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환영의 그림책 세상 (6)그럼 너는 똥구멍으로 말을 하냐?
■ 김환영의 그림책 세상 (6)그럼 너는 똥구멍으로 말을 하냐?
  • 김환영 시민기자
  • 승인 2017.11.01 17:06
  • 호수 88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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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루떼루》(박연철, 시공주니어 2013)

꼭두각시놀이 일부 재구성한 그림책
말맛이 차지고 가락이 좋아 연방 터지는 헛웃음

▲ 《떼루떼루》표지
요즘 젊은 그림책 작가들은 컴퓨터를 세련되게 참 잘 씁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종이에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적인 붓질까지도 언어로 다가온다고 할까요?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종이에 그린 그림은 흔적을 지울 수 없으니 제작 과정도 가장 선명하게 읽히고 작가의 체온까지 전달되는 느낌 때문입니다. 시각문화 전반을 장악한 지 오래인 사진이나 사진을 조합해 ‘만들어낸 복제이미지’들은 무척 강렬하지만, 나는 왠지 그런 이미지들이 미덥지가 않고 건조하게 느껴집니다. 이러한 고질적인 취향 때문에, 좋은 그림책을 놓치는 경우가 꽤 됩니다. 

그림책《피노키오는 왜 엄펑소니를 꿀꺽했을까?》(이하 엄펑소니)도 그랬어요. 이미지들의 의미망이 복잡한데다가 사진 이미지들이라 선뜻 마음이 가지 않았습니다. 세로로 긴 판형에 아코디언식 구조도 유난스러워 몇 쪽 들춰보다가 어지러워 이내 덮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들여다보는 일 자체로 힘이 드니 내용을 알아 볼 생각조차 안했지요.

그러다 며칠 전, 책장 앞에서 이 책 저 책을 넘기다가 책 한 권을 꺼내들고 선 채로 읽다가 사뭇 골똘하게 되었습니다. 나로서는 박연철 작가의 그림책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들여다보게 된 셈입니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그의 그림책을 아주 잘못 봤다는 자각이 일었습니다. 

컴퓨터를 열어 박연철의 작품들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그림책《떼루떼루》표지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짓고 있었습니다. 반부조 형식의 목각인형으로 제작한 《떼루떼루》는 보기에 편했습니다. 그래서 며칠 뒤 도서관에 가서 그의 그림책들을 모두 대출해《떼루떼루》부터 찬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 장면1
《떼루떼루》는 전통 연희의 하나인 남사당놀이 가운데 꼭두각시놀이의 일부를 재구성한 그림책인데, 표지의 오른쪽 부분을 팝업북처럼 세로로 길게 뚫어놓았습니다. 뚫린 부분에 손을 넣어보니 딱 문고리를 잡은 느낌입니다. 대문을 열 듯 첫 페이지를 열었습니다. 《떼루떼루》도《엄펑소니》처럼 액자식 구성인데, 이번에는 동그란 안경에 히틀러처럼 콧수염을 달고 나온 변사(막 뒤에서 악기를 연주를 하며 꼭두인형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산받이’ 역)가 이렇게 말을 엽니다.

 “안녕, 얘들아. 이제부터 재미난 꼭두각시놀이를 할 거란다.”

이윽고 막이 열리면, 나무를 깎아 만든 박첨지가 정면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박첨지도 꼭두놀음의 캐릭터 그대로이고 대사도 마당극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말본새를 보자면 이렇습니다.

“영감은 뉘신데 나한테 뭐라시오?”
“나야 서울 사는 박첨지이지.”
“서울이 다 영감 집이오?”
“서울이 다 내 집일 리가 있는가? 내 집을 자세히 알려 줄 테니 잘 듣게. 일각문 이골목 삼청동 사거리 오방골 육대손 칠삭둥 팔푼이 구하다 십년감수한 박 첨지네 집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모르는 사람 빼고는 다 안다네.”

이 맛을 모를 아이들에게 어떻게 읽힐까 싶기도 하지만, 아마도 몇 번만 들려주면 금세 글이 입에 붙어 저도 모르게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떼루떼루》는 꼭두각시놀음의 일곱 거리 가운데 ‘이시미 거리’만 취한 것인데, 등장인물들 모두 전통연희 속 역할을 그대로 수행하고 있어요. ‘이시미 거리’의 원본 설명을 찾아보니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시미 거리:사회쟁점 인물의 등장과 풍자
박첨지가 나와서, 중국에서 날라온 청노새가 우리 곳은 풍년들고 저희 곳은 흉년들어 양식 됫박이나 축내러 왔다고 알리며 퇴장하면, 이시미가 나타나 청노새를 비롯하여 박첨지 손자, 피조리, 작은 박첨지, 꼭두각시, 홍백가, 영노, 표생원, 동방석이, 묵대사 등의 순서로 나오는 족족 잡아 먹는다. 박첨지가 나와 산받이에게 앞서 나온 자들의 행방을 묻자, 이시미의 짓임을 알려주니 박첨지는 겁 없이 곁으로 갔다가 박첨지마저 물린다. 이 때 홍동지가 등장하여 박첨지의 경솔함을 꾸짖으며 구출하고, 홍동지는 이시미 껍질을 팔아 옷 좀 해 입어야겠다며 퇴장한다. 다시 나온 박첨지는 자기가 살아난 것은 홍동지의 덕이 아니고, 자기 명에 의한 것이라며 이시미를 팔아 부자가 되었을 홍동지를 찾아내겠다며 퇴장한다.(<한국의 민속극> 심우성 편저, 창작과비평 1975년 초판발행)

