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삶의 코드를 찾아라
새로운 삶의 코드를 찾아라
  • 최현옥
  • 승인 2003.08.08 00:00
  • 호수 18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림국악원에서 고전무용 배우는 노인들
흰 수건이 흩뿌려진다.
느리게 거닐다가 이따금 수건을 오른팔과 왼팔로 옮기고 때로는 던져서 떨어뜨린 다음 몸을 굽히고 엎드려 두 손으로 공손히 들어올린다. 시나위에 맞춰 흔드는 수건 속에 그 동안의 살아온 삶이 일장춘몽처럼 스친다. 얼굴의 자글자글한 주름과 노쇠한 몸은 더 이상 아름다울 것이 없어 보이지만 정중동의 미가 어우러진 정갈한 춤사위는 곱기만 하다. 70년 동안 가슴에 담아온 한과 슬픔을 춤을 통해 승화하는 7명의 노인들, 특별한 기교가 없어도 그 모습 그대로 살풀이가 된다.
“춤 출 때는 18살 소녀시절로 돌아간 듯 해. 그런데 몸이 맘 같지 않아”
춤을 시작한지 불과 2달밖에 되지 않아 실력은 거의 비슷하지만 배움의 속도가 조금 빠른 이영화(68·서천읍)씨는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에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젊었을 때 나도 기억력 좋다는 소리 들었는데 지금은 한 동작 익히는데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나이든 것이 한이 될 뿐이며 배웠던 동작을 잊지 않으려 머리 속에 계속 주입한다는 유근병(68·판교)씨, 버스가 자주 없어 한 번 나오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춤을 배우러 나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는 김영갑(71·기산)씨 등 노인들은 춤을 배우며 젊음을 되찾는다.
강습에 나오는 대부분의 노인들은 자식들 출가시키고 소일거리로 농사를 지으며 과거보다 여가 시간은 늘어났지만 농촌지역이라 여가 선용 활용이 어려웠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젊은 시절 춤을 배우고 싶었는데 배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엄한 시어머니 밑에서 외출도 못했다는 권봉희(64·판교)씨를 비롯해 강습회 모인 노인들은 늙은이도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배움의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에 기쁨을 느낀다.
노인들이 고전무용을 배우게 된 것은 지난 5월 말 서천노인대학에서 풍물을 강의하는 서림국악원 김호자씨의 제안에 의해서다.
“젊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노인들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었고 우리 것을 서천에 더 보급하고 싶어 시작했다”는 김씨는 노인들의 큰 호응에 보람이 크다.
게다가 고전무용은 현대무용처럼 과격한 동작은 필요하지 않고 한 동작을 오래 버티는 것이라 건강 증진에 도움이 돼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고 있다.
아마추어로 구성된 무용단은 고전무용의 기본동작을 익히고 현재 살풀이 마무리 단계로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좀더 완숙한 춤을 추게되면 공연도 하고 싶다.
강의는 매주 월·수 2회 진행되는데 춤에 대한 열의가 커 강의가 끝난 후에도 노인들의 연습은 계속된다.
“살풀이를 추고 있으면 과거 삶도 회상돼 인생무상도 느껴지고 새로운 삶을 만들어 가는 것 같아 희망차기도 하다”는 노인들은 살풀이 매력에 흠뻑 빠졌다.
“앞으로 살풀이는 물론이고 부채춤 같은 고전무용을 더 배울 계획이다”는 이정순(71·서천읍)씨와 서동례(68·마서)씨는 아직도 나이라는 장애로 두려움이 앞선다며 자신감을 더욱 키울 것을 다짐한다.
서천의 새로운 노인문화를 만들어 가는 노인들은 춤을 통해 삶의 활력을 되찾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는데 기쁨이 크다며 이구동성이다.
더운 여름철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도록 춤 연습에 열심인 할머니들을 보며 머리에 쪽지고 흰 치마·저고리 입고 무대에서는 날을 그려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