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 연재/그림책의 세계 ① <프레드릭>, 노동과 예술
■ 기획 연재/그림책의 세계 ① <프레드릭>, 노동과 예술
  • 김환영 시민기자
  • 승인 2017.08.16 16:55
  • 호수 87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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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번호부터 김환영 작가의 ‘그림책의 세계’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보령시 미산면으로 귀촌해 7년째 살고있는 김환영 작가는 서천·보령에서 화가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으며 2010년에는 동시집 <깜장꽃>을 내기도 했습니다. 2014년부터 2년 동안 <뉴스서천> 칼럼위원으로 사회 현안 문제들을 바라보는 글들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편집자>

‘그림책의 세계’로 오세요

아이들은 그림을 좋아합니다. 그 아이들이 자라 학년이 올라가면, 그렇게 좋아했던 그림을 뒤로 한 채 글자의 세계로 넘어갑니다. 그래서 어른이 되면, 그림책은 어린아이들이나 보는 유치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건 아주 큰 오해입니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합니다. 사물에 대한 공감 능력도 웬만한 어른보다 깊고 감동적이며 훨씬 더 너그럽습니다. 대자연이 그렇듯 어린이는 시이며, 시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림책 또한 이런 어린이들을 닮아서 매우 시적입니다. 그래서 좋은 그림책은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깊은 울림과 깨우침을 줍니다. 어린이와 어른에게 평온한 위로와 평화를 안겨줍니다.
현대그림책은 어린이와 함께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예술이 그렇듯 인간 삶의 모든 부분을 그림책은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름다운 문장과 다채로운 그림들로 매우 친절하게 말을 하고 보여줍니다. 그러니 그림책은, 상자 속의 미술관이자 ‘연극무대’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오래 전에 만난 그림책은 다시 보고, 새로 나온 책은 보다 관심 있게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러니 오래된 책도 새 책들도 이 지면을 통해 새롭게 만날 수가 있겠습니다. 그림책을 통하면 아이와 어른이 나눌 수 있는 이야기와 나눌 수 있는 마음이 훨씬 더 넓어질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온전히 저의 부족한 글 때문이니 자, 지금부터 아름다운 그림책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김환영>

노동자와 예술가는 대립적인가?
여름내내 먹을 것만 모으던 들쥐들
겨울이 오자 빛을 모으던 프레드릭 앞으로…

▲ 레오 리오니의 <프레드릭>
전시 문제로 얼마 전 부산에 다녀왔습니다. 갤러리가 있는 곳은 20년 동안 어린이청소년 전문서점이면서 마을도서관 역할까지 하는 멋진 곳이었습니다. 5층짜리 건물이었는데, 전시 공간도 둘러보고 이곳저곳 안내를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2층 계단창에 내놓은 반가운 책 한 권을 만났어요.

“우와, 잠잠이! 와, 이 책이 여기 있네요?”
제가 그렇게 반가워한 책은 바로 <잠잠이>란 그림책입니다. 첫 번째 그림책으로 <프레드릭>을 소개하게 된 것도 순전히 이 때문입니다.
이 그림책은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 경기도의 한 책방에서 발견한 정사각형에 가까운 그림책이었습니다. 1989년인가 그런데, 그즈음 제가 책을 사는 조건은 명확했습니다. 내가 좋아하고, 아이들에게도 읽어주고 싶은 책.

