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설 명절, 소외된 이웃과 함께
<사설>설 명절, 소외된 이웃과 함께
  • 허정균 기자
  • 승인 2017.01.26 14:21
  • 호수 8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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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음력을 쓰던 우리 민족은 설을 최대의 명절로 삼아왔다. 그러나 1895년 을미개혁기에 도입한 양력설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공식적인 ‘설’로 인정받은 반면, 음력설은 ‘구정’이라 부르며 천대받았다.
당시 양력설과 음력설을 함께 쇠는 것을 ‘이중과세(二重過歲)’라고 해 양력설을 지내도록 장려했으나 전통을 중시하는 민간에서는 음력설이 사라지지 않았다.

대통령기록포털에 따르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설날과 관련된 최초의 기록물은 1949년 6월 4일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건’이다. 이 문서에서 정부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양력설만을 인정, 1월 1일부터 3일간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은 우리의 전통명절인 음력설을 쇠어 사실상 두 번의 설을 지냈다.

1985년 설날 명칭에 대한 다양한 논의 결과 음력 1월 1일을 ‘민속의 날’로 지정했고, 1989년 2월 설날 공휴일을 현재와 같이 변경했다. ‘설날’이라는 명칭을 회복한 것이다. 당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개정령’은 ‘설날’ 명칭의 복원과 ‘설날 3일의 공휴일’ 지정과 관련된 내용을 보여 준다.
이는 민족고유 명절인 설을 되살리고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자 하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고향을 방문하는 귀성객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1998년 12월 ‘IMF 이후의 경제난 타개’와 ‘이중과세’의 낭비를 막기 위해 정부는 양력설 연휴를 하루로 축소시켰다. 당시 신정 연휴의 축소를 두고, 생산성 향상을 이유로 1999년부터 시행하자는 경제단체와 익년도 달력을 이미 제작한 인쇄업계의 2000년부터 시행하자는 주장이 동시에 제기됐고, 논의 결과 1999년부터 양력설 연휴를 축소해 현행과 같이 자리잡게 되었다.

양력설과 음력설로 병존하던 설날은 이런 과정을 거쳐 민속 명절 본래의 위치를 되찾을 수 있었다.
이처럼 우여곡절을 겪으며 오랜 전통을 되찾은 설 명절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나라 안팎의 사정이 매우 어렵고 힘들지만 모처럼 가족, 친지, 이웃과 함께 정을 나누는 우리의 전통을 되살리고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살려나간다면 현재 처한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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