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 연재/김환영의 그림책 세계 (3) ‘주먹이’ 또는 ‘엄지동자’의 모험담
■ 기획 연재/김환영의 그림책 세계 (3) ‘주먹이’ 또는 ‘엄지동자’의 모험담
  • 김환영 시민기자
  • 승인 2017.09.13 16:29
  • 호수 87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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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어려움 헤쳐나가는 ‘주먹이’와 엄지동자성장기 어린이에게 큰 영향 미치는 옛이야기

▲ 그림책 ‘주먹이’ 표지
어린 시절 나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머어억-지”하는 옛이야기가 아니라 집안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어머니는 밖에서는 입을 열 수 없었던 집안의 속내들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에게 상세하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나는 어머니가 숨죽여 말씀하던 집안 이야기들을 들으며 상상에 빠지다가 어머니 품에서 잠들고는 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우리 근현대 사진들을 보면 마치 내가 살아 본 것처럼, 그때 내가 있었던 것처럼 아득해지고는 합니다. 어릴 적 경험들이 평생을 걸쳐 이토록 강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나는 옛이야기를 무척 좋아합니다. 어릴 때 듣지 못한 옛이야기를 보상이나 받으려는 듯 첫차를 타고 서울까지 올라가 공부를 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옛이야기를 좋아하는 까닭은 그 속에 세계 만물에 관한 웅숭깊은 통찰이 숨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의 놀라움과 행복한 결말이 주는 위안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옛이야기에서 선은 반드시 악을 물리치며 억울한 사람은 환하게 누명을 벗습니다. 선한 사람은 복을 받고 욕심 사나운 사람은 벌을 받지요. 이러한 결말은 우리에게 많은 위안을 줍니다. 또한 집을 나갔던 사람은 반드시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데, 모험담의 하나인 ‘작은 사람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우리 옛이야기 그림책 《주먹이》(서정오 글. 이영경 그림/삼성출판사 2005)를 펼쳐봅니다. 표지에 그려놓은 앙증맞은 주인공 캐릭터가 눈길을 끕니다. 빨강색 두건을 머리에 두르고 깜장색 학생 모자를 그 위에 올려 쓰고 있습니다. 노랑 웃옷에 새파란 멜빵바지에 흰 고무신을 신었습니다. 더구나 고무신이 벗겨지지 못하게 깜장 끈까지 신발에 단단히 묶어놓았군요. 주인공 옆에 그려놓은 강아지풀이나 쇠뜨기를 보자니 주인공은 제목 그대로 딱 주먹만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깜찍한 주인공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 걸까요?

첫 장을 펼치니, 나이 마흔이 넘도록 아이가 없던 부부가 뒷산 신령님께 며칠을 빌어 알에서 태어난 사내아이가 바로 주인공인 ‘주먹이’입니다. 다섯 살을 먹어도, 일곱 살을 먹어도 몸집이 더는 커지지 않고 딱 주먹만 하답니다. 그래서 주먹이는 아버지 손바닥에서도 놀고 어머니 어깨 위에서도 놀고 반짇고리 안에서도 놀다가, 하루는 아버지가 호주머니 안에 주먹이를 넣고 강에 낚시를 가지요. 그리고는 심심했던 주먹이는 자기를 땅에 내려달라 해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다 그만 아버지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주먹이의 모험이 시작되는 거겠지요.

맨 처음 주먹이는 들판에서 풀을 뜯던 황소를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주먹이는 풀을 뜯던 황소 입속으로 쓸려 들어가 버리고, 축축하고 캄캄한 황소 뱃속에서 환한 구멍 하나를 발견한 주먹이는 어렵게 그쪽으로 기어가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마침 똥이 마려웠던 황소의 똥과 함께 밖으로 쏟아져 나온 것입니다. 다음 장에는 주먹이가 쓴 모자에도 쇠똥이 묻었고 뛰고 있는 주먹이를 쇠파리가 웽웽 따라다니는군요.

밖으로 나온 주먹이는 아버지를 찾으며 뛰어다니다가 하필 하늘을 날고 있던 솔개에게 낚아채어 이번에는 하늘 높이 올라가게 됩니다. 솔개는 벼랑 위에 있던 독수리와 싸움이 붙고, 이 둘은 먹잇감(주먹이)을 서로 빼앗으려다 주먹이를 떨어뜨리고 맙니다. 주먹이는 강물로 풍덩 빠지고, 강물에 빠진 주먹이는 다시 커다란 잉어한테 먹히고 맙니다. 잉어 배 속으로 들어간 주먹이는 갑갑해 “하릴없이” 또 아버지를 부릅니다. “아버지, 아버지!”

그러자 낚시질에 여념이 없던 아버지는 주먹이 목소리를 듣게 되고, 주먹이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잉어를 낚아 뱃속에 들어있는 아들을 꺼내주지요. 그리고는 아버지는 말합니다. “주먹아, 이제 다시는 혼자서 멀리 가지 말아라.” 주먹이는 대답합니다. “네, 아버지.” 마지막 장의 마지막 그림인 오른 켠에는 주먹이가 학교모자만 쓴 채(빨간 두건은 벗고) 서 있고, 주먹이보다 큰 사진틀 안에는 가족사진이 담겨 있습니다. 분홍빛 꽃무늬가 박혀있는 사진틀 안에는 아버지가 서 있고 어머니는 앉아 있으며, 어머니 무릎에서 어머니에게 자신의 두 손을 맡겨 놓은 채 주먹이는 서 있습니다.

