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세모시로 이룩한 또 하나의 예술세계
한산세모시로 이룩한 또 하나의 예술세계
  • 허정균 기자
  • 승인 2016.08.31 11:05
  • 호수 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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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방공예 ‘한국예술문화 명인’ 획득한 주경자씨

▲ 관광객들의 찬탄을 자아낸 한산모시문화제 기간 전시한 주경자씨의 작품.
판소리 흥부가에 ‘박타는 대목’이 나오는데 흥부가 두 번째 박을 타자 온갖 비단이 쏟아져 나온다. 소리꾼은 비단 이름을 주워섬기는 데에 꽤 긴 시간을 할애한다. 여기에 한산세모시가 나온다. 한산세모시는 이미 비단의 반열에 올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것이다.

한산세모시의 고장 서천에서는 요즘 ‘먹는 모시’에 관심을 쏟으며 많은 주민들의 새로운 소득원이 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한산세모시의 섬세한 질감을 살려 30여년 규방공예 쌈솔로 예술의 경지에 오른 이가 있다. 서천읍 군사리에 사는 주경자씨이다.

▲ 주경자 문화예술명인의 호는 봉화(縫花)이다. 신사임당의 싯구에서 ‘봉’ 자를, 그가 태어난 화금리에서 ‘화’자를 따왔다. 봉화당에서 남편 박도석씨와 함께 해바라기를 표현한 작품을 들어보이고 있다. 박씨는 서천군청에 근무할 때 행정전산망을 구축한 1세대로 자치행정과에서만 33년을 근무했다.
서천읍 화금리에서 태어난 주씨는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모시길쌈을 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1963년도에 서천여고에 입학했는데 2학년이 되자 어머니는 “여자로서 모시 길쌈을 배워야 한다”며 모시 직조 기술을 가르쳤다. 특히 방학 때마다 집중해서 가르쳤다 한다. 유달리 손재주가 좋은 주씨는 어머니로부터 모시길쌈에 대한 모든 것을 전수받았다.

▲ 지난 7월 28일 한국예술문화명인 인증패를 받은 주경자씨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천군청 내무과와 보건소에서 근무하느라 모시짜기에 매달릴 수가 없었다. 결혼하고나서도 시부모와 친정 부모를 돌보느라 한산세모시에 큰 관심을 두기 어려웠다. 주씨가 다시 한산세모시와 함께 생활을 하기 시작한 것은 1994년부터였다. 이때 어머니와 함께 모시조각을 쌈솔로 바느질하면서 전통 쌈솔기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2007년부터는 농업기술센터에서 연 전통규방공예연구반에 들어 체계적인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주씨의 손재주는 빛을 발하기 시작해 한산모시문화제에 작품을 전시하기 시작했으며 각종 대회에 출품해 입선, 특선, 금상, 대상 등을 휩쓸었다. △2011년 충청남도 전통공예품대전 대상 △2013년 충청남도전통공예품대전 특선 △2014년 대한민국공예품 대전입선 △2014년 전주전통공예전국대전 특선 △2015년 대한민국아카데미미술대전 특선 △2015년 전국전통공예전국대전 특별상 △2016년 대한민국나라사랑미술대전 특별상 등이 그의 주요 수상 경력이다. 2014년도에는 이탈리아 밀아노에서 열린 트리엔날레전 조각보자기전에 출품해 전시하기도 했다.

지난 6월에 열린 한산모시문화제에서는 그의 대형 작품들이 다수 전시돼 많은 관광객들의 찬탄을 자아냈다.
“한 작품을 만드는 데에 꼬박 보름 정도 걸립니다. 한산세모시 아니면 이런 작품 안나옵니다.”

그는 올들어 한국예술문화명인에 도전하기로 맘먹고 명인 신청서를 작성했다. 130여쪽에 이르는 신청서를 직접 컴퓨터를 이용해 작성했다. 이 신청서는 그가 한산세모시와 함께 살아온 이력서이기도 하다. 지난 5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에 이를 제출했으며 서류심사, 실기평가, 작품 심사 및 인터뷰 등 까다로운 절차를 통과해 지난 7월 15일 마침내 합격통지를 받았다.

주씨는 “후대가 쉽게 규방공예 삼솔을 이어갈 수 있도록 교재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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