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는 삶 살고 싶다
나누는 삶 살고 싶다
  • 최현옥
  • 승인 2003.08.29 00:00
  • 호수 1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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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는데요”
기자의 방문에 손사래를 치는 장현기(50)씨, 그는 오랜만에 고향 나들이에 나섰다. 그동안 가슴에 품어왔던 한을 풀어내기 위해서다. 언젠가는 배움과 가난에 대한 한을 풀겠다는 다짐. 나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을 길러주고 싶다는 마음. 지역의 청소년들이 좀더 좋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터를 만들어 줄 그 날이 온 것이다.
장현기씨는 지난 25일 서천사랑장학회에 장학금 1억원을 내놓았다. 사장이라는 직책이 어울리지 않게 항상 검소한 복장과 자신의 잘못을 고개 숙여 인정하는 그는 “행사장에서 인사말을 시켰는데 너무 어색했다”며 멋쩍은 미소를 짓는다.
환원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는 장씨, 그는 오늘처럼 기쁜 날이 없단다.
신해철의 70년대에 바침이라는 노래, ‘그때는 그랬지’라는 가사처럼 시골 농군의 자식으로 태어난 장씨의 삶은 불우했다. 시초면 서남리 출신으로 7남매 중 맏아들로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경제적 어려움은 그의 학업을 더 이상 잇지 못하게 했다.
‘다음세대에 가난만은 물러주지 말아야 겠다’는 야망 찬 소년의 눈빛은 서울로 등을 떠밀었고 16살인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중국집 배달원, 건설현장의 일당잡부, 공장잡부 뿐이었다. 그리고 군 제대 후 25살 친척집에서 부동산 일을 도왔다.
건설업에 대해 흥미를 붙인 장씨는 26살부터 개인 사업을 시작했고 운이 좋아 불과 2∼3년만에 1억에 가까운 돈을 벌게 됐다.
“돈을 벌면서 세상은 모두 내 것 같았고 교만한 마음까지 들었다”는 장씨는 인천에서 대단위 공사 연립주택 건축을 시작했으나 불과 6개월만에 무일푼 신세가 됐다.
시련의 바람은 멈춰주지 않았다. 걷잡을 수 없는 바람은 그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었고 낙향을 결심, 그는 지역에서 남의 일을 도우며 재개를 꿈꿨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살자는 마음만은 잃지 않았다”는 장씨. 행운의 여신은 그를 끝내 배반하지 않았다. 철저한 반성을 통해 어떻게 살아가야 올바른 삶인지 깨달은 그에게 희망의 촛불을 밝혀주었고 현재 20여명의 직원을 거느리는 천산종합건설주식회사 사장이 됐다.
장씨는 지역에서 어려움을 딛고 자수성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전근대적인 건물을 처음으로 건축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연립주택인 청도주택을 비롯해 10여 개가 넘는 상가, 천산아파트까지 건축문화에 새로운 바람이었다.
“과거에는 경험 부족으로 본의 아니게 건물을 잘 못 지은 것도 있다”는 장씨는 앞으로 자신의 이윤보다 주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건물을 짓고 싶다.
현장에서 꼼꼼하기로 소문난 장씨는 노력하는 자에게 길이 있다는 신념으로 회사를 운영해 오고 있으며 그 결과 사업에 있어 좋은 성과를 얻고 있다.
“회사를 운영하며 직원들에게 급료를 지급할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는 장씨는 돈은 버는 것보다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며 앞으로 세월이 가르쳐준 방식에 따라 살아갈 것을 밝혔다.
“이번 일을 통해서 남을 돕는 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경험했고 사업에서 성공한 것보다 더 기뻤다”는 장씨.
출향 인사들이 지역에 대한 애착심을 갖고 지역 발전을 위해 노력하며 자신의 기부가 시너지 효과를 가져오길 기대했다.
“자신이 한 일은 너무나 미비한 부분이고 시작보다 마무리가 중요하다”며 끝까지 취재를 거부하는 장씨는 생색내기가 아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기부문화를 앞당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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