저는 이 얄따란 책을 들고 가 얼른 계산을 하고 무슨 횡재를 한 것처럼 덩실덩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한 장 한 장 그림책을 넘기며 아이들에게 읽어줬지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겨울이 코앞인 들쥐 5마리가 농장 옆 돌담 밑에서 살고 있어요. 곧 닥칠 겨울을 준비해야 하니까 모두가 바쁘게 일을 하고 있어요. 오직 한 녀석만 빼고요. 들쥐들이 오며가며 묻지요.
“프레드릭, 넌 왜 일을 안 하니?”
프레드릭은 말합니다.
“응, 지금 나는 햇볕을 모으고 있는 중이야.”
들쥐들은 빈 농가를 들락거리며 나락을 나르고 옥수수와 열매들을 부지런히 나르고 있어요. 그러다가 다시 또 묻지요.
“프레드릭, 넌 왜 일을 안 하니?”
“응, 지금 나는 빛깔을 모으고 있는 중이야.”
겨울이 닥치고 첫눈이 오자, 들쥐들은 모두 돌담 밑으로 들어갑니다. 프레드릭은 뒤를 돌아보며 가장 늦게 돌담 밑으로 들어가지요. 이제 들쥐들은 돌담 밑에서 긴긴 겨울을 나야 합니다.
들쥐들은 가으내 거둬들인 씨앗과 열매들을 먹으며 한동안 즐겁습니다. 하지만 겨울은 길지요. 잔치가 끝난 들쥐들은 먹을 것도 떨어지고 지루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들쥐 한 마리가 금방 생각이 났다는 듯이 프레드릭에게 묻습니다.
“네가 모은다던 것들은 어떻게 됐어, 프레드릭?”
마침내 프레드릭은 게슴츠레했던 눈을 반짝 뜨고는, 커다란 돌멩이 위에 올라가 들쥐들에게 눈을 감아 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이야기를 시작하지요.
프레드릭은 들쥐들이 까맣게 잊고 있던 기억을 꺼내어 찬란한 금빛 햇살을 비추어주고, 파란 덩굴꽃과 노란 밀짚 속의 붉은 양귀비꽃, 또 초록빛 딸기 덤불 얘기를 들려줍니다. 들쥐들은 각자의 마음속에 그려져 있던 빛깔들을 또렷이 보게 되고, 프레드릭은 목소리를 가다듬어 바깥세상의 풍경을 나지막이 읊기 시작하지요. 그리고는 프레드릭이 낭송을 마치자 들쥐들은 감탄을 하며 마침내 이렇게 말하지요.
“프레드릭, 너는 시인이구나!”
그러자 프레드릭은 수줍게 말합니다.
“응, 나도 알아.”


▲ 다른 들쥐들이 모두 먹일ㄹ 모으는 동안 프레드릭은 빛을 모으고 있다.
이 그림책은, ‘서로 다름’에 대한 깊은 사색과 성찰 속에서 우러나온 이야기입니다. 예술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레오 리오니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겠고요. 노동과 예술, 노동자와 예술가라는 사뭇 대립적으로 보이는 서로 다른 존재의 상호인정과 지지는, 이솝우화 ‘개미와 베짱이’에 대한 통렬한 전복이기도 합니다. 부지런한 개미는 겨울이 와도 걱정이 없지만 여름날을 나무 그늘에서 악기나 켜던 베짱이는 겨울나기가 어렵게 된다는 ‘개미와 베짱이’라는 우화는, 그러나 새마을운동과 유신을 앞세운 군사독재시절부터 내려오던 ‘선택된 이야기’지요. 경쟁과 비인간을 부추기는 '토끼와 거북이'와 더불어 모두가 본받아야 할 교훈인 것처럼 오랫동안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모두를 세뇌시키고 있었습니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으로 식의주를 생산함으로써 세상을 건설하고, 예술가들은 예술의 역할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자주 질문하게 됩니다. 모름지기 예술가는,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으려는 마지막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나쁜 사회에서는 핍박을 받고 능욕을 당하기도 하지요. 이른바 ‘블랙리스트’라는 걸 만들어 사회로부터 예술가들을 격리시키고 배제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레오 리오니는 정체성이 분명한 사색적인 주인공을 내세워 우리는 ‘밥만 먹고는 살지 못한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어요. 나와 다른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세상이 더욱 밝고 풍요로워진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김환영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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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영 2017-11-19 21:08:58
저도 햇볕과 빛깔을 모으고 있어요.
김환영선생님, 고맙습니다.
좋은 글 읽어 행복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