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쁜 놈입니다”
“나는 나쁜 놈입니다”
  • 김정기
  • 승인 2003.08.29 00:00
  • 호수 1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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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부인과 이충일 원장
시골 의사라고 얕잡아 볼 때도 있습니다.
사실 어떤 환자들은 제 진찰을 믿지 못하고
대학병원을 거치고 서울 큰 병원까지 찾아가지요.
결국 매번 찾아와서 미안하다고 말을 하지요.
이래봐도 서울 의사들도 저보고 최고라고 하는데…
제가 너무 잘난 척 하는 건가요?”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기에 의료인들을 보면 딱딱하고 원칙만을 고수할 거란 생각이 들 법도 하지만 그에게는 사람 냄새가 지천이다.
기자와의 첫 만남에서 “난 나쁜 놈이요”하며 과감히 뱉는 그의 메시지는 참으로 간결하고 상쾌하다.
의사가 왜 됐냐고 물으니 “어릴 적 엄마가 자주 아팠다”는 단순한 답변뿐이다.
어머니를 위해 의사가 되어 보겠다고 다짐했던 소년, 그는 지금 365일 연중무휴로 한번의 진료거부 없이 24시간 원장이 직접 진료에 나서는 산부인과의 원장이 되었다.
서천읍 이산부인과 의학박사 이충일 원장, 이 것이 그가 오늘을 살고 있는 직함이다.
인터뷰라는 생소함 때문인지 말을 아끼던 그에게 산부인과에 대한 것을 물으니 출산에서 자궁에 대한 설명에 이르기까지 전문가다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여성의 출산만큼 성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임신하지 않은 성인 여성의 자궁은 무게 60g에, 길이가 7.6㎝에 불과한데 임신 말기에 이르면 9백g으로 늘어납니다… 자궁은 자궁 본체와 자궁경부로 돼 있는데 자궁경부는 윤이 나는 도넛 모양과 흡사합니다… 여성들조차 궁금해하는 클리토리스의 역할은 8천개 가량의 신경 섬유로 뭉친 신경덩어리인데 그렇게 예민한 것이 오줌을 누거나 사정을 하는데 필요하지 않으니 결코 실용적이지 못한 기관이라 할 수 있죠. 순전히 여성의 쾌락을 돕는 일 외에는 달리 목적이 없습니다”
의학적 지식과 환자 진료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나는 그에게서 받은 첫 인상은 ‘의술뿐만이 아닌 진정한 인술과 인정을 아는 사람’이다.
어려운 이웃들의 무료 출장진료로 의사가 아닌 의사선생님으로 활동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병원을 찾는 환자에 대해서도 메스를 앞세운 외과적 수술로 병원의 이익을 창출하기보다는 숱한 환자와 함께 밤을 지새우며 환자를 위한 정성어린 ‘양심진료’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3월경 이 원장은 병원을 찾은 신모씨(33)에게서 자궁내에 작은 물혹을 발견, 수술이 불필요하다는 진단을 내렸으나 이 환자는 인근 대학병원에서 진찰을 통해 수술일정까지 잡았다. 이 소식을 들은 이 원장은 돌팔이라는 비난까지 감수하며 환자를 재차 설득, 서울 강남의 큰 병원에서 진찰을 다시 받아 보라고 권유해 결국 이 환자는 수술을 하지 않고 완치됐다.
또 얼마 전 자궁 외 임신을 한 김모씨(32)도 같은 사례로 이 환자 역시 큰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아래 대전지역 모 병원에서 수술일정을 잡았다가 서울의 종합병원측의 ‘수술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는 재진을 받고 이 원장을 다시 찾은 일도 있었다. 이 환자는 수술을 원했으나 이 원장은 결국 메스를 사용치 않고 이 환자를 완쾌시켰다.
“사실 시골 의사라고 환자들이 불신을 할 때면 상당히 자존심이 상합니다. 의사입장에선 수술을 하게되면 수입을 올리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하지 않아도 되는 수술을 하는 것은 환자에게 있어서 큰 불이익이 됩니다. 의사는 사람을 고치는 사람이지 돈을 버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원장의 이같은‘양심진료’는 지역보다는 외부에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 때문인지 요즘 이산부인과는 인근 부여군과 군산은 물론 서울과 멀리 일본에서까지 환자들의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양심진료 역시 고도의 마케팅이 아니냐는 기자의 농담 같은 질문에 이 원장은 멋쩍은 웃음 속에 “그래서 나는 나쁜 놈입니다”라며 너스레를 떤다.
또 이 원장은 강사로도 많은 활동을 펼치고 있다.
서천지역 여자 고등학생들을 상대로 한 성교육과 함께 현대백화점, 한미제약 등 수도권 지역의 기업들의 교양강사로 나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강의 요청엔 병원일 챙기기에도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 출강을 하지 못하고 있다.
화제를 바꿔 병원 얘기를 묻자 고가의 의료장비 자랑부터 이어진다.
“대전·충남지역에 2대 밖에 없는 검진기들이 있는데 사실 비싸긴 해도 이 기계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올 들어서면 초기 부인암 환자 10명을 발견해 이 주민들의 생명을 구하게 된 셈인데 너무 자랑만 늘어놓으니 쑥쓰럽네요…”
이산부인과는 카페 분위기를 풍기는 인테리어 시설의 편안함과 대학병원 수준의 의료기기를 통한 전문적인 진료를 제공, 여성 환자의 인격과 품위를 존중하는 진료서비스가 돋보이고 있다.
여기에 한결같은 의료서비스를 바탕으로 보다 신뢰성 있는 진료를 제공한다. 기존의 의사중심의 병원문화를 없애고, 철저한 산모중심, 가족중심의 정감있는 병원문화를 기본으로 삼는다는게 이산부인과의 운영철학이다.
이 원장의 병원이 최근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원장의 첫마디처럼 어쩌면 그는 정말 나쁜 사람인지도 모른다. 돈 보다 사람을 위하는 진정한 의술을 펼치고 있다는 점을 빼고 나면, 자기 환자에 대한 책임감과 자신감을 빼고 나면 그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일뿐이다. 일상에 찌든 우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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