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취재/위기의 학교교육 대안을 찾아서(5)
■ 기획취재/위기의 학교교육 대안을 찾아서(5)
  • 허정균 기자
  • 승인 2016.06.29 16:17
  • 호수 8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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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고등학교 사례(최종회)

초기 설립자 교육이념, 전통으로 이어져
“교육은 교실에서…” 교사들 열정·자발성 끌어내
교사 선발·학교 운영에 투명성 보장 장치

경남 거창군은 인구 수 6만 3000으로 군 단위로서는 제법 크다. 지리산과 덕유산을 옆에 끼고 있지만 넓은 분지로 된 지형이며,  덕유산에서 발원하는 하천들이 계곡을 빠져나와 들을 적시고 흘러간다. 1961년에 설립된 거창고등학교는 대안학교와 인성교육의 전형으로 전국에서 이 학교를 견학하기 위해 찾아온다. 뉴스서천이 지난 24일 거창고등학교를 방문하여 유상철 교감을 만나 거창고등학교의 역사와 현재 학교 현황에 대해 알아보았다.

▲ 경남 거창고등학교 전경
◇원경선 이사장과 전영창 교장

2013년 1월 풀무원농장의 원경선 원장이 100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고 원 원장은 평안남도 중화군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한국전쟁을 겪고 난 마흔의 나이에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1955년 경기도 부천에서 땅 1만여평을 개간하여 ‘풀무원 농장’을 마련하고 공동체를 설립 운영했다.

1976년 양주로 농장을 옮긴 후 국내 최초로 화학비료와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을 시작하면서 유기농민단체인 ‘정농회’를 설립했다.
공동체 운동으로 시작된 그의 삶은 공해로부터 사람들을 건지려는 환경운동과 생명보호운동, 평화운동으로 나아갔으며 국제 기아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활동했다.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유엔 세계환경회의에 한국을 대표해 참석, 유기농 실천운동에 대한 강연을 했으며 이후 경제정의실천연합 산하기구로 시작한 환경개발센터(현 환경정의 전신)의 초대 이사장직을 맡아 환경과 생명을 존중하는 삶을 실행하며 이를 가르치는 데 힘을 쏟았다.

그런 그가 거창고등학교와 인연을 맺고 1961년 초대 이사장이 된 것은 전영창 교장과의 만남 때문이었다. 전영창 교장은 해방 후 국내 최초 미국 유학생이었다. 외국인 선교사들의 덕이었다. 그는 광복 이후 독학으로 이룬 영어 실력으로 미군 소령과 인연을 맺게 되고, 대한민국 정부수립 전인 1947년, 미군정에서 발급한 여권을 가지고 미국으로 건너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졸업 직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했다. 전쟁이 끝난 후 대전신학대 부학장직을 마다하고 ‘벽지 교육’의 뜻을 세워 1956년 폐교 직전의 거창고를 빚을 얻어 인수하며 3대 교장에 취임, 이 학교의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전인교육의 기틀은 이 때부터 시작됐다.

재정난에 어려움을 겪던 전 교장은 미국 교단에 선교 자금을 지원해줄 것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를 읽은 미국의 목사는 문득 자신이 한국에 있을 때 목숨을 구해준 하우스보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생명의 은인 이름을 그는 결코 잊지 않고 있었다. 원경선이 미군부대 하우스보이로 일할 때 그는 사진을 찍다가 벼랑 아래 물 속에 빠진 미군 장교를 구해준 일이 있었다.

‘원경선’이란 사람을 찾아주면 선교 자금을 기꺼이 대주겠다고 거창고등학교로 답장을 보냈다. 거창고등학교에서는 ‘미군 하우스보이 출신의 원경선’을 찾아 나섰다. 백방으로 수소문한 결과 그 주인공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미국 목사에게 ‘원경선을 찾았다’는 편지를 보냈다. 그러자 그 목사는 다시 ‘원경선에게 거창고등학교 이사장을 시켜주면 선교 자금을 지원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원경선은 “바다에 빠진 그 미군 장교를 살려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능력에 미치지 못하는 학교재단 이사장직을 맡을 수는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기도 하다.”며 이사장직을 완강하게 거절했으나 거창고등학교의 운명이 걸린 일이라며 설득에 나서자 “학교 운영에는 참여하지 않고 이름만 이사장직에 올려놓겠다.”하며 이사장직을 수락했다.

◇군사정권에 맞선 교장

▲ 거창고등학교 교정에 있는 전영창 교장 상
거창고등학교는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정권에 맞선 것으로 유명하다. 교육당국과 마찰을 빚으며 세 번이나 폐교 위기에 몰렸다.
1969년 3선개헌 파동 때 반대데모 행렬에 참여한 거창고 학생 주모자를 처벌하라는 압력도 견뎌냈다. “학생들이 틀린 주장을 한 게 아니라 그렇게 하라 가르쳤다”며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전영창 교장은 ‘교장실에 박정희 대통령 사진을 걸라’는 유신독재정권의 지시를 거부하기도 했다.

