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 현장에서 뛴다
정보화 현장에서 뛴다
  • 최현옥
  • 승인 2003.08.29 00:00
  • 호수 1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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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너평 남짓한 컴퓨터 A/S실, 그는 홀로 남아 시름하는 기계들을 돌본다.
원인을 찾고 그곳을 치료하다 보면 시간은 어느덧 새벽을 향하고 잘못 입력된 키 하나로 에러 메시지가 뜨던 컴퓨터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돌아갈 때 밤 작업은 보람으로 다가온다.
“아픈 아기를 돌보는 어머니와 같은 심정으로 컴퓨터를 유지·보수하고 있습니다”
정보화 시대를 현장에서 관리하는 PC 정비사 오병석(36·종천면 석촌리)씨는 개인컴퓨터를 비롯해 군, 우체국, 전화국 등 지역내 컴퓨터를 유지·보수한다. 하루에 평균 7∼8대의 컴퓨터를 관리하고 밤늦게 까지 작업하는 그를 보면 PC 정비사라는 느낌보다 진정 기계와 의사소통을 통해 아픈 곳을 치료하는 의사 같다.
오씨는 14년의 경력을 자랑하며 눈감고도 컴퓨터를 조립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항상 컴퓨터를 처음 접했을 때의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 그의 겸손함과 꼼꼼한 성격은 지역 주민들에게 인정을 받으며 컴퓨터 유지·보수의 대명사로 통하고있다.
오씨가 컴퓨터와 인연을 맺은 것은 대학에 진학하면서다. 그 당시 컴퓨터는 생소한 것이었고 전자계산기 수준으로 활용도가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컴퓨터의 프로그램을 접하고 깊게 공부하며 매력을 느꼈다”는 오씨는 컴퓨터가 앞으로 활용방안이 많을 것을 직감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학원강사로 활동하며 그는 전산과에 편입, 좀더 전문적인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2년 후 컴퓨터 학원과 매장을 친구와 동업으로 시작했고 고객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판매, 컴퓨터를 조립하고 수리하며 전문적인 지식을 자연스럽게 쌓아갔다.
그는 현재 자신만의 노하우로 윈도우 포맷을 비롯해 과거 3∼4시간 걸리던 작업을 짧게는 30분에서 길게는 1시간에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처음 컴퓨터를 공부하며 풀리지 않는 단 하나의 고리 때문에 날을 세는 것을 밥먹듯 했다”는 오씨는 의외로 해결책이 쉽게 찾아지고 스스로 터득해 가는 즐거움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가 현재 지역에서 인정받는 PC 정비사가 된 것은 그의 희생정신 때문이다. 보수를 떠나 자신의 손길이 필요한 곳은 서면에서 마산면까지 지역 곳곳 발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으며 타 지역 서산, 보령까지 거리를 불문한다.
출장이 많은 그에게 겨울은 일하기 힘든 계절이다. 폭설이 내리거나 빙판길이 형성되면 안전운전에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 과거 보령 원산도에 컴퓨터 수리점이 없어 출장을 갔다 배가 없어 연락선을 타고 나온 경험도 있다는 오씨는 몸은 힘들어도 주민의 애로사항을 해결하며 보람이 크다.
그는 컴퓨터 유지·보수에 있어 항상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 최소의 비용으로 최소의 시간 안에 컴퓨터를 수리하려 노력한다. 간단한 수리는 무상으로 해 주는 경우가 많으며 시골 출장의 경우 어려운 가정형편에 요금청구에 곤란을 겪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이익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그의 모습에 주위사람들은 늦은 밤에도 부담 없이 전화문의를 한다.
그러나 가끔 재수리 신고가 들어오거나 고객이 컴퓨터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고장의 원인을 설명해도 알아듣지 못할 때 난감함을 느낀다.
오씨는 일상에서 주민들이 조금만 조심하면 스스로 컴퓨터를 유지·보수 할 수 있다며 컴퓨터 청결 유지와 여름철에 플러그를 반드시 뽑기를 권했다. 서천지역은 낙뢰피해가 높은 곳으로 여름철 낙뢰 수리 문의건만 하루 10여건이 넘는다며 생활화를 강조했다.
오씨는 컴퓨터 역사의 산 증인으로 과거와 비교해 보급이 늘었지만 활용도는 10% 밖에 되지 않아 안타까움이 많다며 학생들의 컴퓨터 사용에 대한 철저한 관리를 부탁했다.
수리를 하다 감전을 당해 기절까지 했을 정도로 컴퓨터와 동고동락을 해온 오씨. 주민이 불편한 곳은 해결사로 슈퍼맨처럼 날아가 도움을 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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