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귀농·귀촌의 올바른 방향을 찾다(7) 서천의 귀농·귀촌인들의 사는 이야기
■기획취재/귀농·귀촌의 올바른 방향을 찾다(7) 서천의 귀농·귀촌인들의 사는 이야기
  • 김장환 기자
  • 승인 2016.09.13 16:54
  • 호수 8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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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귀촌정책, 귀농인들 조언에 귀 기울여야
영농교육·일자리·원주민과의 갈등 문제 ‘지적’

옛말에 ‘사람은 성공하려면 서울로 가라’했지만 요즘은 물질적인 성공을 뒤로한 채 내 삶을 찾고 가족의 행복을 위해 농촌으로 귀향하는 귀농·귀촌 인구가 늘고 있는 추세다. 정부 또한 수도권의 인구 밀집을 해소하고 농촌인구의 증가를 위해 귀농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는 현실에서 각 지자체들이 도시민 유치를 위해 적극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한때 귀농1번지로 도시민들에게 큰 관심을 받았던 서천군이 이제는 타 지자체들이 앞 다투어 지원정책들을 내놓으면서 귀농1번지의 인기가 시들고 있다. 재정자립도가 약한 서천군이 귀농 1번지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혜안을 찾고 귀농·귀촌인들이 제2의 고향인 서천에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는 데 실질적인 도움은 무엇인지 알아보기로 한다. <편집자 주>

서천군, 귀농·귀촌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서천군이 올바른 귀농·귀촌 정책을 펴기에 앞서 현재 서천에서 살아가는 귀농·귀촌인들의 삶을 알아보고 이들이 진정 원하는 정책들은 무엇인지 들어볼 필요가 있다.
타 지자체 사업의 벤치마킹보다 현재 서천에서 귀농·귀촌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이들이 추구하는 행복은 무엇인지? 바라는 사업들이 무엇인지? 귀 기울인다면 적은 예산에도 타 지자체와 차별화 된 사업들을 추진 할 수 있는 혜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귀농 5년차 전병환씨와 박충식씨, 귀농 2년차인 이준희씨의 귀농이야기와 이들이 바라는 귀농정책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훈훈한 인심이 그리운 전병환(55) 김영자(55) 부부

▲ 시초면 초현리에서 블루베리농장을 운영하는 전병환(55) 김영자(55) 부부
“농촌은 도시보다 덜 각박하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날 꺼라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더라고요” 시초면 초현리에 거주하는 전병환(55) 김영자(55) 부부의 이야기다.
이들 부부가 귀향한지도 어느덧 5년이 넘었다.
지금이야 서천블루베리농장을 운영하고 농한기에는 서천산림조합에서 일용직 근로자로 일하면서 안정된 정착생활을 하고 있지만 5년이 흐른 지금도 마을의 주민들과의 갈등은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처음 서천이라는 곳을 잘 알지 못하던 이들 부부가 귀농을 결심하게 된 것은 시골에 대한 그리움, 이웃들과의 따뜻한 정이었다고 한다.

서울에서 ‘일진사무기상사’라는 컴퓨터수리업체를 26년 간 운영하던 전병환씨는 각박한 도시생활의 회의감이 밀려오자 평소 자신이 꿈꾸던 귀농을 결심했다.
그리고 전북 완주군과 청양군 등을 알아보다 우연히 서천이라는 곳을 알게 됐고 때마침 시초면 초현리에 부동산매물이 나오면서 무작정 서천에 둥지를 틀게 됐다.
이들 부부는 처음 마을에 정착하면서 농촌에서 잘살겠다는 기대보다는 돈은 덜 벌어도 자신들의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이웃들과 따뜻한 정을 나누는 소박한 꿈 하나였다.

뒷뜰에 블루베리는 해마다 탐스럽게 열리고 있지만 아쉽게도 이들 부부의 꿈은 아직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
처음 마을 주민들을 모시고 저녁을 대접하고 볼 때마다 인사를 하며 한걸음씩 다가섰지만 귀농인 부부를 바라보는 원주민들의 시선은 늘 달갑지 않은 이방인이었다.
집 앞 진입로가 협소해 마을주민에게 사정했다가 “내가 죽기 전에는 땅을 못 판다”는 대답을 들어야 했고, 전씨가 운영하는 농장을 찾아온 교육생들이 “주인 몰래 감을 땄다”며 억지(?)를 부리는 바람에 억울한 누명을 쓰기도 했다.

