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 연재/서천의 문화예술인을 찾아서(3)/영화감독 이강천-2
■ 기획 연재/서천의 문화예술인을 찾아서(3)/영화감독 이강천-2
  • 허정균 기자
  • 승인 2016.09.13 15:54
  • 호수 8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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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 남한 지식인들의 개인적 ‘실존’ 표현”
영화음악의 효시 ‘백치아다다’…17년 동안 총 28편 감독

▲ 영화 ‘피아골’의 촬영지인 경남 하동군 직전면에 세워진 기념탑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에서 일하며 전주국제영화제의 초석을 놓은 영화감독 김건은 이강천 감독의 ‘피아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피아골’은 한국영화가 동란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는 과정에서 나타났던 미학적 모색을 보여주는 작품이자 동시대의 현실에 대한 직접적 발언이다. 당대 논객들의 문제의식은 영화라는 대중화된 매체가 사회적 역할과 목적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을 토대로 한다. 전쟁 후의 혼란한 일상, 그 속에 만연한 정체 모를 불안감과 위기의식 등에 대한 고민이다. 50년대 남한 지식인들은 개인의 ‘실존’을 그러한 시대 분위기 속에서 그려내며, ‘한국영화가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떻게 해야 할까’를 진지하게 고민했을 것이다. 그 결과가 바로 리얼리즘적 휴머니즘이라는 이정표였다. 이러한 휴머니즘이라는 이정표는 인간성 회복이라는 근본적 문제의식을 지향한다.

‘피아골’이 대성공을 거둔 이후 이강천 감독은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작품들을 잇달아 내놓으며 전북을 중심으로 한 당시 한국영화계를 주도했다. 영화 간판을 그리던 그림쟁이는 당대 최고의 영화 감독으로 올라선 것이다. 영화 제작자 김영창, 김병기 시나리오 작가 김종환과 조진구, 촬영기가 강영화, 탁광 등 전북인들은 이강천 감독과 동고동락하던 전주 영화 문화의 주역들이었다.
50년대 후반들어 서울이 복구되면서 지방의 영화인들도 증앙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자본과 인력이 충무로에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전북 영화계의 주역들도 이러한 시류에 합류할 수밖에 없었다.
1956년 이강천 감독이 서울에서  만든 영화 ‘백치 아다다’는 1935년에 발표한 계용묵의 단편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 '백치 아다다’ 포스터
벙어리 처녀 아다다는 지참금을 가지고 가난한 득구에게 시집을 간다. 돈이 생기자 남편은 새 여자를 데려오고 아다다는 친정으로 쫓겨난다. 아다다는 동네에서 수룡이라는 총각을 만나 사랑하게 되고 두 사람은 멀리 섬으로 가서 살기로 한다. 아다다는 난생처음 행복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수룡이 땅 살 돈을 아다다에게 보여주자 아다다는 불행의 씨앗인 돈을 바다에 모두 던져 버린다. 아다다를 뒤쫓아 온 수룡은 바다로 떠내려가는 돈을 건지려고 발버둥치고 아다다는 언덕에서 굴러 물속에 잠겨 죽는다

이 작품은 작품성을 인정받아 제4회 아시아영화제에 출품하여 호평을 받았으며 상업적으로도 성공했다. 이 영화의 남자주인공은 연극배우로 명성을 날렸던 장민호였으며 여자주인공이었던 가수 나애심은 주제가를 직접 불러 레코드판이 날개돋친 듯 팔렸다 한다.