1976년 전 교장이 작고한 후 전성은 교장 시절에도 당국의 탄압은 계속됐다. 학교재단 원경선 이사장은 1980년 광주항쟁의 참상 학생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결정했다.  “학교가 살자고 교육을 죽이면 안 된다. 학교가 죽더라도 교육을 살려야 한다”면서 광주 시민들의 행동을 알렸다.

이에 학교 폐쇄조치가 내려졌다. 교장과 교사들은 자신들의 집으로 학생들을 불러들여 수업을 계속 했다. 군사정권은 ‘사회정화’를 명분으로 삼청교육대를 만들어 인권 유린 사태를 빚었는데 재교육시킬 문제 학생들의 명단을 작성해 군당국에 넘기라는 지시가 각 학교에 내려왔다. 학교에서 이를 보고하면 쥐도새도 모르게 끌려가 초주검이 돼 나오는 비교육적인 사태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거창고등학교에서는 군 당국의 지시를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당시 도재원 교감은 군 당국을 찾아가 따졌다. “학생을 교육시키지 못하는 학교라면 교사들이 학교를 그만 두든가 학교문을 닫아야지 군대로 학생들을 보내 재교육을 시킬 수는 없지 않습니까?”

◇거창고등학교의 전인교육

거창고등학교는 겨울에 눈 내리면 수업하다 말고 뒷산으로 몰려나가 토끼몰이에 열중하고, 학교 한 켠에 마련된 텃밭에서 농사짓는 법을 배울 만큼 입시와는 동떨어진 인성교육에 익숙하다. 입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도 괄목할 성과를 낸 덕이 클 것이다. 거창고등학교에서는 매년 30여 명이 이른바 ‘스카이(SKY)대학교’에 진학하고 있다.

▲ 거창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만드는 학교신문이 있다. 1년에 3회 발행한다.
거창고등학교의 대명사처럼 돼버린 전인교육은 전영창 전 교장의 ‘거창고등학교 직업 선택 10계명’에 잘 나타나 있다. 이는 다음과 같다.

1.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2.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3.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4.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5.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을 절대가지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을 가라.
6. 장래성이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7. 사회적 존경을 바랄 수 없는 곳으로 가라
8. 한가운데가 아닌 가장자리로 가라
9. 부모나 아내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하지말고 가라
10.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하나같이 이타주의를 역설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 이념에 학생들은 2003년 졸업식 졸업생 답사에서 이렇게 화답했다.

“우리의 소망이 담긴 글 하나를 읽으며 답사를 정리하려 합니다. 거고인 건축가가 세운 다리는 무너지지 않고, 거고인 농부가 키운 작물은 안심하고 먹을 수 있으며, 거고인 의사는 삶의 목숨을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긴다. 거고인 판사가 내린 판결은 믿을 수 있고, 거고인 직공이 만든 옷은 단추가 잘 떨어지지 않으며, 거고인 선생님에게는 안심하고 자녀를 맡길 수 있다. 거고인 관리는 뇌물을 받지 않고, 거고인 기자는 거짓을 전하지 않으며, 거고인 역사가는 그 무엇보다 진실을 목말라 한다. 그래서 세상은 거고를 빛이요 소금이라고 한다.”

후임인 전상은 교장은 “학교교육은 아이들의 다양한 재능, 소질, 관심에 따른 다양한 교육을 해야 한다. 국가는 그렇게 해야 할 책무가 있다. 그것이 국가의 도리이다. 그러자고 국가가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입시 준비와 인성교육 병행

거창고등학교는 한 학년에 4개 학급씩 있고 한 학급의 정원은 28명이다. 그러나 전학을 오는 경우도 있어 이보다 약간 많다고 한다.
2004년 농어촌자율학교로 지정돼 전국에서 학생들을 모집하며 정원의 20%는 거창군에 할당한다. 학생들은 서울, 부산 등 대도시는 물론 제주도에서 전국에서 몰려든다. 2016학년도에는 5대 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 유상철 교감
이 학교 유상철 교감은 “입시 준비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전인교육을 병행한다”고 말했다.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신입생 선발 전형은 비평준화지역으로 학교장 전형으로 하는데 중학교 내신 성적이 우선이라고 했다.
사립학교로서 교장 선출과 교사 선발은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보았다.“교장은 재단 이사회에서 선출합니다. 교감은 교사들이 추천한 사람을 재단에서 승인하는 형식입니다.”교사 선발은 다른 학교와는 달랐다. 재단측이나 교장의 관여가 일체 없으며 교감이 위원장이 되고 교사들이 위원이 되는 인사위원회를 구성하여 필기와 수업 실기 등을 거쳐 인사위원회에서 최종 결정한다는 것이다.

2005년 최종 개종된 현행 사립학교법은 “각급 학교장과 교원은 해당 학교를 설치·경영하는 학교법인 또는 사립학교 경영자가 임면한다.”고 되어 있다. 이러한 조항 때문에 학교 법인이 인사를 통해 학교 운영에 간섭함으로써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요즘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강원도 원주의 상지대학교가 그런 경우이다.

교육은 주로 교실에서 이루어진다. 한 교실을 책임맡은 교사의 열정과 자발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교육 목표 달성하기 위해 우수한 교사들 선발이나 학교운영의 투명성을 보장하는 장치가 필수임을 거창고등학교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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