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의 역사 초월한 ‘무욕의 삶’
수난의 역사 초월한 ‘무욕의 삶’
  • 허정균 기자
  • 승인 2016.10.19 15:35
  • 호수 8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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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 종지리 94세 유재식 할머니

▲ 유재식 할머니
한산면 종지리에 사시는 유재식 할머니는 1924년 갑자년 생이다. 올해 우리 나이로 94세이시다.
‘묻지마라 갑자생’이란 말이 있다. 이 무렵 태어난 이 땅의 사람들은 참으로 고생이 많았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한창 나이에 일제가 벌인 전쟁에 내몰렸고 해방이 되었으나 좌우 대립, 이후 곧 6.25가 일어나 참혹한 전쟁을 겪어야 했다.

“우리 또래들 산 사람 별로 없어. 위에서 내려와서 죽이고 위로 올라가면서 죽이고…….”
갑자년 생 한 노인의 말이었다.
94세임에도 텃밭을 가꾸고 밭일을 해서 나온 소출로 이웃을 돕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유재식 할머니를 지난 6일 종지리로 찾아가 뵈었다. 할머니는 이웃 아주머니 한 분과 함께 수확해온 팥을 까고 있었다. 높은 연세임에도 귀도 밝으시고 허리도 정정하셨다.

할머니는 부여 충화면에서 태어나 나이 20에 종지리로 시집온 후 지금까지 이 집에서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었다. 한 살 위인 할아버지는 64세에 돌아가셨다 한다. 여자가 너무 배우면 못쓴다며 할아버지가 학교를 다니지 못하게 해서 학교는 조금 다니다 말았다 한다.
“살아오시면서 어느 시절이 가장 힘드셨어요?”“몰라. 다 잊어버려서 생각이 안나.”

할머니는 이 집에서 아들 여섯 딸 하나를 낳아 모두 출가시켜 다들 잘 살고 있다.“농사는 논 쪼끔 밭 쪼끔. 그래서 고등학교까장 밖에 못갈쳤어.”다섯째가 딸인데 군산에서 고등학교 나왔어.
이웃 아주머니는 그 딸이 매주 주말이면 와서 어머니를 돌본다고 한다.

▲ 유재식 할머니가 가꾼 짚 앞 텃밭.
유재식 할머니는 집 앞 텃밭에 채소를 가꾸어 이웃과 나누는 게 유일한 즐거움이자 소일거리이다.
“밭도 두 뙈기 있어. 콩, 팥, 들깨 이런 거 심어. 올해 가물어서 농사가 안됐어. 이제사 들깨가 크는데 이러다 서리 내리면 못 먹어”
밭을 갈거나 이랑을 타고 농약을 치고 하는 일은 아들들이 번갈아 찾아와서 한다고 이웃집 아주머니가 전한다.

이렇게 지어 얻은 농산물은 대부분 어려운 이웃에 나눠준다. 애써 가꾼 채소도 종지리 교회나 이웃에게 나눠주고 잡곡도 장날 한산 시장에 나가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한산 시장에서는 유재식 할머니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서울 아들들이 내려오면 “어머님 하시고 싶은 대로 하시도록 해 달라”며 동네 사람들에게 부탁을 한다고 이웃 아주머니가 전해주었다.

“서울 아들네 집에 가서 살면 편하지 않아요?”“못살어. 며칠 있다 바로 내려와.”
“식사는 잘 하세요?”“먹기는 먹는디 밥맛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어.”
건강 비결이 뭐냐고 물어보았다.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주셔.”

▲ 이웃 아주머니와 함께 토방에 앉아 팥을 까고 있는 유재식 할머니
할머니는 시집온 뒤로 종지리 교회에 다니신다. 옛날에는 ㄱ자 형태로 돼 있어 남자, 여자 따로 앉았다 한다.
이 땅에 뿌리를 박고 1세기 동안 한국 근현대사를 겪으며 살아오신 유재식 할머니에게 민초들이 겪은 수난의 역사가 왜 없겠는가. 이제 할머니는 모든 것을 초월한 도인처럼 보였다. 아무런 욕심이 없이 그저 씨를 부리고 거둬들이고, 몸이 허락하는 한 움직여 일하고, 그런 가운데 그냥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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