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연재/금강하구 생태계 복원을 위하여 (2)갈대②
■ 기획연재/금강하구 생태계 복원을 위하여 (2)갈대②
  • 허정균 기자
  • 승인 2017.02.15 14:40
  • 호수 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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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날 것 갈대밭에서 나왔다
약재로 식용으로…쓰임새 다양한 갈대
시인·묵객들의 소재에도 등장

▲ 신성리 갈대밭 전경.
갈대는 여러해살이풀로 생존하며 땅속줄기, 뿌리 등이 변형된 저장기관을 갖고 있다. 이러한 갈대의 뿌리는 예로부터 약재로 사용되어왔다.
갈대가 처음 나올 때를 ‘가(葭)’, 좀 크면 ‘노(蘆)’, 완전히 자란 것을 ‘위(葦)’라고 하는데 뿌리의 맛은 달고 성질은 서늘하며 각종 독을 풀어준다.

옛날에 가난한 농부의 어린 아들이 열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게 되자 약방에 찾아갔다. 약방의 주인은 비싼 약만 권할 뿐이어서 낙담을 하고 집에 왔는데, 마침 거지가 찾아와 사정이야기를 듣더니 갈대뿌리를 캐어 달여 먹이라고 일러주는 것이었다. 이를 마신 아이는 열이 내리고 정신이 돌아왔고, 농부는 그 거지를 친구로 삼았다 한다.

갈대 뿌리는 중추신경의 흥분을 억제하고 진정작용을 하며, 교감신경의 흥분을 억제하고, 혈당강하 작용, 혈압강하작용, 해열작용을 한다고 한다. 청정지역의 갈대 뿌리를 캐서 잘 씻은 후 그늘에 말려 잘게 썰어 사용하는데 갈대의 뿌리는 방사능 중독과 그로 인한 백혈구의 감소증을 치료하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또한 달여 마시면 백혈구가 증가하고, 조혈기능이 높아지며, 인체의 면역력이 강화된다고 한다. 황달, 당뇨, 각종 암, 구토, 만성복막염, 부종, 방광염, 관절염, 소변 불통에 효과가 있다 한다. 복어독의 해독약으로 사용된다.

식중독이나 농약 중독, 중금속 중독에 뿌리를 달여 마신다. 알코올 중독에 뿌리를 달여 상복 하면 효과가 탁월 하다고 한다. 숙취해소에는 음주 전후에 뿌리를 달여 한잔씩 마시면 된다.
최근에는 갈대의 뿌리에서 추출한 ‘피라큐마레이트’라고 하는 성분이 치매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갈대 뿌리는 오리과 철새들의 먹이이지만 사람들도 이를 식용으로 채취해 사용했다. 다음은 한산면 신성리에서 만난 노인들의 증언이다.

“배고프면 갈 뿌리를 먹었다. 한 짐 잘라서 지고 와서 먹었다. 갈대 뿌리 엄청 많이 먹었다. 대나무처럼 생겼는데 연해서 칡뿌리 먹듯이, 단수수 먹듯이 씹으면 달작지근하다. 위장병에 그렇게 좋다고 헌다.”

갈대의 땅 속에 있는 어린 줄기를 요리로 먹기도 하는데, 연하고 맛이 달며, 날것으로 먹으면 싸한 맛이 난다. 갈대는 생활용품으로도 쓰임새가 다양했다. 지붕을 이는 재료로 사용되었다. 갈대를 엮어 두텁게 올린 지붕은 30년 이상 간다고 한다. 장암리 패총에서 발견된 빗살무늬토기를 만든 신석기시대의 먼 조상들은 갈대를 지붕으로 움집을 지었을 것이다. 다음은 신성리 주민들의 증언이다.

“옛날에 갈자리 만들 때는 갈대밭이 논보다 소출이 더 나왔다. 지금은 갈대 아무 데도 소용없다. 갈꽃 뽑아서 빗자루 매고 갈자리 짜고… 여그 갈대밭에서 겨울 날 것이 나왔다. 갈대밭에 가면 깔뜽기(갈게)가 버글버글했다.”

금강 하류 지역에서 이처럼 갈대밭 주변의 주민들에게 갈대는 유용한 생활 수단이었다. 신성리 갈대밭의 규모가 가장 컸다.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60ha 이상 되는 것으로 추측된다.

“이 앞의 논이 다 갈대밭이었고 지금 갈대밭은 옛날 1/3도 안된다. 어마어마했다. 갈대밭 끝에 가면 웅포가 바로 저만큼 있었다. 우리가 순천만 가봤지만 순천만 그거 아무것도 아니다.”

▲ 민화 갈대와 게 그림
갈대는 고려말 목은 이색 선생의 한시에도 등장한다.

“세우도화랑(細雨桃花浪 : 보슬비에 복사꽃 물결치고) / 청상로엽추(淸霜蘆葉秋 : 맑은 서리에 갈대잎 나부끼는 가을이라) / 귀범하처락(歸帆何處落 : 돌아가는 돛대는 어느 곳으로 떨어지는지) / 묘묘일편주(渺渺一片舟 : 아득히 조각배 한 척 떠간다.”

목은 선생의 ‘한산팔영(韓山八詠)’ 시 가운데 여섯 번째인 ‘진포귀범(鎭浦歸帆. 진포로 돌아가는 배)’이라는 제목의 오언절구이다.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이기도 박수환 전 한산면장은 “이 시에 나오는 배는 웅포 쪽에서 낚시를 하고 돌아오는 배로 진포는 곧 신성리 포구”라고 말한다.

갈대는 게와 함께 우리 민화에도 자주 등장한다. 갈대는 한자로 ‘로(蘆)’라고 쓰는데, 이 글자는 중국에서 ‘려(臚)’와 읽는 법이 같다. ‘려’는 본래 과거 급제자에게 임금님이 내리는 고기음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전려(傳臚)’란  임금님이 과거 급제자에게 고기 음식을 하사한다는 의미이다.

민화에 게 두 마리가 갈대를 물고 있는 그림이 있는데 이를 ‘이갑전려도(二甲傳臚圖)’라고 한다. 딱딱한 껍질을 가진 게는 한자로 ‘갑(甲)’인데 ‘으뜸’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어서 장원급제하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 두 마리를 그린 이유는 소과와 대과, 또는 초시와 복시에 에 모두 합격하라는 뜻이다.

▲ 김홍도의 ‘해탐노화도’
단원 김홍도가 그린 ‘해탐노화도(蟹貪蘆花圖)’는 게가 갈대꽃을 탐하는 그림이라는 뜻이다. 그림 속에 행서(行書)로 쓰여진 해용왕처야 횡행(海龍王處也橫行)‘은 “바다 속 용왕님 계신 곳에서도 옆으로 걷는다”는 뜻이다. 과거에 급제해 왕의 앞에 나아가도 권력 앞에서 결코 비굴해지지 말며 하늘이 내려준 자신의 품성대로 똑바로 살아야 된다는 깨달음을 주는 말이다.

갈대와 사람들 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먼 옛날의 이야기로만 들린다. 금강하류 지역에서 갈대밭을 없애며 진행됐던 개발은 전통 문화마저 바꾸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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