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장터/그 많던 병어는 다 어디로 갔나-박병상 칼럼위원
■모시장터/그 많던 병어는 다 어디로 갔나-박병상 칼럼위원
  • 박병상 칼럼위원
  • 승인 2016.06.29 16:38
  • 호수 8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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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상 칼럼위원
육지의 화려한 꽃들이 6월 햇살에 화답하며 자태를 뽐내는 계절, 바다의 생명들도 풍요로움을 만끽한다. 식물성플랑크톤이 번성하길 기다리던 동물성플랑크톤이 덩달아 늘어나면 5젖 6젖에 들어갈 젖새우들이 풍부해질 터. 때를 기다리던 병어도 살이 통통하게 오른다. 때마침 양식장 주변에서 플랑크톤을 쫒던 해파리들도 미각을 자극할 테니, 바닷물이 최대로 따뜻해지기 직전, 한껏 통통한 병어는 하얀 살이 더욱 연하고 기름기가 충만해진다.

갯벌이 넓은 해역에 많은 젖새우와 갯지렁이를 비롯해 동물성 플랑크톤까지 작은 입으로 즐겨먹는 병어는 수심 10에서 20미터인 암초 사이의 모래바닥에 알을 낳으니 인천에서 조금 떨어진 바다에서 적지 않게 잡았고 서해안의 포구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지만, 옛이야기가 되었다. 한강에서 쓸려온 모래와 갯벌이 곱게 내려앉은 인천 앞바다는 조수간만의 차가 10미터 이상 크다. 바닷물이 혼탁해도 깨끗할 뿐 아니라 영양분이 풍부하니 병어가 토실토실했지만 그 명예를 신안 앞바다에 넘길 수밖에 없다.

오륙월 사리 때 신안군 해역은 병어잡이 어선으로 가득한데, 왜 병어(兵魚)일까? 입 작은 생선, 병사들처럼 떼로 움직여서? 하긴 사람처럼 허우대에 비해 입이 작은 동물도 없다. 하지만 떼로 움직이는 생선은 많은데? 나당연합군으로 참여한 중국 병사에게 잔뜩 올라온 병어를 실컷 먹여 그렇다나 뭐라나. 뭐 그런 설화도 있나본데, 서해안의 갯벌이 대부분 온전하던 시절 흔전만전하던 병어는 이제 고급생선이 되었다. 이맘때 신안 해역으로 모이는 어선은 값나가는 생선, 병어에 목을 맨다.

백 미터가 넘는 안강망은 물살이 거센 사리 때 커다란 입을 바다 중간 깊이에 펴고 크고 작은 병어를 즐겨 맞는데 넓은 그물을 바닥에 내려놓고 양쪽에서 훑어내는 쌍끌이는 병어는 물론 바닥에 사는 아귀와 크고 작은 어패류까지 일망타진한다. 그물을 다시 내려도 한동안 소용없을 정도로. 그때 커다란 병어가 잘 든다. 흔히 ‘덕자’라 말하는 ‘대병어’다. 한 자, 다시 말해 30센티미터가 넘으니 德을 쌓은 병어가 아닐 수 없다. 작은 내장을 빼내고 가지런한 뼈를 고르면 풍성한 하얀색 고기를 접시로 하나 구할 수 있지 않은가.

자, 여기 토실토실하고 동글 넓적한 병어 한 마리가 있다고 하자. 어떻게 요리해 먹어야 이맘때 병어의 위상을 살리는 걸까? 일단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비늘들을 털어내고 위아래 지느러미와 꼬리를 잘라낸 뒤 아가미 앞의 머리와 내장을 깨끗하게 제거해야겠지. 그러면 몸이 조금 줄어들지만 살은 여전히 묵직하다. 광어와 달리 병어회는 껍질 채 썬다. 칼을 기울여 어슷하게 자르면 흰색에 가까운 연분홍의 살점이 신선함을 과시하는데, 식성마다 다르겠지만, 6월의 쫀득한 병어회를 초고추장에 찍어먹는 건 아무래도 무성의하다.

듬직한 병어까지 회로 먹자니 아깝다면? 역시 6월 병어는 조림이 제격이다. 조림에 들어가자면 내장과 지느러미만 제거하면 된다. 멸치로 우려낸 육수를 집에서 가장 큰 냄비에 부은 뒤, 통으로 썬 여름 감자와 무를 침대처럼 깔아놓았다면 주인공인 병어가 등장할 차례다. 육수에 자박하게 잠길 정도로 얌전하게 올려놓은 병어 위에 간장에 고추장과 다진 마늘과 갖은 양념으로 걸쭉하게 버무린 양념장을 얹고 처음에 팔팔, 나중에 보글보글 끓여내면 고종과 순종이 좋아했다는 병어조림이 완성된다. 접시에 옮겨 담기 전에 숭숭 썬 대파와 실고추를 흩뿌리면 금상첨화겠지.

단백질과 불포화지방산이 많은 병어는 DHA, EPA와 타우린이 풍부해 동맥경화나 뇌졸중과 같은 순환기 질환을 억제하고 치매와 당뇨병은 물론 암까지 예방하는 것으로 홍보되고 있다. 물론 이맘때 지방질이 풍부해 별미 중의 별미인 병어가 치료제일 리 없다. 손쉽게 무침이나 구이, 매운탕이나 지리로 끓여도 맛을 끝내주는 병어는 입맛이 떨어지는 여름철의 밥도둑인데, 어라! 머지않아 고급 생선으로 등극하려는가? 해마다 작황이 줄어드는 만큼 가격이 높아지는 병어는 큰맘 먹어야 알현할 수 있는 생선이 되었다.

참조기가 서해안을 다가오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남획임에 틀림없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갯벌이 사라진다는 데 있다. 생선도 모천을 찾는다. 자신이 태어난 갯벌, 알 낳을 곳이 사라졌는데 어찌 다가올 수 있다는 겐가.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사라진 갯벌이 무려 1억 3천만 평이고, 인천공항으로 1400만 평의 갯벌이 자취를 감췄다. 인천의 송도신도시와 청라도 매립으로 사라진 갯벌이 1000만 평이 훨씬 넘지만 규모를 키우는 갯벌 매립은 도처에서 멈추지 않는다.

갯벌을 매립하려면 최대로 밀려든 해수면보다 높게 무언가 조간대 위에 쌓아야 하는데, 육지의 흙은 아니다.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들어가지만 민원을 감당할 수 없다. 갯벌 위에 쌓는 물질은 바로 병어가 산란하는 바다의 모래다.

우리 서남해안을 비롯해 인도양에서 남지나와 동중국해에 두루 분포하지만 우리 해역에서 점차 드물어지는 병어는 모두 3종이다. 맛과 생김새가 하도 비슷해 전문가가 아니면 구별이 불가능한 병어와 덕대, 그리고 중국병어가 그것인데 해양수산부는 올 초 병어를 되살리겠다고 선언했다. 치어를 양산해 서식하는 바다에 풀겠다는 계획이다. 한데 갯벌 매립이 중단하지 않고 치어를 방생한다고 병어가 예전처럼 회복될까? 신재생에너지로 위장한 조력발전 계획은 어찌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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