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책/자식은 아버지의 등을 보고 자란다
■고전산책/자식은 아버지의 등을 보고 자란다
  • 송우영 시민기자
  • 승인 2017.09.21 11:34
  • 호수 8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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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편찬한 것으로 전하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을 보면 소공(昭公) 24년 맹희자(孟僖子)가 죽고 그의 아들 맹의자가 아버지의 지위를 이어받는다. 이때가 기원전 518년으로 공자의 나이 35세 때였다.
아버지의 직을 이어받아 대부의 지위에 오른 맹의자는 공자에게 나름 목에 힘도 줄 겸 자랑도 할 겸 잔치를 열고,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이만하면 효자가 아니겠는가”라며 공자를 초청했다.

당시 풍습으로는 효자로 알려지면 가문의 영광이었기에 명망가를 불러 덕담을 듣으며 자신의 효행을 천하에 알리는 것이 하나의 관례였다.
공자를 만난 맹의자는 ‘효도가 뭡니까?’라며 연회에 모인 사람들이 다 들을 정도로 당당히 물었다. 그리고 공자가 멋진 말로 답변을 해주기를 기대했다.

 “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고 지혜 있는 사람은 미혹되지 않으며 용감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君子道者三 我無能焉 仁者不憂 知者不惑 勇者不懼)”이런 정도의 멋진 말을 기대 했는데 공자의 답은 지극히 사무적이다.

“부모 말씀에 어긋남이 없는 것이지요.”
이걸로 끝이다. 순간 좌중은 찬바람이 훅 돌았다. 그리고 공자는 더 이상 뻘쭘하니 앉아있기도 멋쩍었던지 곧바로 집으로 와버렸다. 여기에는 뒷이야기가 있다. 소공7년 9월에 맹희자는 노나라 소공을 예로 보좌못함을 부끄럽게 여겨 두 아들 맹의자와 남궁경숙에게 공자를 찾아가 예를 배우라 한다. 소공 7년이면 공자 나이 17세 되는 해이다.

맹희자 아들이 공자에게 사제의 연을 맺었다는 기록은 없다. 다시 말해서 맹의자가 공자에게 예를 배우지 않았다는 말이다. 당시 공자는 태묘문례(太廟問禮)라 하여 17세에 지식이 출중하여 19세 때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만이 출입이 가능하다는 태묘를 출입하면서 예에 대해 질문을 할 정도로 학문에 밝았다.
공자는 바로 이때를 지적하고 있었던 거다. 물론 맹의자가 이 말 뜻을 알았다는 기록 또한 없다. 다만 다음 장인 <논어> 위정편에서 맹의자의 아들 맹무백이 공자에게 효를 묻는 것에서 미루어 짐작을 해볼 뿐이다.

맹희자의 손자요 맹의자의 맏아들 맹무백이 공자에게 제 아비가 물었던 것과 똑같은 질문을 한다.
“효도가 뭡니까.(孟武伯問孝)”
공자가 답한다.

“부모는 오직 자녀의 질병만 걱정하도록 해야 한다.(父母唯其疾之憂)”
여기서 질(疾)과 우(憂)는 별도의 설명을 요하는 부분이지만 이 말은 부모가 자녀에 대해서 자녀의 건강 외에 다른 것을 걱정하도록 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춘추좌씨전> 기록에 의하면 맹무백은 성질이 사납고 참을성이 없으며 애공 11년에는 사사로이 제나라 군대와 싸워서 패했고 애공 14년에는 저자거리의 시정잡배들과 다퉜다고 기록한다.

자식이 못나면 부모는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해야 한다. 맹의자에게 무위(無違)를 말하고  맹무백에게 질우(疾憂)를 말한 것은 자녀교육 실패했음을 에둘러 질책한 것이다.
그렇다면 효도가 뭔가. 공자의 7대손 공빈이 말한다. ‘가화만사성’이라고 하고 그 시작을 ‘배종순언(背從純言)’이라 했다. ‘배종’은 자식은 아비의 등을 보고 자란다는 말이요, ‘순언’은 어김없이 아버지 뜻을 따름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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