전씨는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잘 대해주시는데 마을의 한두 분이 심한 텃세를 부리면서 우리 부부를 힘들게 하고 있다”며 “원주민들과 갈등을 겪으면서 한때는 역귀농을 생각했지만 이대로 포기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마음을 다 잡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하소연 했다.
“처음 귀농했을 때 혹시 지원받은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전씨는 “면사무소에서 시계 하나 달아주고 쓰레기봉투 받은 것이 전부였어요. 귀농인 대상 지원금은 사업비가 소진됐다고 안주더라고요. 2년 후 군을 다시 찾았지만 재산을 담보로 하면 대출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답변만 받았어요”라며 손사래를 쳤다.

서천군농업기술센터를 통해 예비 귀농인들의 멘토로 일하고 있는 전씨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어떻게 하면 농촌에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냐?”는 것이란다.
만약, 서천주민들이 예비 귀농인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면 뭐라고 대답했을까? 이 문제는 전씨를 비롯한 공무원, 서천군 주민 모두 한번쯤 고민해볼 문제이기도 하다. 전병환, 김영자 부부는 희망의 말도 전했다.

아내 김영자씨는 “서천은 산과 강 바다가 어우러져 참 살기 좋은 동네여서 도시민들의 귀농귀촌지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며 “군이 노력만 한다면 얼마든지 귀농인들의 유입을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병환씨는 “최근 서천농업기술센터로 사업이 이관되면서 예비 귀농인들을 위한 지원이나 교육이 늘었고 실제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며 “실제로 농촌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귀농인들은 한시적인 지원금 보다 안정적인 정착을 위한 교육과 농업기술 습득, 자립할 수 있는 일자리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전병환씨는 “마을에서 어르신들과 정을 나누며 살아갔으면 한다”며 “서천군 주민들도 귀농인들을 이방인으로 보기 전에 고령화마을과 젊은 농촌을 만드는데 꼭 필요한 이웃으로 대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단상리가 고향이 된 박충식씨

▲ 한산면 단상리에서 ‘앉은뱅이소곡주’ 공장을 운영하는 박충식 대표
얼마 전, 추석 특수로 눈코뜰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는 앉은뱅이 소곡주 박충식 대표(56)를 만났다.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얼마 안됐지만 대대손손 내려온 손맛 때문인지 추석 물량이 제법 되는 모양이다.
박충식씨가 한산면 단상리에 귀농한지도 5년이 지났다. 경기도 용인에서 병원 사무장으로 일하던 그가 단상리에 내려온 계기는 우선 아내 유희복(50)씨의 고향이라는 것과 장모님이 대대손손 이어온 가업을 물려받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이 늘 원하던 농촌에서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였다.
박씨는 “5년 전 서천군에서 소곡주특화사업을 추진하면서 1남4녀 중 누가 가업을 이어 받을 것인지 장모님이 걱정을 하시더라고요. 다들 서울에서 직장생활에 사업을 하니 아무도 내려오지 않으려 하기에 때마침 잘됐다 싶어서 귀농을 결심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라며 귀농에 대한 만족감을 나타냈다.
‘앉은뱅이소곡주’ 공장을 운영하는 박씨는 소곡주 판매가 몰리는 추석과 설 이외에는 ‘서천군귀농·귀촌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생태목공 팀에서 부팀장으로 일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처음 아내의 고향 단상리로 이사했을 때 박씨와 아내 유희복씨는 잘 적응한 것과 달리 자녀들이 한동안 적응하지 못해 힘들었다고 한다.
도시에서 친구들과 충분한 문화생활을 누리다 한산면 단상리의 시골마을로 생활환경이 변했으니 그 마음고생은 못자리에서 논으로 심겨지면 한동안 시름시름 앓는 어린 모 같았을 것이다.
박충식씨는 “아이들이 한동안 적응하지 못해 힘들었는데 2년이 지난 후부터 잘 적응했다”고 말했다.
박씨가 5년 전, 서천에 귀농했을 때 받았던 지원금은 빈집수리비 200만원과 자녀학자금의 일부를 지원 받은 것과 관련해 “군에서 돈을 받기위해 귀농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며 “아내의 고향이라서 마을주민들과의 갈등이 없다는 것과 현재의 직업, 그리고 한산소곡주와 한산모시의 고장인 한산에서 산다는 것에 크게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서천은 교통과 자연환경이 좋아 귀농귀촌지로 매력적인 곳”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다만 “군이 예비 귀농인들을 위한 사업과 교육프로그램 안내책자가 있었으면 좋겠고 젊은 귀농인들을 위한 일자리 제공도 필요하다”며 “타 지자체와 차별화 된 사업을 진행한다면 많은 귀농귀촌인들이 서천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군인에서 청소년 지도 교사로 거듭난 이준희씨

