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전산책/언제쯤 책 한권으로 천하를 잡으랴(一卷天下何時節)
■ 고전산책/언제쯤 책 한권으로 천하를 잡으랴(一卷天下何時節)
  • 송우영 시민기자
  • 승인 2017.10.25 16:55
  • 호수 88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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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이이와 그의 제자 사계 김장생)

▲ 송우영
랑이 담배 물던 훨씬 이전부터 강호무림에서는 책 한권을 얻으면 천하를 거머쥔다는 말이 있었다. 그러한 책에는 한결같이 비요備要, 요결要訣, 집요輯要,라는 이름으로 은밀히 전해진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다.

저들 세계에서는 무공비지武攻秘旨라 하는데 ‘비지批旨’란 말은 상소문에 대해 임금이 내리는 답지다. 훈독은 칠 비批에 맛있을 지旨로 이를 강호무림에서는 칠 비批가 아닌 귀신 비祕를 써서 ‘비지祕旨’라 불렀다. 귀신이 내려준 비책이란 말이다.

이러한 책을 한번쯤 읽어보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반드시 일통천하一統天下를 꿈꾸게 되어있다. 그러나 대학·논어·맹자·중용 사서오경을 종주로 주희를 성인의 반열에 올려놓은 조선 성리학에 있어서 이러한 책들은 사파邪派일 수밖에 없다.

이 사파의 용어를 정파로 끌어들인 인물이 율곡이이다. 그는 자신의 책에 과감하게 ‘집요’ ‘요결’ 사파에서나 있음직한 용어를 쓴다. 성학집요聖學輯要 격몽요결擊蒙要訣이 그것이다. ‘성학집요’는 말 그대로 성聖을 배우는 학學이다.

1575년 선조8년 율곡 나이 40세 때 홍문관부제학으로 있으면서 지금의 서울 한강 동호대교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서재에서 지은 책이다. 선조2년 1569년 34세 되던 해 홍문관 교리의 직함으로 동호문답을 쓴 지 6년만의 일이다.

2년 뒤 선조10년 1577년에 격몽요결擊蒙要訣을 쓴다. 이때 먹을 갈고 붓을 다듬어준 이가 훗날 조선 예학의 태산북두 사계 김장생이다. 추후 재론하겠지만 사계의 공부이력은 특이하다. 그의 첫 스승이 노비 귀봉이기 때문이다.

격몽擊蒙은 몽매함을 깨우친다는 의미이고, 요결要訣은 그 사안의 중대함이다. 격몽요결은 성학집요와 짝을 이루는 대구對句인 셈이다. 그리고 훗날 그의 문도 사계 김장생은 스승의 책에서 요要자를 압운押韻삼아 상례비요喪禮備要를 쓴다. 요要를 씀은 스승의 책에 대한 제자의 무한 존경이 담긴 답례인 셈이다.
이는 스승과 제자가 요자 항렬의 책을 쓴 조선 유일본이다. 본래 상례비요는 사계의 벗 신의경이 상례예법 1권 1책의 분량으로 쓴 것을 친구인 사계 김장생이 1620년 광해12년에 전면 개편 수정증보해서 서문까지 쓴 것을 아들 신독재 김집金集이 이를 다시 교정 1648년 인조26년에 2권 1책으로 간행하면서 또 다시 서문을 썼다.

아버지가 서문까지 써서 마무리 한 책을 자식이 또 수정 보완까지 해서 서문을 쓴다함은 자칫 천하 불효가 될 위험천만한 일이다. 본래 아버지의 일이란 옳으면 옳은 대로 따르고 그르면 그른 대로 따름이 효도의 제1원칙이다. 요즘 돼먹지 못한 집안의 자식들처럼 아버지가 말씀하시면 눈 부라리고 대드는 그런 콩가루 집안의 자식들로서는 상상도 못할 가문의 종법이다.

아버지가 틀렸으면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틀린 것이지 아버지가 몰라서 틀린 게 아니다. 자식은 그저 울면서 따를 뿐이다. 이것이 자식의 기본 도리다. 그만큼 사계의 아들 신독재 김집은 실력이 빼어나다는 말이다. 이걸 뒤집어 말하면 아버지 사계 김장생은 자식교육 성공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아들의 실력이 아버지를 뛰어넘었다는 ‘청출어람청어람’이라는 순자의 말을 증명한 셈이다. 책 끝에는 1621년에 쓴 당대 제일 명문 상촌 신흠象村 申欽의 발문이 사계 김장생이 아들을 얼마나 잘 키웠는가를 웅변하고 있다. 자식은 이렇게 키워야 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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