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최선을 다한 나에게 책임을?
■ 모시장터/최선을 다한 나에게 책임을?
  • 허정균 기자
  • 승인 2016.08.24 15:18
  • 호수 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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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흥섭 칼럼위원
A병원의 의사 ‘갑’은 간호사 ‘을’에게 입원해 있는 환자에게 정맥주사를 투여하도록 지시를 했는데, 간호사 ‘을’은 자신이 직접 정맥주사를 투여하지 않고 간호실습생인 ‘병’에게 투여하도록 지시를 한 후 다른 환자에게 주사를 하는 사이에 간호실습생인 ‘병’은 정맥주사를 투여하는 튜브에 투여하지 않고 다른 튜브에 투여하여 환자가 사망했고 검찰은 ‘갑’, ‘을’, ‘병’을 업무상과실치사죄의 공동정범으로 기소했다. 과연 이 경우 ‘갑’에게도 업무상과실치사죄가 인정될지 문제가 된다.

교통사고의 경우, 형사처벌과 관련하여 신뢰의 원칙이란 것이 있는데, 신뢰의 원칙이란 교통규칙을 준수하는 운전자는 다른 관여자들도 교통규칙을 준수할 것을 신뢰해도 좋고 다른 관여자들이 교통규칙을 위반하는 경우까지 예상하여 이에 대한 방어조치를 취할 의무는 없다는 원칙을 말한다.

이러한 신뢰의 원칙은 자동차와 자동차가 충돌한 경우나 자동차와 자전거가 충돌한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적용이 되나 자동차와 보행자의 충돌사고의 경우에는 엄격한 조건 하에서 적용을 하고 있다.
대법원은 ‘자동차 전용도로를 운행중인 자동차 운전사들에게 반대차선에서 진행차량 사이를 뚫고 횡단하는 보행자들이 있을 것까지 예상하여 전방주시를 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대법원 1990. 1. 23. 89도1395 판결)거나 ‘고속도로를 운행하는 자동차의 운전자로서는 일반적인 경우에 고속도로를 횡단하는 보행자가 있을 것까지 예견하여 보행자와 충돌사고를 예방하기 위하여 급정차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대비하면서 운전할 주의의무는 없다’(대법원 2000. 9. 5. 89도1395 판결)고 하여 예외적으로 자동차와 보행자의 충돌사고의 경우에도 자동차전용도로나 고속도로의 경우 신뢰의 원칙을 적용한 예가 있다.

이러한 신뢰의 원칙은 최근 분업적 공동작업이 필요한 경우에 신뢰를 기초지울 수 있는 분업관계가 확립되어 있는 경우에도 공동작업의 능률성을 보장하기 위해 확대적용하는 추세에 있다. 내과의사와 신경과의사 사이, 약사와 제약회사 사이와 같이 수평적 분업관계에 있는 경우 신뢰의 원칙이 적용된다.
대법원은 ‘내과의사가 신경과 전문의에 의한 진료 결과 신경과 영역에 이상이 없다는 회신을 받았고 그 회신을 신뢰하여 내과 영역의 진료를 계속하다가 피해자의 증세가 호전되어 퇴원조치하도록 했는데, 신경과 영역의 병을 발견하지 못한 경우 내과의사에게는 업무상 과실이 부정된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03. 1. 10. 2001도3292 판결).

위와 같은 수평적 분업관계가 아닌 수직적 분업관계 즉 의사와 간호사, 전문의와 수련의 관계처럼 지휘․감독관계가 있는 수직적 분업관계에 있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신뢰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고 예외적으로 인정을 하고 있다.

위 사례의 경우, 대법원은 ‘간호사가 진료의 보조를 함에 있어서는 모든 행위 하나하나마다 항상 의사가 현장에 입회하여 지도․감독하여야 한다고 할 수는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의사가 진료의 보조행위 현장에 입회할 필요 없이 일반적인 지도․감독을 하는 것으로 족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이 사건의 경우 의사가 직접 주사를 하거나 또는 직접 주사하지 않더라도 현장에 입회하여 간호사의 주사행위를 직접 감독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로 보아 ‘간호사가 의사의 처방에 의한 정맥주사를 의사의 입회 없이 간호실습생에게 실시하도록 하여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하여 의사에게는 과실이 부정된다’라고 판시하면서(대법원 2003. 8. 19. 2001도3667 판결), 의사 ‘갑’에게는 무죄판결을 하였다.
물론 이러한 사례의 경우 의사나 병원의 민사상책임은 별개임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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