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천의 마을 이야기/(12)마산면 지산리
■ 서천의 마을 이야기/(12)마산면 지산리
  • 허정균 기자
  • 승인 2016.07.14 12:57
  • 호수 8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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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성으로 들어가는 길목이자 군사적 요충지
폐허에 묻힌 학교…아이들 소리 귀에 ‘쟁쟁’ 들리는 듯

▲ 지산리 위성사진
마산면 지산리는 백제시대에는 마산현, 신라시대에는 가림군의 마산현에 속했다. 고려 때는 임천의 한산현 소속이었다. 조선 태종 13년에는 한산군에 속했으며, 조선 말 한산군 상북면 지역으로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팔지리, 갈물리, 음산리, 모각리, 대포리 각 일부를 합쳐 팔지(八芝)와 음산(陰山)의 이름을 따서 지산리라 했으며 마산면에 편입되었다.

지산리는 부여 홍산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다. 부근의 지형을 살펴보면 문산면 지원리 뒷산인 태봉산에서 내려온 산줄기가 길산천 본류와 지류인 라궁천의 수계를 가르며 끊길듯 말듯 뻗어내려오다 봉선지에서 멈춘다. 이 산 줄기 마루금이 마산면과 문산면의 경계이다.

지산리 남쪽 부분에 있는 마을을 갈물, 갈무리, 갈물리라고 하는데, 마을에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시고 있는 형국인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의 혈처가 있어 생긴 이름이라 한다. 라궁천을 이곳 사람들은 예로부터 ‘대천(大川)’이라 불렀다. 갈증을 느끼는 말이 대천(大川)의 물을 먹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갈물 남쪽에 있는 넓은 들판을 대천뜰이라 부른다.

대천뜰 위, 갈물 들어가는 입구에 장승이 서있어 장승백이라 불렀다. 그 아래에 마을이 있었는데 이곳을 ‘낡은터’라 불렀다. 낡은터와 반대 개념인 새로 생긴 마을이 ‘새터’이다. 갈물입구에서 라궁천을 건너 동쪽 산기슭에 ‘윗새터’와 아아랫새터가 있다. 갈물과 새터 마을에 각각 10여호가 살고 있다.

▲ 팔지마을 전경
팔지마을은 지금도 30여호가 사는 지산리의 중심 마을이다. 말구렁이, 오약골, 중뜸, 골뜸, 건너뜸 등의 고유 지명이 살아있다. 골뜸에서 문산면 지원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초고개라 한다. 

613번 도로가 마을 옆으로 지나지만 소쿠리 속처럼 산으로 에워싸여 있어 보이지 않는다. 예로부터 피난처로 좋으며 선비들의 낙향지로 으뜸인 곳이었다 한다. 바깥 세계와의 인연이 넘치지 않고 세상사에 태평한 곳이라 하여 ‘팔지’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2003년 마을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공주-서천 고속도로 공사 중에 유적이 백제, 고려, 조선시대에 이르는 주거지, 토광묘, 소성유구 등 총 104기의 유구가 발굴 조사됐다.

공주대학교 지질학과, 문화재보존학과, 사학과 등에서 공동으로 작성한 보고서에는 “지산리 유적지는 부여군의 남부와 서천군의 동북부가 접하는 지역으로 북으로는 선사시대 취락지가 분포하며, 주변으로는 삼국시대 이후의 사적지가 분포하며, 남으로는 백제시대 초기의 유구가 위치하며 동서로 백제시대의 사적지가 있는 등 사료적인 중요도가 매우 높은 지역이다.”고 기록하고 있다.

향토사학지 유승광 박사는 서천에서 홍산 방면으로 진출하는 루트는 판교면 복대리와 문산면 은곡리, 마산면 군간리 방면 등 3개였으며 지산리 뒷산은 군간리와 은곡리 방면의 두 길목을 감시할 수 있는,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거점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문산면 지원리 뒷산 태봉산에서 북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부근에서 가장 높은 산줄기이다. 팔지마을에서 이 능선의 안부를 넘어가는 고갯길은 은곡리 큰육골로 연결된다. 지금은 왕래가 없지만 옛날에는 큰 고갯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부 남쪽 바로 아래 봉우리에서 문산면 지원리와 마산면 지산리를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구조물의 흔적을 확인했다. 유승광 박사는 백제시대에 해안방어선관 연계된 ‘토루(土壘)’ 주변을 관망하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았다.

▲ 폐교된 지산초등학교 교정
지산리 보건진료소 뒷편에 지산초등학교가 있었다. 1999년 3월 1일에 폐교됐다. 군간리, 라궁리, 관포리, 시선리 등지에서 아이들이 이 학교에 다녔다. 현재 남아 있는 교실 수를 확인해보니 10개 정도이다. 학생 수가 400~500명은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관포리 출신의 영화배우 고 김진규는 어려서 전주로 갔지만 나중에 배우로 성공한 후 매년 고향에 들르면 이 학교에 물품을 기증하곤 했다고 한다.
한때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로 왁자지껄 했을 교정은 온통 수풀로 덮여 폐허가 된 채 방치되고 있다. 아산의 한 교회에서 이 학교를 인수해 수련원으로 사용하다 3년 전 목사와 신도들 간에 소유권 분쟁이 발생해 수련원은 폐쇄되고 아직도 법정싸움이 진행되고 있다. 이곳에 추억이 깃들어 있는 마을 주민들에게는 큰 상처로 남아있다.
▲ 폐허 속에 방치되고 있는 지산초등학교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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