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환영의 그림책 세상 (5)우리의 책들은 시장 조사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 김환영의 그림책 세상 (5)우리의 책들은 시장 조사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 편집국 기자
  • 승인 2017.10.13 11:52
  • 호수 87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환영의 그림책 세상 (5)우리의 책들은 시장 조사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런던 정글북>(바주 샴/리젬 2010)

우리는 보이는 그대로에는 관심 없어요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제일 중요하죠


▲ ‘런던 정글북’ 표지ⓒ리좀출판사
인도의 ‘타라북스(Tarrabooks)’는 대단히 혁신적인 출판사입니다. 딱히 어린이그림책 만으로 한정하기도 어려운 사원지주방식의 독립출판사인데, 제가 이 출판사를 알게 된 것은 《나무들의 밤(The Night Life of Trees)》이라는 ‘한정판 수제 그림책(handmade picture book)’을 통해서입니다. 이들은 코끼리 똥을 활용해 직접 종이를 제작하고, 기계 방식이 아닌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일일이 책을 찍어 만들며, 다른 나라의 번역본들을 모두 모아 직접 제작, 발송하는 온전한 ‘메이드 인 인도’(Made In India) 출판사입니다. 
《나무들의 밤》은 인도 중부 곤드족의 민담과 그림들과 엮어 만든 그림책인데, 이들은 “나무들이 삶의 중심”이라 믿는 부족으로, “한낮에 나무는 열심히 일하면서 모든 생명체에게 그늘과 안식처와 양식을 제공해 주고 밤이 되어야 “나무에 사는 정령들이 모습을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 그림책에서 처음 ‘바주 샴’이라는 화가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보자마자 근대문명을 비껴선 듯한 이들의 민속적 표현들이 매우 흥미로웠지요.

바주 샴이 쓰고 그린《런던 정글북》(리젬, 2010)은 참 사랑스러운 그림책입니다. 예술가였던 삼촌 덕에 그림을 시작하게 된 바주 샴은 이내 재능을 인정받아 런던의 한 레스토랑 벽화를 그리러 가게 되지요. 인도의 최하층민이었던 그는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게 되고, 자신들의 생활과는 전혀 다른 대도시 문화를 처음 접하게 됩니다. 이 그림책은 바주 샴의 런던 탐방기라고도 할 수 있는데, 제가 이 책에서 주목한 것은 곤드족의 표현방식이었습니다. 바주 샴은 자신의 계층이나 교육 정도와 무관하게 그들의 전통과 민속예술을 자연스레 체득하고 있기 때문인데, 그는 첫 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남겨 두고 떠나야 하는 것을 떠올려 봤어요. 그리고 그것을 모두 그렸지요.”

이런 말은 생활 전체가 그림인 화가의 입에서만 나올 수 있는 말이에요. 그리고 여행을 떠나며 ‘남겨 두고 떠나야 하는 것’들을 모두 그린다는 건 얼마나 순박한지요. 이미지의 표현 또한 천진스럽고 낙천적입니다. 화면 중앙에 눈물을 툭툭 떨어뜨리고 있는 자신의 얼굴을 대문짝만하게 그려놓고, ‘인도어를 말하는 입’과 ‘오두막집과 부모님’, 그리고 일할 때마다 듣던 ‘라디오’와 자신을 지켜준다고 믿는 ‘가시가 있는 돼지’와 자신을 꼭 닮은 ‘아이’, 행운을 상징하는 ‘소’와 숲을 상징하는 ‘나무’, 시간을 알려주는 ‘수탉’과 자신이 쉬던 ‘침대’와 즐겨 먹던 ‘망고’들에 자신의 신경망을 머리칼처럼 구불구불 연결해 그려놓고 있어요.
짐을 꾸려 런던으로 떠나는 날 그는, “가져가는 것보다 남겨 두고 가는 것이 훨씬 많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수도인 델리로 가는 기차를 타는 장면에서 그는 또 이렇게 말해요.
“나에게는 기차가 중요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기차는 작게 그렸지요. 우리 부족인 곤드족은 중요한 것을 더 크게 그려요. 우리는 보이는 그대로에는 관심이 없어요.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제일 중요하죠. 우리는 마음으로 보는 것을 그리려고 해요.”

저는 이 대목에서 소박하고 훌륭한 미술교사 바주 샴을 만나게 됩니다. 곤드족의 그림은 사실적인 표현이나 명암 따위에는 관심이 없어요. 다만 아름다운 선에서 느끼는 힘이라거나 기하학적 도형과 무늬, 생명과 관련된 상징이나 우주만물을 표현하는 데에 집중할 뿐이에요. 그리고 “이제 비행기가 나를 삼켜 버릴 거야. 그리고 한참 후에야 나를 뱉어 놓겠지.”라는 대목에서는 이들이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새삼 눈여겨보게 됩니다. 모든 걸 ‘살아있는’ 존재로 인식하는 이 이는 비행기를 “사람을 삼키는 독수리”로 그려놓습니다. 줄을 서서 서류를 작성하고 여권에 스탬프를 받아야 했던 곤란했던 기억을 살려 “비행기는 서류와 스탬프가 많은 곳”이니 “스탬프 안에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새”를 그려 넣지요. 비행기가 이륙하는 장면에서는 날개 달린 코끼리 배 밑에 구름이 떠 있고 화면의 가장 윗부분에 나무가 두 그루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이처럼 천진스레 말하지요. “왜냐하면 비행기는 세상을 뒤집어 놓았거든요.”