저는 서정오가 재화한《주먹이》 그림책이 참 싱겁습니다. 심지어 이러한 서사에 의심이 듭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여러 사람이 쓰고 그린 주먹이 그림책이 수십 종에 달합니다. 그만큼 주먹이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티프입니다. 하지만 다시 쓴 주먹이들은 존재감이 약해 목소리가 작거나 스스로 세상을 헤쳐 나갈 기지가 전무해 보입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무슨 일만 닥치면 번번이 아버지를 찾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아버지, 아버지!”를 외칠 뿐입니다. 이 이야기의 원전인 《한국구전설화》(임석재 전집/평민사1993) <평안북도 편>에 나와 있는 각 편과 다르게 모험담인데 모험이 없으며 아버지의 본성조차 느낄 수가 없습니다. 아이가 행방불명되었는지도 모른 채 낚시질에 빠져있던 아버지는 그럼에도 “주먹아, 이제 다시는 혼자서 멀리 가지 말아라.”고 말하며, 이에 주먹이는  “네, 아버지.”하며 순종할 뿐입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와 있는 주먹이도 예외는 아니지요. 성장담이자 모험담인 옛이야기 속 주먹이는 본디의 모습을 잃고 안타깝게도 매사 부모에게 의존하는 ‘주먹이 수난사’로 전락하고 있는 것입니다.

▲ 그림책 ‘엄지동자의 모험’ 표지
같은 모티프의 그림형제본 ‘엄지동자’는 이와 다릅니다. 엄지동자는 모든 일을 오직 자신의 힘과 지혜로 슬기롭게 헤쳐 나갑니다. 장사꾼에게 팔려가서도 꾀를 내어 도망치며, 도둑들에게는 기지를 발휘해 골탕을 먹입니다. 소의 위 속에 들어갔다가 늑대에게 되먹혀도 늑대를 꼬드겨 자기 집까지 이끈 다음에야 비로소 처음으로 크게 외치지요. “아버지, 저 여기 있어요! 늑대의 뱃속에 있다고요!” 그리고 며칠 만에 살아서 돌아와 준 엄지동자에게 아버지는 말합니다. “다시는 너를 안 팔 거다. 세상의 금은보화를 다 준다고 해도 말이야.” 신나고 놀라웠던 모험을 마치고 돌아온 엄지동자는 이에 화답합니다. “하지만 이제 아버지 어머니 곁에 머물 거예요.”

그렇다면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요? 강원도 영동지방에 <탁장사 설화>가 전승되는 곳이 있습니다. 저는 한 논문에서 탁장사가 가까운 역사 속에서 어떻게 변질되는지를 읽고 크게 놀란 적이 있습니다. 산 하나를 너끈히 들만큼 힘세고 의로운 탁장사가 우리 현대사의 굴곡 속에서 힘을 잃어 비굴해지기도 하고 다시 본디의 모습으로 되살아나기도 했습니다. 고정불변할 것 같은 옛이야기는 그러나 우리와 함께 살고 있으며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시기마다 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던 옛이야기는 이제 책과 문자로 딱딱하게 몸을 바꿨지만, 이러한 전승방식의 변화와는 또 다르게 ‘관점’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는 셈입니다.  

제가 석연치 않게 느꼈던 것이 바로 이런 점이었어요. 일제 강점기인 1934년에 채록한 ‘주먹이’와 200년 전 그림형제가 채록한 ‘엄지동자’는 동일한 모티프지만 주인공의 연령이 다르게 느껴지기는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근래에 다시 쓴 한국의‘주먹이들’과 그림형제의 원전을 유지하고 있는 ‘엄지동자’는 그 안에 담겨 있는 정신사의 측면에서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한쪽은 허리 잘린 수난사이고 다른 한쪽은 여전히 모험담인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묻게 됩니다. ‘한국의 주먹이들은 스스로 판단해 난관들을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이즈음 주먹이를 읽고 자란 아이들이 그림형제의 엄지동자를 읽고 자란 아이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라고요. 그리고도 질문은 이어집니다. ‘주먹이를 읽고 자란 아이들이 혹시 밖은 위험하니까 부모의 품안에서만 살려고 드는 건 아닐까? 부모들 역시 아이들을 집과 학교에 묶어 두려고만 하는 건 아닐까? 혹여 아이들에게 너희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끔찍한 말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옛이야기를 재화하는 일은 생각보다 품을 많이 팔아야 가능한 영역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릴 때 듣고 자란 집안 이야기가 내 정서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듯이 옛이야기 그림책 또한 성장하는 어린이에게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동서고금의 옛이야기에서 공통으로 말하고 있는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집을 떠나지 않는 아이는 결코 성장하지 못하며, 자식을 집안에 가두려는 부모는 화를 입는다는 점입니다. 결국 아이와 부모 모두가 불행한 결말에 이른다는 모험담들의 교훈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큰 것이지요.(*)
<김환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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