06
  • 호수 8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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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미씨는 올해 쉰 한 살이다. 활발하고 당찬 그녀가 작년부터 아프다. 골반염을 시작으로 일 년이 지난 지금은 위염, 불면증까지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서 친정집에서 노부모님과 생활하고 있다. 그녀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더 이상 좋아지지 않을 것만 같아 점점 자신이 없어지는 위축된 자아다. 경미씨는 갱년기이다.

명희씨는 쉰 세 살까지 마트에서 열심히 일했다. 무릎 연골이 약해서 지난 해 겨울 직장을 그만두고 무릎 수술을 했다. 그 때 쯤부터 가슴이 뛰고 속에서 열이 나는데 몸은 오한이 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며칠이고 깊은 잠을 잘 수 없어 정신은 몽롱하고 가족들에게 짐이 된 자신이 싫어 죽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녀도 갱년기다.

열심히 살았던 그녀들이 폐경으로 인한 신체의 변화에 마음과 정신까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것을 보며 무서운 생각이 든다. 누구 말대로 우울증은 할 일 없고 속 편한 사람들이 겪는 사치스러움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엔 우리 삶 주변에 가까이에 있다.

갱년기는 인체가 성숙기에서 노년기로 접어드는 시기이다. 대개 마흔 중반에서 쉰 중반 사이에 신체 기능이 저하되는데, 여성의 경우 생식 기능이 없어지고 월경이 정지되며, 남성의 경우 성기능이 감퇴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남성도 갱년기를 겪지만 여성은 호르몬의 급격한 감소로 인해 우울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는 갱년기 우울증의 원인을 상실감 등의 심리적 원인으로 보았지만, 최근에는 폐경을 전후로 급격하게 하락한 여성의 호르몬이 대뇌의 전두엽과 기저핵에 산재된 신경세포군을 손상시킨다는 신경생물학적 원인으로 보고 있다.

인생 주기의 기로에 놓인 나의 어머니와 아내를 주의 깊게 살펴보자. 갱년기 우울증은 내 마음 하나 추스르면 되는 심리적인 것이 아니라, 신경이 손상되어 생물학적으로 오는 증상인 것이다. 유난을 떤다며 핀잔하지 말고, 무관심 속에 마음의 병이 깊어지도록 방치하지 않기를 부탁한다. 값진 인생 사느라 애썼다고,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라고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려 주면 좋겠다. 그녀도 어쩔 수 없는 변덕스런 감정변화 까지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주면 좋겠다. 중년의 사춘기인 갱년기가 길면 얼마나 길겠는가!

나도 어느 덧 이르지 않을 것 같았던 사십 중반이 되었다. 이루고픈 꿈과 청년의 열정이 가슴에 고스란히 있고 이제야 미숙함을 벗고 인생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는데 인생 중년이라고 한다. 아니, 누군가 “넌 중년이야” 라고 말하지 않아도 몸이 나에게 그렇게 이야기한다. 열일곱 살 쯤 격하게 앓던 사춘기와 서른을 앞두고 서러웠던 시간도 모두 힘든 시간이었지만 장년기를 벗어나 노년기에 접어듦을 알리는 갱년기의 문턱은 한없이 높아만 보인다.

'갱년기(更年期)'의 '更'은 '바뀌다, 새로워지다, 고치다'의 뜻을 지닌다. 중년을 사는 우리들, 인생의 허무를 느끼는 시간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을 향한 준비의 시기로 지혜롭게 잘 이겨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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