초여름 산들바람 고운 볼에 스칠 때/검은 머리 큰 비녀에 다홍치마 어여뻐라/ 꽃가마에 미소 짓는 말못하는 아다다여/ 차라리 모를 것을 짧은 날의 그 행복/ 가슴에 못박고서 떠나버린 님 그리워/ 별 아래 울며 새는 검은 눈의 아다다여

‘백치 아다다’는 이강천 감독을 당대 최고의 영화감독으로 자리잡게 한 작품이었으며 영화 음악이 본격적으로 활용된 첫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1987년 임권택 감독이 만든 ‘아다다’는 이강천 감독의 ‘백치 아다다’를 다시 만든 것으로 아다다역의 신혜수는 제12회 몬트리올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공산성의 혈투’ 포스터
1961년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고 사회가 다시 경직되면서 영화검열이 강화됐다. 이강천 감독이 데뷔했던 5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영화계의 창의적인 의욕은 60년대 들어 군사정권의 제도적인 통제와 외압에 의해 침체 국면을 맞게 됐다. 이강천 감독의 영화도 이의 영향을 받아 주로 반공 이념에 치중하게 되었다.

이강천 감독은 54년 ‘아리랑’으로 데뷔해 71년 ‘타인이 된 당신’에 이르기까지 17년간 28편의 영화를 감독했다. 그가 만든 영화 연출작들은 ‘백치 아다다’, ‘종말없는 비극’ 등의 멜로드라마와 ‘아리랑’, ‘피아골’, ‘두고 온 산하’ 등의 전쟁영화, ‘팔검객’, ‘공산성의 혈투’ 같은 시대극으로 나눌 수 있다.

1968년도에 나온 ‘공산성의 혈투’는 백제의 웅진 천도 이후 지방 호족 세력을 누르고 왕권 강화에 성공한 동성왕의 이야기이다.
백제 개로왕의 손자 마모는 병조좌평 해구의 흉계로 고구려와의 싸움에서 패전하고 뱃사공의 딸 미루낭자의 도움으로 공산성에 돌아온다. 그러나 그는 해구의 끈질긴 모함으로 마침내는 역모의 누명을 쓰고 비루벌로 쫓겨난다. 비루벌 성주 묘방령도 그를 역적으로 알고 죽이려 했으나, 성주의 딸 칠성낭자의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한다. 그 후 왕손 마모의 억울한 사정을 알게 된 성주 묘방령은 공산성을 쳐들어가서 해구 일당을 전멸시키고 그동안에 사로잡혀 있던 미루낭자를 구출하는 한편 마모로 하여금 왕권을 계승케 한다는 애용이다. 박노식과 문희가 주연을 맡았으며 허장강이 악연 조연으로 나온다.

▲ 이강천 감독의 부음을 알리는 신문 기사
2003년 3월 17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서초동의 영상자료원 시사실에서 이강천 감독 회고전이 열렸다.
회고전에는 최은희·이예춘 주연의 ‘무정’(62년), 신영균 주연의 ‘죽은자와 산 자’(68년), 신성일·박노식이 출연하는 ‘대좌의 아들’(68년), 노경희·김진규의 ‘피아골’(55년), 신영균·김지미가 호흡을 맞춘 ‘살아야 한다’ 등 다섯 편의 영화가 매일 한 편씩 소개됐다. 이강천 감독은 1993년 71세를 일기로 작고했지만 그가 배출한 배우와 세상에 던진 메시지는 영화 속에 고스란히 살아 전해온다.

◆이강천 감독 작품 연보
1. 아리랑(1954)
2. 피아골(1955)
3. 격퇴(1956)

▲ 이강천 감독은 평생 화가로도 활약했다. 1981년 4월 15일자 경향신문 기사.
4. 백치 아다다(1956)
5. 사랑(1957)
6. 아름다운 악녀(1958)
7. 종말없는 비극(1958)
8. 생명(1958)
9. 젊은 아내(1959)
10.사랑의 역사(1960)
11.나그네(1961)
12.이 순간을 위하여(1961)
13.두고 온 산하(1962)
14. 무정(1962)
15.팔검객(1963)
16.낙동강 칠백리(1963)
17.수양과 백두산(1964)
18.나는 속았다(1964)
19.미녀와 도적(1964)
20.살아야 한다(1965)
21.남북천리(1966)
22.계룡산(1966)
23.죽은 자와 산 자(1966)
24.대좌의 아들(1968)
25.유성의 검(1968)
26.어떤 눈망울(1968)
27.공산성의 혈투(1968)
28.타인이 된 당신(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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