런던에 도착한 바주 샴은 인도와 너무나 다른 그곳 사람들의 첫 느낌을 “친절하고 조용”하다고 씁니다. “마치 큰 소리로 떠들면 큰일 나는 것” 같다고, 그리고 “피부색과 머리 모양이 다양”한 이곳에서 자신은 낯선 사람이 되었다며 “여행은 사람을 쉽게 이방인으로 만들어” 버린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빗방울이 떨어지고 늘 눅눅한 런던의 날씨를 곤드족의 무늬로 그립니다. “점과 선”의 “문신은 우리가 지닐 수 있는 영원한 표시”라니, 이는 만물을 생성시키는 물을 표현하려는 것이겠지요.

▲이륙하는 비행기 ⓒ리좀출판사
바주 샴은 지하철을 보고 “땅속에 구멍을 내서 길을 만들다니!”하며 땅굴을 판 사람은 누구일지, 왜 팠을지 궁금해 합니다. 그리고 “땅 밑에 또 다른 세상이 있을 거”라고 믿는 곤드족인 바주 샴은 런던에도 지하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그러면서 곤드족 방식대로 땅을 표현하기 위해 뱀을 그립니다. 뱀들 사이에는 둥그런 역이 있고, 지하철에서 기타를 뚱땅거리는 “거리의 악사”도 그려 넣어요. “이들은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라면서요.

마침내 목적지인 레스토랑에 도착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바주 샴은 맨 먼저 레스토랑의 한쪽 벽에 “나를 지켜 줄 신”을 그린 다음 열심히 벽면을 채워나갑니다. 숙소에서 일터까지 언제나 편하고 믿음직스럽게 데려다 주는 “30번 버스를 강아지로” 그려 넣고, 레스토랑에 오는 손님들도 틈틈이 관찰해 그들을 박쥐로 그려놓습니다. “런던 사람들은 낮에 잘 모이지 않”다가 “해 질녘에 일어나서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는 것인데, 여기에는 아무런 악의가 없어요. 다만 그가 마을에서 보아왔던 숲속의 동물들이나 상상 속의 동물들을 자주 등장시킬 뿐이지요. 그에게 그림은 ‘함께 만들고 함께 즐기는’ 놀이인 것입니다. 

자유롭게 길에서 포옹하고 뽀뽀하는 런던의 젊은이들을 ‘물고기와 새’로 표현하고, 품위 있게 일하는 여성을 그는 ‘네 개의 팔을 가진 인도의 여신’으로 그립니다. “런던에서는 여자들도 다양한 일을 한다”며 그들의 자신감을 좋아해요. 런던의 시간의 상징인 빅벤을 자신에게 시간을 알려주던 수탉의 눈으로 바꾸어 표현하는 일도 모든 사물과 대상을 자신의 방식으로 떠올리는 바주 샴의 습관을 잘 보여줍니다. 일을 모두 끝마친 바주 샴이 런던의 한 미술관에서 보고 큰 충격을 받으면서도 이해하려 애쓰던 절단한 소는 제 생각에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의 작품을 본 게 아닌가 싶어요. 좀 끔찍하거든요.

▲네 개의 팔을 가진 인도의 여신ⓒ리좀출판사
어쨌든 런던의 일정을 잘 마치고 집에 돌아온 바주 샴은 마을사람들에게 둘러쌓이게 되지요. 두 달간의 여행으로 많은 이야기를 품고 왔으니 이야기 주머니를 단 셈인데, 인도에서는 시인이 그 역할을 하는 모양입니다. “우리 마을에서는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나 시인들만 사람들 가운데 앉아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니까요.

《런던 정글북》은 타라북스에서 주력하고 있는 수제 그림책은 아니예요. 하지만 우리와는 많이 다른 인도 사람들의 인식과 민속적 표현들을 꼼꼼히 살필 수 있는 흥미로운 그림책입니다. 혹독한 근대사를 겪는 바람에 전통의 맥이 끊어진 우리에게, 이들의 표현방식은 매우 화려하고 신화적일 뿐 아니라 전통이 숨 쉬고 있어 부럽기까지 합니다. 바주 샴의 눈길은 매우 새롭고 신선해 우리의 일상을 다시 만나게 하는 힘이 있지요. 이 그림책이 예술로서 하는 역할 또한 그 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저는 타라북스라는 출판사가 한국에도 나타나길 고대합니다. 14명의 장인을 둔 노동자 소유 기업인 타라북스의 대표 기타 울프의 인터뷰 한 대목을 옮겨 봅니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유행에는 관심이 없지만 깊이를 지닌 첨단의 새로운 것에는 관심이 있어요. 우리는 정말로, 우리가 좋아하는 것, 우리를 흥분시키는 것들을 출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책들은 시장 조사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김환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