▲ 장면2
《떼루떼루》도 전통연희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위선적이며 허풍스럽습니다. 그 점을 드러내는 말맛이 차지고 가락이 좋아 아주 잘 읽히고 곳곳에서 헛웃음이 연방 터집니다. 중간 중간에 배치한 ‘덥석!’ 하는 장면은 펼친 페이지 전체를 할애하여 심플하고 과감해 속 시원하고, 쪽마다의 가장자리 흰 여백으로 우리는 꼭두각시놀이 무대로 초청받을 수가 있게 되지요. 정지 화면인 그림책의 장면들에도 꼭두각시놀이를 실연할 때 느낄 수 있는 해학을 느낄 수가 있고요. 결국 나는 대여해 온 그림책을 한 권 한 권 펼쳐서 찬찬히 읽어나가게 되었지요. 그리고 ‘신세대’인 박연철은 ‘구세대’인 나와 사뭇 다른 자리에 서 있다 싶었습니다.

그의 이미지는 ‘그리기’보다는 ‘만들어진’, 또는 ‘만들어낸’ 이미지입니다. 이렇듯 철저한 계산 속에서 기호화시킨 복잡한 이미지들이 나로서는 읽어내기에 참 불편했던 거지요. 하지만 이러한 마음을 잠시 미루고 다시 보니, 장인적 기질이 대단한 성실한 작가임을 분명히 알겠습니다. 다루고 있는 많은 소재들은 일상의 고만고만함을 벗어나 다루기 쉽지 않은 전통문화에 상당히 깊숙이 닿아있었고요. 거기에 다시 자신의 문법과 취향을 덧입히면서 끝없이 만들고, 부수고, 비틀어대는 그의 그림책에 대한 문제의식 또한 만만치 않아 보였습니다. 작가가 한 권의 그림책을 만들어 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산고를 겪었을까 생각하니, 미안하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래전 정승각이 그린 《반쪽이》(오호선 글, 두손미디어1996)의 주인공 반쪽이는 꼭두각시놀이의 홍동지 이미지와 민화의 요소를 적극 활용한 것이고, 천연염색한 천을 이용해 만든 그림책 《한조각 두조각 세조각》(김혜환, 초방책방 2003)도 있으니, 《엄펑소니》라면 모를까 《떼루떼루》가 보여주는 이미지가 아주 낯선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작가는 함께 즐기는 놀이 방식으로 독자를 상대한다는 특징이 있어 오히려 그 점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또한 그의 그림책은 단순히 ‘보는 책’이 아니라 보되 ‘하나하나 해석해 읽어내야’ 읽히는 책에 가깝다 싶었지요. 작가는 어쩌면 자신이 장치해 둔 기호의 숲속에 독자들을 초대해 숨바꼭질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결국 어디까지 읽어내는지는 독자의 몫으로 남게 되고, 이미지 해석의 여지 또한 그런 셈이지요. 그래서 내용과 시각적 구성을 저울질하며 세심히 배려해 숨겨놓은 기호들과 텍스트 간의 관련성(Intertextuality)들, 그러니까 ‘원전 꼭두각시놀이’와 그림책《떼루떼루》사이의 맥락들을 온전히 해독하려면 독자의 내공과 손품 또한 만만치 않을 것 같아요.       
 

▲ 장면 12
《떼루떼루》에서 좀 더 생각해 보고 싶은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림책은 자체가 이미 무대이고 액자인 셈인데, 꼭두각시놀이에서와 다른 그림책에서 본문 앞뒤의 변사의 등장이 필연이었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앞뒤 면지를 지금의 홍동지 빛깔의 붉은 색띠가 아니라, 막이 열리기 전의 꼭두각시놀이처럼 검은 바탕으로 하고, 변사의 말만을 활자로 보여주면 어땠을까요? 그렇게 16바닥 모두를 쓸 수 있었다면 꼭두놀이의 알맹이를 조금 더 보여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또한 표지에서도 세로로 길게 투각된 틈으로 검은 막이 드러나고, 표지를 열면 바로 극장 안으로 들어서는 느낌을 독자들이 경험할 수도 있지 않았을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영화 속 카메오처럼 액자 방식으로 발화자를 드러내는 방식을 자신의 트렌드로 여기는 건 아닌지 살짝 의문이 남아요. 이러한 방식이 그림책을 액자 속 액자로 만들 이 이야기를 간접화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여러 그림책 가운데《떼루떼루》가 내 눈에 들어온 까닭이, 전작들과 다른 도상의 단순함과 명쾌함 때문이었다는 점도 아울러 말하고 싶군요. 

작가 박연철과 그림책《떼루떼루》는 그의 역작인 《피노키오는 왜 엄펑소니를 꿀꺽했을까?》와 함께, 치열함과 성실함으로 내 안의 게으름을 통렬하게 일깨웁니다. 고정관념 속에 파묻혀 사는 어른독자(어린이독자가 아니라!)들을 독려하기도 하겠지요. 나는 그러한 이 작가의 덕목들이 참 고마웠습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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