▲ ‘서천군청소년문화센터’에서 ‘방과후아카데미’ 지도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준희씨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군인으로 살아가던 이준희(54)씨는 서천에 내려온 후 행복한 웃음이 부쩍 늘었다.
‘다, 나, 까’로 끝나는 딱딱한 계급사회를 벗어나 민간인으로 살아가는 맛도 있겠지만 그를 더 행복하게 하는 것은 농촌에서의 새 삶을 꾸렸다는 것과 어렵게 살아가는 청소년들을 돌보고 보살피는 ‘방과후 아카데미’ 교사로 제 2의 인생이 있기 때문이다.
이준희씨는 지난해 6월에 서천으로 귀촌한 새내기지만 누구보다 더 빨리 농촌생활에 적응했고 자신이 원하는 직업도 갖게 됐다.
그 밑바탕에는 30여년이 넘도록 몸담았던 군 생활과 매달 지급되는 연금이 큰 힘이 되고 있다.
제대 전만 하더라도 서천이란 곳을 잘 알지 못하던 이씨가 서천을 알게 된 계기는 ‘충남 귀농·귀촌학교’를 통해서다.
처음 정읍을 선택했다가 서천에서 귀농·귀촌 교육생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일단 지원해 보기로 한 것이다.
늘 산속에 쌓인 양구군에서 살다 평야가 넓게 펼쳐지고 바다가 있는 서천에 오니 그에 눈에는 매력적인 곳으로 비쳤고 거기에 ‘충남귀농·귀촌학교’를 운영하는 정경환 대표의 순수하고 진실 된 마음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이씨는 “잘 모르시는 분들이 귀농귀촌지로 강원도를 택하지만 생각보다 공기가 맑지 않고 눈이 오면 큰 불편을 겪는 곳이 강원도”라며 “서천은 자연환경이 뛰어나 귀촌지로 큰 매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아내 정지영(53)씨와 시초면 신곡리에서 거주하는 이씨는 마을주민들과 정을 나누며 행복한 귀촌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 매개체는 교회다. 평소 기독교인이던 이들 부부가 귀촌 후 마을에 있는 교회를 찾았을 때 교인들은 “젊은 사람들이 마을에 왔다”며 크게 반겼다고 한다.
이준희씨는 “제가 신곡리에 오기 전에는 62세가 막내였으니 지금은 제가 제일 어린 거죠. 군대였으면 할아버지 취급 받았을 텐데요. 지금은 주민들이 참 잘해주셔서 서천으로 귀촌하길 참 잘했어요”라며 지금의 행복을 웃음으로 표현했다.
이준희씨는 사회복지사 2급에 충효지도사, 아동청소년상담사 1급 자격증을 살려 현재 ‘서천군청소년문화센터’에서 ‘방과후아카데미’ 지도교사로 활동하고 있으니 서천에는 인재가 들어온 셈이다.
서천 귀농·귀촌 정책과 관련해 이준희씨는 “우선 서천은 산과 바다 강이 있고 넓은 평야가 있어 여건은 상당히 좋은데 홍보가 부족한 것과 초보 귀농인들을 위한 지원정책이 적다”는 것에 아쉬움을 표했고 귀농인들을 위한 조언으로 “두려워하지 말고 서천에 내려와 농민으로 열심히 살다보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서천에서 주민들과 함께 하며 보람된 일을 하고 싶고 아내와 함께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이 기획취재는 충남도 지역미디어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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