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의 편견을 벗자”
“장애의 편견을 벗자”
  • 최현옥
  • 승인 2003.08.15 00:00
  • 호수 18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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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잡이도 오른손잡이도 없는 세상 만들어봐요
그의 오른손은 ‘짝배기’(왼손의 비어) 였다. 한동안 저주받은 듯 칠흑 같은 어둠의 주머니 속에서 숨죽여 지냈다.
그러나 이제 오른손은 삽, 쇠스랑 등 농기구를 잡는 건장한 손이 됐고 장구의 채를 쥐고 북을 쳐 삶의 흥겨움을 맛보고 있다. 그의 오른손은 왼손잡이가 편견에서 벗어나 듯 장애의 편견을 벗고 자유로워졌다. 장애인들과 자연의 아픔을 달래주는 어머니의 따뜻한 손이 된 것이다.
“이 놈의 손 때문에 더 열심히 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손바닥의 형상만이 간신히 남아있는 손을 보이는 나승권(62·시초면 후암리)씨는 장애를 통해 성실한 삶과 땀의 대가를 배워가고 있다. 처음엔 장애 때문에 일을 못할 것이라는 주위사람들의 염려에 노력했으나 시간이 지나며 세상은 노력한 자의 것이라는 것을 조금씩 깨달았다.
나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농촌을 지키기 위해 고향에서 벼농사와 한우 사육을 시작했다. 그의 나이 40이 되던 해 소 여물을 만들기 위해 ‘여물 커터기’를 돌리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손가락이 물려 들어가 변을 당한 것이다.
“사고 당시 선혈이 낭자해 여물과 섞여있던 손가락을 회상하면 아직도 자다가 벌떡 일어나게 된다”는 나씨는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눈앞이 캄캄했다. 무엇보다 가장 힘들었던 건 장애인이라는 딱지를 달고 자신 스스로 장애를 인정하는 것. 대인관계에 자신이 없던 그는 항상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녔다. 시간이 흐르며 나씨는 자신 그대로를 인정하기 시작했고 자연농법으로 재개를 꿈꿨다.
자연농법이란 자연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으로 농약을 치지 않고 수확 후 줄기, 뿌리 등을 방치해 토지에 돌려보내는 방식이다. 그래서 그의 비닐하우스는 버려진 땅 같다. 사방에 자라난 풀과 가지, 고추, 오이 등 여러 가지 채소가 어우러져 잡다하다는 느낌이다.
“고부라지고 삐틀어진 못난 채소지만 스스로 이룬 결실이라 어느 채소보다 맛이 좋다”는 나씨는 충북 괴산에서 일주일 정도 연수를 받고 친환경 농법을 기본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특히 자연 그대로를 인정하는 자연농법은 마치 자신의 모습을 대변하는 듯해 더욱 애착이 간다.
자연농법은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대신 토착미생물을 이용해 현미식초, 천혜녹즙 등 다양한 영양분을 제공, 잔손이 많이 간다.
그 결과 그가 생산한 농산물은 상표 없이 노점에서 판매해도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나씨의 삶에 대한 열정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지난해 배우기 시작한 장구는 취미 차원을 넘었으며 정규 수업시간 이외 매일 국악원에 출근할 정도이다.
“마을잔치 때 풍물공연을 하며 봉사를 통해 주민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는 것이 좋았다”는 나씨는 장애인들의 활동 영역을 넓히는 것이 목표다. 아직 풍물에 대한 지식은 짧지만 차후 다양한 풍물 가락을 배워 다른 장애인들에게 전수하고 싶다.
“장애인들에게 자활의지를 심어주고 제도적인 복지가 더욱 늘었으면 좋겠다”는 나씨는 지역의 장애인들을 찾아다니며 경제적인 도움은 주지 못하지만 그들의 힘이 되고 있다.
“장애는 삶에 불편함 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는 나씨는 장애인들이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고 세상을 향해 발돋움하길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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