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장터/2016년 대한민국의 가을이 불타고 있다
■모시장터/2016년 대한민국의 가을이 불타고 있다
  • 양선숙 칼럼위원
  • 승인 2016.11.22 18:06
  • 호수 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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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여전히 전국의 단풍은 형형색색 물들었고, 어느새 도심 깊숙이 밀고 들어와 울긋불긋 가을이 한창이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가까운 교외로 나들이라도 나갔을 텐데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며칠 전 사회활동으로 참여중인 청소년단체 모임에 나가 근황을 이야기할 때 한 분이 계속된 무기력감 때문에 힘들다는 푸념이 어찌 그분만의 이야기이겠는가.

뉴스 보는 것이 두렵다. 덮고 싶고 피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끝도 없이 드러나는 국정 농단과 정치인들의 파렴치한 모습에 자괴감이 밀려오지만 그럼에도 또박또박 기사를 읽어내는 것은 이 일이 내가 살고 있는 내 나라에서 벌어지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도망갈 수도 없고 도망가서도 안 된다. 그동안 정치, 사회 전반을 외면했던 모습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분노와 울분을 참아내야 한다.

잘못 행사한 국민의 한 표가 얼마만큼 나라를 망칠 수 있는지 우리는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나라의 발전과 안녕, 평안을 위해야 할 정치인들은 정권 유지에 혈안이 되어 있을 뿐, 정작 국민은 온 데 간 데 없다. 초등학교 반장만 돼도 반장으로서 도리를 알진데 5천만의 국가의 원수가 동네 계모임 회장만도 못한 국정운영으로 나라를 흔들고 있다.

막장 드라마와 같은 최순실의 범죄 행위와 대통령의 공범 사실에 국민은 분노와 불신, 상실감에 빠져 있다. 지금의 시간은 아픔의 시간이다. 그러나 마냥 아파할 수만 없다. 곪고 썩어서 악취로 진동하는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된 썩은 종기를 날카로운 칼로 째고 도려내어 새 생명을 기약해야 한다. 여야 정권싸움, 정경유착, 사법부 비독립, 정부의 언론탄압, 정치적 색깔론으로 후퇴한 민주주의를 살려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 역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써가고 있다. 역사의 어려운 고비 고비를 헤쳐 온 한민족의 얼을 되살려 정치인들이 망쳐놓은 나라를 국민의 힘으로 심판하고 이끌어가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개인주의와 취업에 골몰하던 대학 캠퍼스가 움직이고 있다. 한국 정치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현장을 이끌어왔던 학생들이 그동안의 무관심과 방관을 깨고 현 시국의 문제에 앞장서고 있다.

지방에서 태어나 줄곧 자란 내가 사십 중반이 돼서야 재작년 여름 처음으로 광화문광장을 다녀왔다. 소풍가는 아이마냥 서울 구경을 떠났는데 제일 가고 싶었던 곳이 바로 광화문광장이었다. 간신들의 모함이 있었지만 백의종군했던 이순신장군의 기백과 가난하고 무지한 백성을 불쌍히 여겨 불철주야 나라를 다스렸던 성군 세종대왕이 그곳에 있었고, 현 정부의 민낯인 세월호 유가족의 농성 천막 앞에서 짧은 묵념을 하며 대한민국의 아픔도 그곳에서 만났다.

광화문광장에 100만 시민의 촛불이 타올랐다. 지방 곳곳마다 번지는 촛불을 보며 3.1. 만세운동을 떠올린다. 일제의 탄압도 독립을 향한 국민의 자발적 만세 운동을 막지 못했다. 대통령과 정부의 무능, 부정 부패를 심판하고 기울어진 나라의 정세를 바로잡고자 하는 민주주의 촛불이 한반도를 밝히고 있다. 그 뜨거운 불길은 초겨울의 세찬 바람에도 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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