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장터/어른이 없다
■모시장터/어른이 없다
  • 권기복 칼럼위원
  • 승인 2016.07.07 09:53
  • 호수 8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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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없다

“너는 어떻게 카톡 할 줄도 모르니?”
“어! 이제 배웠어. 문자는 보낼 수 있어.”
“그래! 그럼 앞으로 자주 연락하자.”
“응. 노력할게.”

석달 정도 전에 고향 친구와 나눈 대화였다. 친구의 카톡 방에 초대했는데, 감감무소식이다 보니 전화를 했었다. 필자는 우여곡절 끝에 그 친구의 카톡 방에 초대되었고, 옛 죽마고우들의 소식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친구는 40년이 훌쩍 넘어서야 서로 소식을 나누게 된 경우도 간혹 있었다. 지금의 내 모습이 궁금하다면서 사진이라도 띄우라는데, 나는 아직 글 쓰는 것밖에 다른 것은 할 줄 모른다.

친구의 카톡 방은 여러 친구들이 올린 각종의 사진 자료와 동영상 자료 등으로 화려했다. 초등 및 중등 동창 밴드에도 들어오라고 해서 가까스로 들어갔는데, 화려한 자료들과 유려한 글들로 넘쳐났다. 그동안 시와 여러 장르의 글을 쓴다고 깝죽거린 필자의 글이 제일 형편없어 보였다. 그럴 때마다 나도 모바일의 각종 기능을 익혀야지 하면서도 금방 약간의 거부감과 함께 귀찮게 여겨져서 다음으로 미루곤 했었다.

필자의 친구들 간에 주고받는 카톡이나 밴드는 나이 대를 내려갈수록 비교가 안 된다. 이삼십 대에 비하면 걸음마 단계에나 속하는 애송이에 불과할 뿐이다. 틈만 나면 모바일 자판을 두들겨대는 세대들. 그들의 모습은 언제든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신풍경이 된지 오래다. 아직 컴퓨터 자판을 독수리 타법으로 두들기는 필자의 눈에 비친 젊은이들은 입신의 경지에 오른 초고수로 보였다.

요즘은 나이 먹었다고, 세상살이에 경륜이 있다고 하여 후배들에게 지도해줄 일이 없다. 직장 업무도 주로 컴퓨터 앞에서 처리하다보니, 가르쳐주거나 안내할 일이 없다. 오히려 후배들에게 어떻게 컴퓨터 업무처리를 해야 하는 지 배워야 한다. 필자와 같은 컴맹은 특히 심한 편이다. 스스로 하다보면, 이리 막히고 저리 막힌다. 후배 직원에게 도움 요청을 하면, 대부분 클릭 한 번에 해결되곤 했다.

가정에서도 매한가지이다. 자식들에게 부모로서 지도할만한 것이 별로 없다. 예전에는 아버지의 일을 그 아들이 제때에 배우지 못하면 생존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아버지의 말은 절대적이었다. 아버지의 가르침 하나하나가 그 아들로서는 이 세상을 잘 살아가는 비결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에게 아버지는 그 누구보다 큰 어른이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일을 배우는 것이 그랬고, 딸은 부엌에서 어머니로부터 각종 요리하는 법을 배워야 시집도 가고 어른이 될 수 있었다. 흔히 ‘신부수업’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 의례적인 절차였었다. 그러므로 딸에게 가장 큰 어른은 어머니일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은 어떠한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니면 대학생인 딸에게 신부수업을 권유하면 뭐라고 할까!
“미쳤어! 지금 내가 요리 어쩌고 할 때야? 그런 건 나중에 인터넷 들어가서   레시피 보고 다 할 수 있어요. 난 지금 그런 거 신경 쓸 때가 아니잖아    요. 엄마한테 배우지 않아도 나중에 다 할 수 있다구요.”
그렇다. 이제 우리 사회가 격변하다 보니, 옛 것을 가르칠 것이 없다. 어쩌다가 예전에는 이랬는데 했다가는 고루한 기성세대로서 몰매감으로 딱 알맞다. 빨리빨리 변하는 세태에 발 맞춰 옛것은 떨쳐버리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데 게으름이 없어야 한다. 나이와 연륜 등을 불문하고, 새로운 변화에 얼마나 빨리 적응해 내느냐 하는 것이 모범적인 현대인의 척도가 되었다.

“여보! 이거 인터넷 레시피 보고 만든 거야. 어때, 맛있지?”
“으응!”
비록 비슷하게 흉내 낸 음식에 불과하지만, 응답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어먹을 수 없기에 건성으로라도 대꾸를 해야 한다. 우리 식구들에게 맞는 입맛을 위한 정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잔소리를 조미료로 얹어줄 어른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어른은 없다. 다만, 세태에 잘 적응하는 현명한 늙은이와 그렇지 못한 늙은이만 존재할 뿐이다. 한국의 산업사회를 주도해 온 수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 속에서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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